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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쌍 Feb 07. 2020

아이와 의사소통이 된다는 것은

오랜 슬픔도 극복하게 하는 마법



어젯밤에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데,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엄마 반려동물이 뭐예요?"라고 묻는다. 여러 동물들과 함께 살면서도 마당에서만 부대끼다 보니 '반려동물'이라는 단어아직 정확하게 설명한 적이 없었나 보다. 반려동물에는 집 안에서 함께 사는 강아지와 고양이도 있다는 것을 설명하다 잠시 숨을 고르느랴 침묵이 이어졌다. 장이 저려오는 오랜 슬픔을 다시 마주기 때문이다.




내 가슴속에 묻어둔 이야기.


뿌까. 나와 20대와 30대 그 사이 십 년을 함께 한 고양이. 처음 만났던 날, 내 손바닥 위에 그 꼬물이를 올려두고 평생 지켜주겠다 했던 그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여러 나라를 다니는 동안 늘 함께 했고, 그러다 보니 뿌까는  낯선 환경에 적응을 매우 잘하는 고양이로 거듭났다. 나의 좋은 일, 기쁜 일, 슬픈 일, 힘든 일도  옆에서 늘 지켜주었던 분신 같았던 고양이였다. 뿌까는 비록 '야옹'이라는 말 밖에 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반려인과 반려묘 그 이상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위로하고, 지켜주는 시간을 살았더랬다.


나를 보고 그렇게 고양이한테 정성을 쏟을 시간에 어서 애를 낳아 키워야지 뭐하는 거냐는 주변의 중장년 지인들이 있었다. 서른 중반을 넘어갈수록 그런 소리를 하도 자주 듣다 보니 내가 정말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마저 하게 했다. 그런 말들을 한 귀로 흘려도 보고, 집에 와 혼자 화를 내기도 하며  그렇게 지나왔더라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들이 꼭 맞는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결국 모든 게 상처로 남는 거였다는 것을 말이다. 정신없는 육아 전선을 사느라 오랜만에 불러보는 뿌까라는 이름이 그렇게 가슴 위에 툭하고 올려졌다.




 책을 다 읽어주고 나서 독서등을 끄고 내 팔을 베고 누운 아이를 꼭 끌어안고 처음으로 오랜 시간 가슴에 묻어 두었던 뿌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엄마한테도 반려동물이 있었어. 시하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엄마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고양이였어" 그러 뿌까 고양이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아이는 묻는다. "무지개다리를 건너 하늘나라로 갔어. 갑자기 심장이 아파서"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툭툭 떨어진다. 아이는 '무지개다리를 어떻게 건너갔을까? 무지개 위에 올라가면 떨어지지 않았을까?' 묻더니 "뿌까 야옹이! 아~ 뿌까 보고 싶다"라고 표현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아이의 따뜻한 반응이 너무나 고마웠다. 렇게 수다스러운 아이를 꼭 안은채 많은 눈물을 흘린 밤이었다.   


사실 나는 나중에 내 아이에게 뿌까 이야기를 해 주면 어떨지 오랜 시간 궁금해 왔다. 2014년 뿌까를 무지개다리 건너 보내며 나중에 꼭 내 아이로 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가 첫 옹알이를 하며 나를 아련하게 바라보았을 때, 펑펑 울었던 것도 혹시 뿌까가 다시 나에게 온 것은 아닌지, 뿌까가 인간의 언어로 말을 할 수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떠올랐던 까닭이다.  


반려동물을 잃은 후에 상실감, 이른바 '펫로스 증후군'으로 6개월 여 눈물을 흘리며 지냈다. 사무실에 앉아 일하다가도 툭,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도 그 말만 나오면 툭, 혼자서 밥을 먹다가도 툭, 잠들기 전에도 툭, 양치하다가도 툭툭툭... 내 일상에서 툭툭 터지는 눈물은 너무나 흔한 것이었다. 오랜 시간을 가슴 아파하며 그 어떤 반려인보다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시간은 점차 그 아픔과 슬픔조차도 무뎌지게 했. 랜시간 함께 했으면서도 뿌까를 내 품에 한 번 안아주지 못하고 보냈던 까닭에 슬픔은 오래도록 남아 고통스러웠지만, 그 상실감은 극한 외로움으로 연애와 결혼, 출산, 육아를 연결했던 터다.


연애 초기 남편은 나에게 '이 모든 것은 뿌까가 준 선물이야'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뿌까가 떠나면서 홀로 남은 나를 안타까워 마음을 놓지 못했을 거라고, 이젠 뿌까에게 아무 걱정 말라고 얘기하라고 했다. 물론 반려묘와 함께 사는 것과 한 인간 아기를 키워내야 하는 육아가 차원이 다른 노동의 강도라는 것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 전혀 짐작도 상상도 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기저귀를 바꾸고 아이 엉덩이를 씻겨줄 때마다 아이가 어서 자라서 내 친구가 되어 주길 고대했다. 사실 그것은 옥 같은 육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기대망의 한 조각이었다.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하다 지 나를 보며 친정엄마는 '조금만 더 참아. 금방 큰다. 조금만 더 크면 손 많이 안가'라 견뎌내랴 했다. 사실 어디가 끝인지도 모르고 딱히 출구도 보이지 않는 그 시간들을 무작정 견뎌내는 것밖에는 답이 없었다. 그렇게 견디다 보니 생후 41개월의 기적 같은 시간도 도래했다.



엄마의 기쁨도 슬픔도 들어주고 나누는 친구!


요즘들어 아이가 부쩍 의젓해졌다. 엄마에게 매일같이 체리 두 개가 박힌 플라스틱 반지를 주며 청혼을 하던 것이 "엄마 우리 결혼해. 나 조금만 크면 결혼할 수 있잖아. 엄마 그 때까지 기다려" 박력있는 워딩으로 바뀌었다. 심쿵~해 지는건 절대로 고슴도치 엄마서라기만은 아니다.


아이는 엄마의 영화관람 파트너 역할도 시작했다. 일 년 전 처음 극장에 갔을 때에는 모든 것을 다 챙겨느랴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영화가 끝나면 더 보겠다고 울고 떼쓰는 바람에 난처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 달에 한 두 번 꼴로 극장을 다니다 보니 아이는 씨네필로 거듭났던가. 이제는 팝콘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고, 베이비 시트도 스스로 챙기줄 알기 시작했다. 즉, 제 몫은 스스로 다 해내더란 말이다. 요즘엔 매주 토요일마다 극장에 가서 애니메이션 개봉작뿐만이 아니라 엄마가 보고 싶은 나이 제한없는 영화도 함께 본다. 아이는 한결 성숙해진 자세로 영화를 볼 때는 큰소리 내지 말고 얌전히 있어야 하는 관람매너 갖추었다.


엄마가 일하러 갈 때도 함께 간다. 미팅을 하러 가기 전, 아이를 데려가도 좋은만한 자리에는 사전에 양해부터 구해 본다. 육아와 어린아이를 대하는 사회인식의 변화로 워킹맘은 좀 더 자유로워졌다. 아이는 자신의 장난감 한 바구니를 챙겨 들고 함께 길을 나선다. 그리고 의젓하게 앉아 엄마가 회의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예의를 차리는 법도 배운다. 즉, 생생한 비즈니스의 현장을 경험하는 것이다. 리고 자신도 나중에 엄마가 하는 일을 할 거라고 말한다.


엄마 손을 잡았다가 떨어져 걷기를 그 스스로 택하며 다시 뒤돌아서 엄마를 부르는 아이는 요즘 폭풍 성장을 해 나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의 삶 속에 자리 잡은 다양한 일상은 하루가 다르게 아이의 성장을 돕고 있다. "엄마 왜요?", "엄마 이 말은 무슨 뜻이에요?" 등 부쩍 질문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혼자 놀면서도 쉼 없이 재잘거린다. 물론 질문마다 학습 목적을 염두에 둔 성의 있는 답변을 찾아야 하는 엄마도 말이 많아졌다.


오랜시간 펫로스 증후군 속에서 우울하고 외로웠다. 그깟 고양이 한마리 때문에 저 난리냐며 공감하지 못하는 주변의 시선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했다. 그러다 육아라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밀려오면서 아이와 소통이 되지 않아 이전보다 몇 만 배는 더 우울하고 외로웠던 영아기 시절 육아였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처방은 슬픔을 이겨내는 것만이 아니었다. 아도 그러했다. 최근 본격적인 소통의 시대를 맞이하여 아이감정을 나누 법을 배우며 엄마의  베스트 프렌드로 자라나고 있다. 내 안의 깊은 슬픔도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듯!  모든 바쁜 일상과 아이를 통해 느끼는 행복, 어쩌면 로 남겨둔 나를 걱정하는 뿌까가 보내준 선물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생후 41개월, 육아는 마법이고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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