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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날 Oct 22. 2023

여름-1. [프랑스] 칸, 니스


2022년의 내 여름은 5월, 프랑스 남부에서 시작했다. 

누군가는 5월은 아직 여름이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생생히 힘찬 이파리를 자각할 때부터 당신의 여름은 시작된다. 8월이 다 지나도록 그 푸릇함을 느끼지 못했다면 당신에게 아직 여름은 오지 못한 것이다.


사람이 산다는 게 살아낸다고 생각하던 날들이 있었다. 하루를 버티는 것도 힘겨웠기에 인생이 하루의 연속임을 잊고 싶었는지, 진행형이 느껴지는 살아간다는 말을 별로 안 좋아했다. 쉽사리 24시간이 지나가는 게 아니었기에 살아진다는 말도 그닥 맘에 들지 않았다. 인생의 무게를 그저 가벼이 표현한 단어 같아서.

그래도 이 시절 즈음부터 나는, 가끔은 '살아낸다'는 게, 겨우 버텨낸다기보다 능동적으로 채워낸다는 어감으로 들리기도 했다. 마치 예전에는 비바람이 치는데 작은 나무 아래로 피해서 백색 도화지가 젖거나 구겨지지 않게 끌어안고 잔뜩 애쓰는 느낌이었다면, 요즘은 좋은 날씨에 나무에 기대서 도화지에 여러 가지 색을 칠해보는 느낌.

행복해지고 있나 보다고 생각했다. 산다는 게 점차 다르게 느껴지는 걸 보면 말이다. 가끔 비바람이 다시 몰아치기는 하는데 그것도 버티다보면 언젠가 그치긴 하더라. 다만 너무 세게 칠 때는 맑았던 날들을 다 까마득히 잊어버릴 정도라는 게 문제였지만, 심리 상담에서 아픈 어린 시절을 토해낸 후 며칠간은 진이 빠져 있고, 그 후에 회복될 즈음이면 다시 상담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잘 버텨 나는 여름을 맞이했다.     



칸 영화제를 가게 되었다. 20대를 대상으로 3일간 영화제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지원서를 써 냈더니 합격했다. 레드카펫을 보며 기분이 들떴고, 칸의 야경을 보며 마음이 트였다.



야간에 바닷가에서 고전 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칸 영화제 초청작을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도, 한국 영화의 포스터를 외국에서 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다만, 내가 칸에서 나 스스로에 대해 깨달은 건 '취향'에 대한 것이었다.



여러 영화를 관람했는데, 그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다음 소희>였다. 영화 제목의 뜻을 해석해 보면, 주인공 '소희'가 겪은 일의 사회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음 '소희'는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을 것이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영화관에서 나오는데 어떤 할머니가 내게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이렇게 좋은 영화를 모국어로 관람할 수 있는 게 부럽다고 말씀하셨다. 이야기의 힘은 국경을 초월한다고 생각했다.

영화제로 활발한 분위기의 거리를 걸으며 <다음 소희>를 곱씹다가, 내가 그것을 곱씹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유럽에서 내 목표는 '나'를 잘 아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글쎄요, 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었다.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영화? 좋아하는 색깔? 나는 세상의 모든 요소에 무관심했는지도. 근데 보통 랜덤한 것들의 집합으로 때우는 -여기서 '랜덤한 것들'을 선정해 주는 주체로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있을 것이다- 내 여가시간 속에도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

수채화보다는 유화 혹은 아크릴화를 좋아한다. 특히 두터운 물감의 질감을 이용해 붓질의 결들을 그대로 살려둔 그림들. 작가의 붓터치가 어느 순서와 어떤 방향으로 움직였는지 확연히 보이는 두꺼운 그림들, 그 특유의 묵직함을 좋아한다. 특히 전시장 내부의 조명을 받으면 붓칠의 두꺼운 자국 간 격차들에 아주 옅은 그림자가 생기거나 반짝거리기도 하는데, 붓터치 한 겹마다 각자의 흔적이 살아 숨쉬는 느낌이라 좋더라.

생각해보니 내가 해리포터를 몇 번씩 읽었던 이유도 비슷하다. 그 작품의 인물들은 주인공을 위해 존재하는 캐릭터들이 아니다. 각자의 삶과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는데 해리를 연결고리로 인연을 쌓고 있다. 그렇게 해리포터는 '해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해리가 속한 '세상의' 이야기가 된다.

미드 빅뱅이론도 그 많은 시리즈를 엄청 반복해서 봤는데 각자의 캐릭터들이 서로의 모자람을 드러내놓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그 다채로운 캐릭터성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듯하다.

음악도 최근에 오아시스 앨범에 빠졌는데, 보컬의 목소리뿐 아니라 악기들의 소리가, 그들의 하모니가 좋았다. 음악을 들으면서 보컬 외에 그 선율들을 구성하는 다른 것들의 소리에도 집중하면서 들어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오아시스 노래는 그렇게 되더라.

예능도 무한도전 돌려보는 걸 좋아하는데, 저번에 볼 때는 못 보고 지나친 멤버의 우스꽝스런 리액션을 새롭게 발견했을 때 좋아하기도 한다.

<다음 소희>도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사람들이 어울려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 변화가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영화였다. 나는 이제 대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말이다.



칸에서 가깝게 갈 수 있는 지역 중 니스가 있었고, 니스의 바다가 그렇게 예쁘다고 하길래 칸에서 머무는 시간 동안 반나절 정도 니스에 다녀왔다. 푸른 바다와 노란빛 건물의 조화, 니스의 첫인상이었다.



니스의 바다는 초록빛과 하늘빛과 남색이었다. 오묘한 색들이 섞여 있었다. 가만히 살피다가 파도가 치는 순간에 돌에 부딪힌 흰색 물방울들이 예뻐 보였다. 파도가 오길 기다리다 그 순간에 사진을 찍었다. 순간을 담았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사진을 찍는 걸 취미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결심하게 되면, 내 눈에 비친 장면들을 좀 더 눈여겨 감상하게 된다. 빛깔과 구도가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멈춰 서서 사진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는 것 자체가 아니라, 세상을 좀 더 눈여겨보게 되는 것이 내게 즐거움을 준다고 느꼈다.



노란빛 건물이 많았다. 건물 사이사이에는 빨래가 있기도 했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다. 그곳을 거닐며 눈에 한 번, 카메라 렌즈에 한 번 그 장면을 담는 게 좋았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같아서. 이렇게 세상을 감각해 본 적이 서울에서 있었나. 서울에서의 내게 거리는 그저 이동 과정에 불과했기에, 눈이나 카메라에 그 거리의 장면을 기억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서울이란 공간에 정을 붙이지 못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한 가지를 '나'에 관해 배웠다고 생각했다. 나는 세상을 면밀히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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