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먹은 것을 치우고 그린플래시에 커피를 사러 갔는데 당당하게 영업 종료. 아침 장사를 하는 집이라 피곤하셨나, 종료시간보다 일찍 닫고 쿨하게 가버리셨다. 아침에 쨍하게 더운 코나의 알리이 드라이브를 호기롭게 걸어서 허탕치고 시뻘겋게 달궈져 온 나를 위해 코나 커피 앤 티에 가기 위한 외출이 된 것이다. 이수도 나를 따라나섰다가 지쳐서 집에서 잠시 쉬다가 열을 식히고 나왔다. '코나 커피 앤 티'맞은편에 오락실이 있다고 꼬셨더니 순진한 아이들은 너무도 좋아했다.
남편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30불 치 선불카드를 만들었다.
나는 이수가 원하는 펌프에 올라 웜업을 한 후 커피를 마시기 위해 빠르게 오락실을 빠져나왔다.
남편은 나의 자유시간을 보장해 주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오락실에서 한참을 놀다 나왔다.
두둑하게 먹은 아침 탓에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코나 커피 앤 티의 맞은편에서 나는 익숙한 치킨냄새에 아이들은 꼭 먹고 가겠다고 떼를 쓴다. KFC, 작년에도 여길 못 지나치더니 올해도 어김없이 들어가게 되었다.
작년과 같은 상황,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마침 화요일 세일 품목이 있어서 닭다리 열 조각을 샀다. 모자랄까 봐 버거를 시킨다는 남편을 말렸다. 말리기를 참 잘했다. 아이들은 맛있게 잘 먹었다만, 내겐 너무 짰다. 이 나이 때는 단 것과 짠 것이 이 그렇게 좋은가보다. 나도 그랬던 것 같긴 하다.
아이들이 치킨을 먹는 동안 나는 길 건너 맞은편에 있는 퍼스트 하와이안 뱅크에 봉투를 구하기 위해 먼저 나왔다. 물론 봉투는 구할 수 없었지만 미국의 은행을 처음 방문해 봤다는 걸로 충분히 만족했다.
그 근방도 쇼핑센터여서 맛집도 있고 마트도 있는데 이상하게 한 번을 안 와보았던 장소라 나로서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재밌는 구경을 하는 시간이었다.
카페인도 충전했겠다, 새로운 곳도 구경했겠다, 짧지만 만족스러운 시내 나들이였다.
나이트 만타레이 스노클링
마할로님이 마련해 주신 남편의 투어 코스인데, 온 가족 같이 하면 좋을 것 같아서 어제 급히 예약을 한 나이트 만타레이 스노클링.
별도의 정보도 없이 그냥 도전했다가 멀미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후유증이 오래가긴 했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경이로운 바닷속 구경을 한 것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투어였다.
일몰 시간에 맞추어 30분 정도 배를 타고 나갔는데, 먼바다 끝에 걸린 해가 서서히 바닷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해가 자취를 감추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본격적인 스노클링이 시작된다.
일렁이는 쪽빛 바다에 심청이 인당수에 뛰어들 듯 입수를 했다.
나도 모르게 온몸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그 느낌은, 공포를 넘어선 또 다른 경이로움이랄까... 어쩌면 남편이 지척에서 내가 꼬르륵 가라앉기 전에 건져내 줄 거라는 믿음 때문에 안심하고 심해의 경이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다.
우리는 롱보드를 개조해 만들어진 손잡이에 매달려 최대한 몸을 납작하게 띄운 뒤 깊은 바다에서 몰려드는 물고기들을 맞이했다. 롱보드 바닥에는 불빛과 함께 먹이들이 뿜어져 나왔다.
수없이 달려드는 물고기들은 얕은 바다에서 보는 알록달록한 열대어라기보다는 수산시장에서 만나는 싱싱한 생선을 연상시키는 어종들이었다. 귀엽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고,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달려드는 것이 사랑스럽기도 해서 당분간은 비슷한 생선을 먹고 싶지 않다.
가오리가 떼로 몰려드는 장관은 아니었지만 나를 향해 돌진하는 한 마리 가오리 덕분에 생애 최고의 바다를 경험했다. 만타를 기다리며 심해를 가만히 내려다보니 산호도 보이고 멀찍이서 오가는 물고기 떼도 보였다. 꼭 만타 투어가 아니어도 낮에 이런 곳에 와서 좀 더 밝은 바닷속을 구경해 보고 싶다.
한여름의 바다 한가운데는 많이 추웠다.
달달 떨면서도 그만하고 싶지 않은지 큰 아이는 끝까지 바다 위에서 스노클링을 즐겼고, 추위에 약한 둘째는 중간쯤 보드 위로 올라가 몸을 녹였다.
무사귀환 후 정신을 차리고 본 밤의 부두는 참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오가며 멀미를 많이 했지만(특히 큰 아이가 멀미를 심하게 했다) 집에 와서는 그것을 싹 회복했는지 한밤중의 바다 여행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첫 번째 하와이는 42개월, 20개월 때 와서 수영장이 제일 좋았었다고 추억했었던, 괌 가는 게 나았을 뻔 한 여행이었는데 이렇게 서로의 느낌과 생각을 주고받으며 추억을 쌓는 여행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스럽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피곤을 누르며 자신이 본 만타를 그리기 위해 일기를 펼친다. 그리고 뒤늦게 잠자리에 들어 그 어느 때 보다 빠르게 꿈나라로 떠났다.
아이들의 일기는 나를 순수한 동심으로 젖어들게 했다.
+ 내가 제일 좋아했다고 하시며 마할로님이 보내주신 영상.
스노클링 장비를 입에 앙 물고 이수와 엄청 수다를 떨었던 밤, 나 홀로 감격에 차 소리를 질러대던 밤의 기록이 고스란히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