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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날 Oct 16. 2023

겨울-3. [독일] 괴팅겐


괴팅겐은 독일 중부 지방에 있는 작은 대학도시다. 교환학생을 독일로 가기로 결정한 이유를 말하라면, 행정학이나 법학 관련 논문을 볼 때마다 '좋은 레퍼런스'로서 독일의 사례나 논의가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 인간이 좀 더 행복해지는 방법,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회가 기능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독일은 굉장히 매력적인 사회라고 생각했다. 독일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는데도 그 두려움을 이길 만큼 독일에서 살아 보고 싶었다. 무릎 높이를 훌쩍 넘는 커다란 캐리어와 무거운 백팩을 메고는 끙끙대며 기차에 올랐다. 혹시나 내릴 역을 놓칠까 싶어 다음 역이 표시될 때마다 더듬더듬 독일어 알파벳을 읽었고, 괴팅겐인지 확인했다. 그러기를 몇 번, 나는 괴팅겐에 도착했다.



내가 한 학기 동안 지낼 기숙사의 이름은 Akademische Burse. 기숙사가 여러 건물로 나뉘어 도시 곳곳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내 기숙사는 중앙캠퍼스 내부에 위치하다시피 했다. Burse는 작은 2층짜리 옛 건물이었는데, 기차역에서 마주했던 풍경과 마찬가지로 이 곳 입구에도 자전거가 많이 주차되어 있었다. 수업을 자주 듣는 건물이 기숙사와 매우 가까워서 나는 자전거를 사지 않았지만, 자전거는 작은 도시 괴팅겐에서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교통수단이었다. 한국에서 자전거를 볼 때마다 가끔 괴팅겐이 생각날 정도로, 내 버디를 마주칠 때면 늘 그 친구의 옆에는 자전거가 있을 정도로, 자전거는 괴팅겐의 한 부분이었다.

버디의 안내를 받아 기숙사 내 방을 찾았고, 짐을 풀었다. 괴팅겐 기숙사에서 제공하는 이불 세트의 색감은 굉장히 알록달록했는데, 깔끔한 무채색 계열을 선호하던 나였으나 강아지 세 마리(물론 진짜 강아지가 아니라 강아지 인형들이다)를 올려 놓으나 꽤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만족했다. 그렇다, 나는 역시나 강아지 세 마리부터 가방에서 꺼내 침대 위에 소중히 놓아 두었다. 여권이고 노트북이고 다른 짐을 정리하는 것은 뒷전이었다.

심리상담을 받던 도시에 관해 글을 쓸 때 자세히 쓰겠으나, 나는 이 강아지들에 늘 양가감정이 있었다. 항상 곁에 두고 싶으면서도, 언젠가는 떼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아지 중 특히 아끼는 한 친구는 지구에 존재한 햇수를 따지면 나와 동갑이거나 나보다도 더 오래 되었는데, 나는 모든 인간들이 언젠가 내 곁을 떠난다는 불신 속에 살았기 때문에, 홀로 움직이지 못하는 무생물이어서 내 곁을 절대 먼저 떠나지 않는 존재인 이 강아지를 아주 사랑했다. 그러면서도 내게 그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 친구는 그런 것을 할 줄 모르는 무생물이라는 것을 자각할 때면 한없이 공허해졌다. 괴팅겐의 첫 날에도 그런 감정을 느꼈다. 지구 반대편까지 데려온, 심지어 수하물로 맡기면 혹여 분실될까봐 기내 수하물용 작은 가방에 꾹꾹 세 마리를 우겨넣어 들고 온 아이들의 플라스틱 눈 속에는 내가 그들에게 주는 것만큼의 따스함이 없는 듯해서.

내가 사랑하는 존재와 애정을 교류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큰 허무함이었다. '인연'이라 하기에는 '인'이라고 할 수 없는 존재들에 쏟는 애정의 허무함을 알면서도 그 애착을 끊어낼 수 없는 내가, 그만큼 '인연'에 대한 불신으로만 가득 찬 것 같아서 스스로가 안쓰러웠다.

그럼에도 내게는 그 세 아이의 플라스틱 코를 쓰다듬는 것과 자라지 않는 털을 만지작거리는 것만큼 '사라져버리지 않는 인연'의 안정감을 느낄 일이 없었다. 그 소중한 존재들을 품에 안고 괴팅겐의 첫 밤을 보냈다.



다음 날 마트에서 이것저것 생필품을 샀고, 기숙사 내부를 둘러봤다. 낮은 2층짜리 건물은 처음 와 보는 사회에서 느끼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던 '정감'을 주었다. 좁은 나선형 계단, 리모델링된 내부와 달리 세월의 때가 느껴지는 외벽과 지붕. ㅁ자로 된 건물 내부에 있던 작은 정원. 지친 날에 몸을 뉘일 공간의 분위기가 꽤 정감 있는 것이라는 점은 낯선 곳에 새로이 온 이방인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괴팅겐 시내도 같은 느낌이었다. 서울에 비하면 건물들의 층 수가 낮은 편이었다. 높다고 생각되는 건물도 4~5층을 넘지 않았고, 보통 상가 건물은 3층짜리였다. 무채색 계열로 통일된 서울의 빌딩과 대비되는 또 다른 점은 건물마다 형형색색의 파스텔 빛깔을 자랑한다는 것이었다. 무채색을 좋아하면서도 '무채색의 서울'에는 무엇인지 모를 답답함을 느끼던 나였다. 어찌 보면 내가 무채색을 좋아했던 것은 그만큼 그것에 익숙했다는 것이고, 답답함을 느끼던 것은 익숙하던 것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던 듯하다. 연두색 빛깔의 건물에 입점한 옷가게와 하늘색 빛깔의 건물에 입점한 서점, 노란색 빛깔의 건물에 있던 독일 슈니첼 음식점. 무언가의 존재가 빛깔로 기억된다는 것은 생경하면서도 온화했다.

이질적인 사회에서 나는 내게 평온을 가져다주는 것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간판의 글들은 대충 그 발음만 짐작할 수 있었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이야깃소리는 전혀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없었음에도 나는 이 도시의 거리에서 차가움이 아닌 따뜻함을 느꼈다. 외롭고 서글플 줄로만 짐작했던 괴팅겐의 거리였는데, 그 거리의 색채들을 닮아 내 마음도 파스텔톤으로 물드는 듯했다. 낯선 환경이었기에 오히려 익숙했던 것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듯했다. 그간 익숙했던 것과 이 낯선 것의 차이는 무엇이며, 그 둘 사이에서 나의 마음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관해. 단순히 새로운 거리를 걸으면서도 복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 미묘한 감정이 싫지 않았다. 그 고민을 하려고,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을 더 이해하려고 이 곳에 온 것이니까.



괴팅겐 대학교의 중앙도서관은 학교 건물 중 기숙사 내 방에 버금가도록 내가 좋아하는 곳이었다. 책장 중간중간의 나선형 계단을 이유 없이 오르내리며, 통유리로 되어 바깥의 햇볓이 환히 들어오는 외벽을 바라보기를 참 좋아했다. 좋아하는 공간인 중앙도서관에 앉아서 가만히 바깥 풍경을 보다가, 한국에서 나는 '좋아하는 공간'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 적 있다.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지날 때 햇살에 비치는 잔물결을 보는 것을 좋아하긴 했으나, 그것은 몇 분 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느낄 수 있는 일시적 감정일 뿐이었다. 부정적 감정이 들 때마다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지만, 어질러진 자취방은 그저 '자는 곳'에 불과했다. '공간'의 중요성 자체를 그 때는 몰랐던 것 같다. '쉬는 곳'을 서울에서 찾지 못했던 나는 늘 피로에 쌓여 있었다.

통유리로 된 도서관의 외벽, 그 장점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바깥에서 비가 내리면 안에서도 그 빗방울의 춤을 감상할 수 있었고, 도서관 바깥 잔디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면 안에서도 그것의 빛깔을 한껏 즐길 수 있었다. 나는 여기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 발견했다. 그건 '연결'이었다. 내가 바깥 세상과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이 굉장히 좋았다. 뿌리 깊이 쌓인 외로움 탓이라고 생각했다. 조용히 혼자 할 일을 하는 공간인 도서관에서도, 고개를 들면 바깥 환경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고 서울에 돌아가서도 이런 '연결'을 느낄 공간을 내 안식처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했던 괴팅겐의 요소들은, 따지고 보면 다 '연결'에 관련된 것이었다. 학식을 먹으러 식당에 갔는데, 회오리 모양 감자튀김을 한가득 집고 케첩을 찾았다. 학생들이 줄을 서서 큰 케첩 펌프 아래 무언가를 대고 케첩을 받아 가고 있었는데, 그 무언가는 종이나 플라스틱이 아니라 아이스크림 콘 재질의 미니 접시였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식용 접시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메뉴를 확인할 때마다 비건 옵션이 항상 있었던 것도, 환경 보호를 위해 비건 식사를 선택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고자 하는 학교 측의 노력이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평소 환경에 관해 큰 관심이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큰 맘 먹고 텀블러를 사 놓고도 정신없는 아침에 텀블러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고, '해치울 것들-이를 테면 공부할 교재 같은-'로 가득 찬 가방을 메고 서둘러 나가기에 바빴다. 그럼에도 제로웨이스트 샵의 인스타 계정은 구독하면서 게시글이 올라올 때마다 꼼꼼히 읽었던 것은, 환경이라는 멀어 보이면서도 가깝디 가까운 존재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마음이 참 따뜻하고 멋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와 '연결'된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과 존경은, 어찌 생각해보면 나 또한 그들처럼 '나와 세상의 연결성'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던 마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먹을 수 있는 케첩 그릇과 매일 있는 비건 메뉴 옵션은 내게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괴팅겐에서 '사람들과의 연결'을 경험할 기회는 꽤 많았지만,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그리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로 남는다. 그런 나도 꼭 참여하려 했던 게 학기 초의 기숙사 바베큐 파티였다. 그러나 인간관계를 맺을 때 굳이 먼저 나서지 않던 내 성향은 하루아침에 바뀔 리 없었고, 처음 보는 친구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재미와 동시에 조금은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한국에 관해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물어봐주는 친구들 덕에 분위기를 점차 편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참 지난 후의 이야기지만, 나는 교환학생을 마치고 돌아온 뒤 학교 커뮤니티를 둘러보다 요리 원데이 클래스에 덜컥 신청해서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요리를 하고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즐긴 적이 있다. 이런 걸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내 오랜 친구들은 니가 무슨 일이냐며 굉장히 놀랐는데, 나는 괴팅겐에서의 바베큐 파티가 그 계기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굳이 하지 않던 일을 처음 하는 경험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한 경험이 아니더라도 그 후의 나를 굉장한 정도로 변화시킬 수 있다. 바베큐 파티가 그랬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내가 그 파티를 쾌활하게 충분히 즐긴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내게 처음인 종류의 경험이 또 하나 생겼다는 것이 중요했다.



기숙사 주방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참 좋아했다. 나는 16번 방이었기에 창문 쪽 냉장고의 중간 층을 사용했는데, 요리는 독일에서 새롭게 시작한 것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는 냉장고가 배달 음식에 딸려온 반찬이나 음료수로만 가득했는데, 독일에서는 요리 재료로 가득했던 것도 내 변화 중 하나였다.



이번 브런치 글을 쓰면서 괴팅겐에서 살던 시절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스토리들을 넘겨 보았다. 비빔밥이 그리워서 독일 마트에서 산 샐러드용 야채믹스와 아시안 마트에서 산 고추장과 참기름을 한데 섞고, 대형 아시안마트가 있는 근처 도시까지 가서 불고기 양념장을 사 온 다음 스테이크용 고기를 얇게 저몄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끝내고 나서는 기숙사 정원 뷰를 감상하며 저렴한 브랜드의 아이스크림을 양껏 먹기도 했다.

먹거리를 스스로 챙긴다는 것은 참 당연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기본적인 것임에도 한국에서 일에 치여 살던, 정확히 말하면 우울이 올라오는 것을 막으려 스스로를 최대한 바쁘게 만들고 일을 계속해서 벌여 놓기에 바쁘던 내게 음식을 스스로 하는 것은 사치였다.

재료를 고르고, 그 재료들의 활용법을 생각하는 것은 '나를 스스로 챙긴다'는 느낌을 주었다. 시간을 내어 장을 보고, 오늘 내가 먹고 싶은 것이 어떤 맛과 향을 지닌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은 참 생경했다. 그럼에도 '나를 내가 챙긴다'는 느낌을 하루에 세 번, 식사를 준비하며 '최소한' 세 번 이상 느껴보는 것은 나의 회복에 굉장한 도움이 되었던 듯하다.



떡볶이로 보이는 것은 커리부어스트라는 요리다. 요리라기엔 시판 소스를 사서 소세지와 함께 데운 것이지만, 케첩 맛과 커리 향이 섞여 독특한 맛을 냈다. 브레첼 종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사용 빵이었으며, 저기에 페퍼로니 맛 크림치즈를 발라 먹기를 즐겼다. Milch Reis는 쌀 푸딩인데, 우유에 불린 쌀에 초코시럽이나 체리시럽을 섞어 먹는 맛..이라고 설명하면 한국 친구들 중에 경악하지 않는 친구는 없었다. 그래도 내 입맛에는 꽤 부드럽고 맛있어서, 독일이 생각날 때 입안에 감도는 맛이다. ja! 브랜드는 우리나라 마트 PB상품과 비슷한데, REWE라는 마트의 자체 브랜드로 저렴해서 많이 이용했다. 거의 모든 음식 재료를 ja! 브랜드로 샀던 듯.



독일에 가서 한식 실력이 늘 줄은 몰랐는데, 그렇게 되더라.



아시안 마트에서 산 칼국수 라면 하나도 죽까지 야무지게 해 먹을 만큼 한국의 맛이 그리웠다.



각종 파스타에도 열심히 도전했지만, 가장 맛있었던 건 비빔냉면이 그리워 파스타 면을 삶은 뒤 식초와 고추장으로 양념장을 만들고 오이와 계란을 얹어 먹은 거였다. 입맛이란 변하기 쉽지 않은가보다.



괴팅겐 중앙캠퍼스에는 나무그늘이 크게 드리워져 있다. 그곳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는 게 좋았고, 학교 주변 거리를 걷다가 중고 물품을 자유롭게 놓고 가져갈 수 있는 곳에서 마음에 드는 소설책 한 권을 집어온 것도 좋았다.

이방인으로서, 참 따뜻한 곳에서 터잡았다는 행운이 있었다.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돌아갈 곳'이 괴팅겐이라는 장소였음은 행운이었다. 파스텔 톤의, 햇살 좋은, '연결'된 공간이 나의 '돌아갈 곳'이라는 것은 여행을 다니면서 발이 아플 때도, 맘이 아플 때도 안심을 주는 사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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