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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날 Oct 13. 2023

겨울-2.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늘에서 본 인천 / 구름 위


나고 자란 국가를 처음으로 벗어나는 기분은 마치 진보랏빛 솜사탕 같았다. 나는 그런 색의 솜사탕을 본 적도 먹은 적도 없으나, 도저히 이 표현 외에는 여러분께 내 감정을 마땅히 전달할 길이 없다. 부드럽고 가볍게 몽실거리면서도 어딘가 싱숭생숭하고 심란한 기분이었다.


빛깔에 관한 묘사만으로 내 기분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맛으로 비유를 들겠다. 출국 이전에 내가 기대하고 예측했던 솜사탕의 맛은, 그러니까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에 오르는 내 마음은 달콤하고 포근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비행기에 올라 막상 그 솜사탕을 한 입 머금으니, 문방구에서 팔던 불량식품의 소다 향보다는 알싸한 고춧가루 향이 났다. 눈물까진 나지 않는데 괜스레 크흠, 한 번은 하게 되는 그런 자극. 숙제를 미루고 친구들과 놀 생각에 두근거리는 것이 아니라, 식당에서 푹 끓인 김치찌개를 먹다 문득 아버지가 끓이시던 찌개 맛은 어땠었나, 하고 추억에 잠기는 맛. 그런 맛이었다, 나의 출국은.


처음으로 한국 밖을 나가며 ‘나는 과연 어른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늘 ‘내게는 어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내가 그 앞에서 어른이 된 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어른. 내가 그를 안심시키지 않아도 되는 어른. 내게 아무 문제가 없고 아무 고민이 없는 것처럼, 내가 무엇이든 씩씩하게 잘 해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어른 역의 연기를 선보이지 않아도 되는 어른.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는 어른.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른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는 걸까, 하고도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영영 어른이 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능력적으로 그러지 못하는 건지 의지적으로 그러지 않으려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스스로에게 답했다. 비행기에 같이 탄 사람들을 흘긋 보며 ‘정말로 어른 같다’고 생각했다. 비좁은 기내 화장실에서 거울 속 나를 보며 ‘얼추 어른 같다’고 생각했다. 혼자 해외로 가는 비행기도 다 타 보고, 꽤 컸네, 하면서. 그럼에도 늘 어린아이던 동화 속 피터팬이 부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기내식 / 하늘에서 본 프랑크푸르트


고추장 스틱을 주머니에 넣은 채 비행기에서 내렸다. 기내식에서 고추장이 소량 담긴 스틱이 나왔는데, 이걸 어디에 짜 먹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간장불고기에 고추장을 짜 넣을 마음은 없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유용하게 쓰이겠지, 하고 주머니에 넣은 채 독일 땅을 밟았다. 입국심사를 앞두고 긴장이 되길래 부적처럼 지닌 주머니 속 고추장을 생각했다. 웃기지만 꽤 효과가 있었다.


숙소 앞 거리 / 침대 한 켠을 차지한 내 강아지들


커다란 캐리어에 백팩까지 메고 기숙사 입소 전 잠시 묵을 숙소로 향했다. 비행기가 도착하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머물다가 기숙사 입소 가능일에 맞춰서 학교가 있는 괴팅겐으로 갈 예정이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이었고, 나는 씻자마자 애착인형 세 마리를 꺼내 침대 위에 모셔뒀다. 이름은 크기가 큰 순서대로 봉구, 몽구, 퐁구다. 독일에서 처음으로 묵은 호텔 방의 TV가 LG 제품이라 반갑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한국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말하며 잘 도착했다고 알렸다. 봉구, 몽구, 퐁구가 침대에 놓인 사진도 찍어 보냈다. 아빠는 그걸 보더니, 쟤네가 세상에서 제일 출세한 인형들이라고 했다. 하긴, 지구 반 바퀴 돌아본 인형은 잘 없을 거야, 하면서 그 아이들을 한번씩 쓰다듬고 잠들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


느지막히 일어나 들뜬 마음으로 프랑크푸르트 시내로 향했다. 간판에 적힌 글자들의 의미는 모른 채 발음만 겨우 추측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아, 여기 독일이구나, 싶었다. 걸음마 수준인 내 독일어 실력을 밝히자면, 내가 할 수 있는 독일어 문장 중 가장 긴 문장은 “저는 독일어를 잘 하지 못합니다”이다. 그야말로 생존만 가능하다. (하지만 어찌저찌 8개월간 잘 살아남았다) 조금 부끄러우니 여담은 그만하고 여행기로 돌아가자.


프랑크푸르트 시내


내가 사는 집도 화사한 빛깔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란색, 하늘색, 분홍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의 건물 외벽과 마주하며 든 생각이었다. 베란다를 각양각색의 모빌과 화분 등으로 꾸며 놓은 집들도 많았다. 내게 집이란 무엇이었나. 서울에서 나의 집은 피곤한 몸을 눕게 하는 좁은 공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인테리어에 큰 관심도 없었고, 안락한 느낌을 내려는 노력도 크게 들이지 않았다. 나의 둥지가 없다는 생각은 자연스레 외로움과 불안, 우울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졌다. 서울에서는 원룸이나 아파트의 건물 이름만 제외하면 외벽 색이든, 창문의 모양이든 다 비슷했는데, 이곳에서는 벽이나 지붕의 색과 창문이나 대문의 모양이 제각기 달랐다. 그런 집에 살면 ‘나만의 공간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만의 공간’을 꾸며보는 것을 유럽에서의 작은 목표 중 하나로 삼기로 다짐했다.


분노의 비빔밥

인종차별을 당했고 비빔밥을 먹었다. 프랑크푸르트 거리를 하루 동안 걸으면서 “아시아인치고 예쁘다”, “칭챙총” 소리를 내뱉는 사람들에 더해, 내게 가운뎃손가락을 보이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며 주머니에 넣었던 내 고추장 부적이 그리워졌다. 그러나 그 친구(고추장의 존재가 절실했기에 ‘친구’로 지칭하겠다)는 숙소에 있었고, 나는 곧바로 구글 맵을 켜 ‘Korean Restaurant’를 검색했다. 나물과 밥을 한데 비비며 ‘이방인’에 대해 생각했다. 이렇게 제각기인 것들도 잘 섞여 좋은 맛을 내는데, 강아지들은 그렇게 모습이 다양해도 만나면 서로 꼬리를 흔들던데, 인간 사회에서는 왜 어울림이 힘들고 배제가 쉬울까. 나는 한국에서 내국인이라는 주류로 살면서 누군가를 배제한 적은 없는가. 뭐 그런 상념에 잠겼다. 떠오르는 의문은 많았으나 명료한 대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다만, ‘낯선 이’로서 살아본 유럽에서의 시간이 나라는 존재를 한 걸음 떨어져 고찰하는 데 도움이 될 줄은, ‘낯선 이’로서 소외감만 느끼던 이 때까지는 몰랐던 듯하다.


다음 날 아침이 밝자마자 무거운 짐을 다시 챙겨 괴팅겐으로 향했다. 나의 해외여행 첫 도시, 프랑크푸르트는 그렇게 ‘진보랏빛 솜사탕’ 같은 맛으로 남았다. 분노에 찬 비빔밥의 맛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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