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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머핀 Sep 03. 2020

돈 그리고 감정

  타향에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더 감성적 혹은 감정적이 될 때가 많다. 누가 가벼이 툭 던진 말에 갑자기 물밀듯 서럽거나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섞일 수 없는 그 무언가에 화가 나거나, 한국에서는 당연한 일들에 감격하곤 한다. 나는 원래도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었지만, 뉴질랜드에 와서 삼십 년 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더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며 살고 있다.


 우리는 흔히 감정도 소모한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감정은 소모품일까? 소모품은 닳아져 없어지면 버려짐으로 제 효용을 다한다. 그리고 새 것으로 대체되면 그 흔적이 남지 않는다. 하지만 감정은 사라져 버려도 마음에 생채기나 크고 작은 앙금들을 남긴다. 이런 점에서 감정에는 소모보다는 소비가 좀 더 잘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소비는 물건이든 살이든 빚이든 뭐든 나에게 남으니까.


쓸 데와 쓰지 않을 데를 구분해야 하는 것. 늘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아 힘들고 어려운 것. 이상한 데 쓰고 후회도 해보고 잘 써서 뿌듯함도 느껴져야 소비에 노련해지는 것까지. 감정이란 놈은 보면 볼수록 돈과 비슷하다. 결국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아는 게 인간이라(물론 안 먹고 아는 경우, 먹어도 모르는 경우도 있다), 감정도 쓸데없는 사람에게 낭비도 해보고 꼭 필요했던 어떤 곳에 폭발시켜도 봐야 한 단계 성장해 잘 다룰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을 잘 해내는 사람이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는 것마저 이 둘은 꼭 닮았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돈을 통장에 차곡차곡 모아 큰 지출이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쓰듯, 긍정적인 감정들도 감정 통장에 차곡차곡 모아 부정적인 감정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빼서 쓰고 싶다. 비록 돈은 거지지만 감정은 부자라 다행인가 생각하는 요즘이지만, 사실은 그 반대여야 인생이 편한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 불편함이 있어 인생에서 만나는 행복의 색이 더 선명해지는 거라고 자기 위안을 해보는 오늘. 내일 아침 출근하기 너무너무 싫은 이 밤. 언젠가는 돈도 감정도 둘 다 부자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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