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날 Oct 22. 2023

여름-2. [오스트리아] 비엔나


놀이기구 위에서 바라보는 보랏빛 하늘의 도시, 비엔나였다.



유럽에서 간 처음이자 마지막 놀이공원은 비엔나에서였다. 여행을 다니면서 '사랑'이 넘치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내게 사랑이란 무엇이었나, 생각하며 거리를 돌아다니다 이 도시를 한눈에 조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놀이공원에서 맞이하는 노을도 느껴보고 싶었다. 무언가를 감각하고 싶다는 생각은 우울이라는 감정에 늘 잠식되어있다시피 하는 내게 참 가끔 오는 것이었고, 그걸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초저녁 시간에 맞춰 놀이공원에 갔고, 나는 노을빛의 비엔나를 한 눈에 담았다.



밤의 비엔나 중에서도 한 장면을 꼽으라면, 일 년에 한 번 있는 빈 오케스트라의 무료 공연이다. 이 공연을 보러 여행 일정을 일부러 조율했기에, 나는 일찍부터 자리를 잡고 공연을 관람했다.



그런데 음악 선율보다 기억에 남은 것은, 우아한 멜로디에 맞추어 느릿한 춤을 추던 중년 커플의 모습이었다. 붉은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 분이 남성 분의 손을 잡고 한 바퀴를 돌았다. 드레스 자락이 흩날렸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며 발을 맞춰 춤을 이어갔다. 나는 그 두 사람의 눈빛이 그 어떤 영화보다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긴 눈은 그 무엇도 아닌 서로만을 담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생각해볼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사랑이야, 하고 생각했다.



의도한 것은 아님에도, 내가 비엔나를 여행하며 본 것들의 공통된 주제는 다 사랑이었다. 10유로짜리 입석 티켓을 사서 오페라를 처음 관람해 봤는데, 이것도 사랑에 관한 거였다. 스토리가 그리 내게 와닿거나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내가 오페라에 무지해서 그럴 수 있다) 그럼에도 어쨌든, 이 오래된 인류의 취미도 주제가 사랑인 것을 보면 사랑이란 참 인간 곁을 떠나지 않는 존재구나, 싶은 생각은 들었다.



독립서점 ChickLit을 방문했다. 리스본 즈음부터 여행을 다니면서 그 도시의 서점을 한 군데는 가 보리라고 마음먹은 이후로 종종 다녔는데, 이 곳은 소수자들과 관련된 책을 주로 갖고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책은 제목이 기억에 남는 'Everybody'라는 책과 주제가 신선했던 'The Trans Partner Handbook'. 나는 이성애자이지만 주변에 성소수자 지인들이 몇 있어서 그들에게 어떤 말과 행동이 상처인지 미리 알아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그런 가이드북이 많았다. 특히 트랜스젠더의 파트너를 위한 가이드북은 생각해보지 못했던 영역이라 좋았다. 트랜스젠더 자체에 관한 책은 몇몇 보았지만, 트랜스젠더의 파트너까지 생각한 책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성별 관련 편견에 구애받지 않게끔 하는 교육용 서적도 많았다. 어린 딸을 데리고 책을 고르는 어머니가 계셨는데, 나도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이런 서점에서 함께 책을 고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덧붙여, 사랑이란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남자아이든, 운동을 좋아하는 여자아이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그 어떤 특징을 지녔든 그 사람 자체로.



비엔나에서 찾은 공간 중 하나는 폐발전소를 재생시켜 만든 쇼핑몰 겸 거주공간이었다. 옛것에 대한 애정, 환경을 아끼는 마음. 인간 간의 사랑을 공연과 서점에서 느꼈다면, 인간 외의 것에 대한 사랑을 이곳에서 느꼈다.



쇼핑몰 안은 악기 상점을 비롯해 다양한 공간으로 채워져 있었다. 위층은 주거 공간이었다. 행정학도로서 유럽에 교환학생을 왔으니, 내가 관심 있는 도시재생 분야의 실제 사례를 보고 싶은 맘에 온 곳이었는데 굉장히 만족했다. 사랑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클래식 공연 중 한 커플을 바라보면서,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손을 꼭 잡은 부모의 모습이 있는 놀이공원의 노을을 마주하면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서점을 둘러보면서, 환경을 생각한 도시재생 공간을 구경하면서 나는 사랑을 느꼈다. 내게 사랑이란 깨어지기 쉬운 것이었다. 부모의 이혼을 너무 어린 시절 경험했고, 끝날 거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아야 할 것이 사랑이라 여겼다. 그럼에도 사랑을 느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보면 나는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깨어질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 사랑일 만큼 그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랑이 그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아끼는 것이라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라면 나도 그 단어에 조금이나마 믿음을 가져 봐야겠다고 느꼈다.


비엔나는 사랑스러운 도시였다.


이전 09화 여름-1. [프랑스] 칸, 니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