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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유 Jul 24. 2024

심사숙고 끝에,
나는 신용등급이 엿될 각오를 했다.

개 개복 수술에 300을 쓰는 날이 올 거라고는

모모를 보고 온 다음 날, 모모가 여전히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화로 전해들었다. 여전히 잘 뛰어놀고, 여전히 사람 지나가면 관종답게 관심을 갈구하고, 물 주면 물 먹고, 밥 주면 밥 먹고. 나는 이래서 애가 엄마를 닮는다는걸까, 하고 무심코 생각했다. 작년 가을에 갑자기 머리가 아파서 본가가 있는 서울도 아니고 학교가 있는 경주에서 입원을 해야했는데, 그때도 나는 보호자 없이 밥 싹싹 긁어 먹고, 물 잘 떠다 먹고, 노트북으로 틈틈히 일도 하고, 직접 샴푸에 수건 사다가 머리도 감았기 때문이다. 모...전은 아니고, 아무튼 같은 돌림자 쓰던 형제끼리,모모의 이름은 한자이름으로 두번째 모는 模를 쓰는데 우리 집안 돌림자다, 닮은 모양이다.


오전 동안 활력징후에 문제 없었던 모모는 씩씩하게 프로포폴 6ml를 맞고 ct를 찍으러 갔다. 아니, 사실 씩씩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그랬다고 믿고 싶다. 성질머리가 적당히 더러워야 그래도 잘 했겠지, 싶은데 워낙 제 하고 싶은대로 오냐오냐 길렀던 터라 모모는 심각하게 싸가지가(...) 없었다. 나는 프로포폴 주사하는 동안 선생님을 물지 않았기를 간절히 빌었다. 


개자식 성질머리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모모가 ct를 찍는 날, 찍기 전에 전화를 준다고 했는데 별똥별 선생님이 까-맣게 까먹으시는 바람에,이후에도 별똥별 선생님은 자주 전화를 깜빡하셨지만, 네시 쯤 병원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다섯시 반 쯤 병원에 내원했다. 크지만 작은 나의 6키로 강아지를 오냐오냐 해주고는 선생님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다. 


3시쯤 찍은 ct는 판독을 위해 기관에 보냈나,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때는 가소견만 들을 수 있었다. 가소견 내용에 대해서 공유해보자면 이렇다. 


아이고, 길고 정신 없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분명히 별똥별 선생님이 1:1로 붙잡고 설명해주셨던 나도 지금와서 진료기록을 보고 있자니 정신이 없다. 모모도 이해할만한 언어로 이걸 바꿔보자면 이렇게 된다.       

     

환축분, 지금 위랑 림프절이랑 비장에 뭐가 보이세요. 종양일 확률이 좀 크세요.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머리를 부여잡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전 날 했던 우려가 거의 그대로 얻어맞은 것이다. 그 때 신용카드로 지불한 1,056,500원은 시작이다. 지금부터는 내 카드가 이기나 모모의 건강이 이기나의 싸움, 미리 이야기하자면 나는 정말 개같이 졌다,인 것이다. 물론, 모든 종양이 암인 것은 아니다. 양성이냐 악성이냐도 봐야하고 예후가 좋은 암인지 나쁜 암인지도 따져봐야한다. 그래, 암이 아닐 수도 있잖아. 암이라고 확정된 것도 아닌데.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이게 암일 확률은 이미 50%가 넘어간다. 그 중에서 25%확률로 예후가 지저분한 암일 확률이 있는. 나는 머리를 정말, 간절히 굴렸다. 혹시 모르잖아 같은 소리를 했다. 혹시, 그게 암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잔인하게도, 그런 방법은 없었다.

 개복을 해서 조직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했다. 

암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




암컷 강아지와 수컷 강아지의 중성화수술 비용이 차이나는 것을 알고 있을까? 수컷 강아지의 경우, 두 고환의 중앙부를 약간 절개하여 그 곳으로 고환을 꺼내 잘라낸 다음 봉합하기 때문에 상처부위도 크지 않고 비용도 저렴하다. 하지만 암컷 강아지의 경우, 자궁을 들어내는 방법 밖에 없기 때문에 상처부위도 크고 비용도 비싸다. 내가 강아지 개복 수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이 정도였다. 


동물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고양이가 제왕절개 하는 건 봤지만 개가 조직검사를 위해 조직을 제거하는 건 본 적이 없다. 아니, 애초에 그 병원엔 초음파 기계가 최대이긴 했는데.


나와 별똥별 선생님은 작전을 하나 짰다. 개복 수술을 하는 김에, 조직검사용으로 조금만 조직을 떼어내는 게 아니라 그냥 화끈하게 문제부위를 싹 떼어내는 것. 위치가 나쁜 일부 종양성 병변은 완전 제거가 불가능할지도 몰랐지만, 개복수술을 여러 번 하기엔 비용문제도 있고 모모가 버텨준다는 보장도 없었기에 우리는 일단 싹 들어내서 보내버리자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나는 별똥별 선생님께 은근히 수술비가 얼마 들지 여쭤보았다. 


카카오뱅크 비상금 대출은 1인당 300, 모모 1일 입원비가 20만원이었으니까 나는 400이 필요했다. 그것도 최소한으로. 


별똥별 선생님은 내가 설명을 잘 알아듣는데다가, 입원 기간도 대략적으로 예측하는 것을 보고 좋아하셨지만 나는 다른 의미로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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