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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날 Oct 22. 2023

봄-3. [포르투갈] 리스본



평온함을 느낄 줄 몰랐다. 여유를 갖고 과정을 즐겨야 하는 게, 혹은 무언가를 하겠다는 생각 없이 느긋함을 감상하는 게 평온함을 느끼는 방법인데 그게 내겐 너무 어려웠다. 확실한 결과물이 예상되지 않으면 노력을 시작하지 않았다. 나는 무언가 흐트러지는 게 두려웠다.

인간관계도 먼저 맺으려고 하지 않았다. 주변인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편에 속했다. 어차피 멀어질 관계라면 굳이 먼저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불신이 잠들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과정을 즐기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현재를 즐길 수 있는 거니까.

리스본에서 나는 평온을 느꼈다.



내가 노란색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리스본의 조용하고 단란한 거리를 걸으며 자각한 사실이었다.



현관이나 베란다에 놓인 초록빛들은 그것들을 가꾸는 주인의 애정 어린 시선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 평온한 것들을 상상하며 천천히 걷곤 했다. 무언가를 이곳저곳 다니려고 부단히 노력하지 않았다.



옹기종기 모인 집들을 바라보며 바람을 느끼는 데 집중했다. 내가 이 공간과 연결되어있음을 감각하려고 했다. 단절이나 고립과 같은 단어는 내 우울이 악화될 때를 표현하는 가장 좋은 것들인데, 그 반대를 실천해보려고 했다. 효과는 아주 좋았다. 천둥번개가 물러가고 평온이 찾아온 느낌이었다.



바다에 닿은 리스본에는 아쿠아리움이 있었는데, 유럽에서 환경친화적인 것으로 유명하다는 말에 찾아가 보았다.



아쿠아리움 곳곳은 서식지의 환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만 같았다. 생물들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세계 곳곳의 흙과 돌과 해초를 옮겨 왔다는 설명이 눈에 띄었다. 전시관을 옮겨갈 때마다 확 다른 기온과 습도도 느껴졌다. 리사이클링 전시도 함께하고 있었다. 인간이 환경을 활용하면서도 보전하는 좋은 예시라고 생각했다. 리스본 거리를 걸으며 내가 이곳에 녹아들어 있다는 것에 평온을 느꼈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이 환경 속에, 환경이 인간 속에 녹아들어 있다는 느낌. 단절과 고립이 아닌 연결과 어울림.



리스본은 에그타르트가 굉장히 유명하다. 바다를 바라보며 에그타르트를 한 입 베어물 때 바사삭, 소리가 나며 입가에 떨어지는 패스츄리와 풍부하게 입 안에 퍼지는 에그 필링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

'연결'을 느끼는 방법은 오감을 활용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 지역의 유명한 음식의 냄새를 맡고 맛을 보고, 파도 소리를 듣고, 맑은 하늘을 보고, 따뜻한 햇살의 온도를 느끼고.



핸드폰을 보거나 할 일을 하느라 하늘을 여유롭게 바라본 적이 잘 없었는데, 주변을 살피며 걷다 보니 무지개와 맑은 하늘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서점이 있다기에 가 보았다. 이 곳에서 읽혔을 수많은 책과, 이 곳에서 무언가를 읽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세월의 쌓임이라는 것은 참 당연하면서도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기분이 좋아지는 나 자신을 보며, 나는 참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평온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특별할 것 없는 여행이어서 좋았던 리스본이다. 나는 평온을 느꼈고, 오감을 활용하는 방법을 연습했다. 또다시 스스로를 고립시키려는 우울이 찾아오면 나는 리스본에서 했던 것처럼 맛을 보고, 냄새를 맡고, 주변을 둘러보고, 온도와 습도를 느끼고, 나를 둘러싼 소리를 들어보려 할 것이다. 덜컹거리는 오래된 트램을 타며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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