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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글쟁 Dec 04. 2020

안 좋은 기억은 잘 지워지지 않는다

다섯 살 어느 날의 선명한 기억

기억을 골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게도 사람은 그럴 수 없다. 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크고 작은 파편 같은 기억들을 간직하고 살아야만 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내가 아이였을 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몇몇 기억은 이전보다 훨씬 강렬한 색채로 남아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내가 다섯 살 때의 일이다. 어린 기억 속에도 오빠는 집안의 8대 장손으로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다. 물론 집안의 첫 딸이었던 나 또한 예뻐해 주셨지만, 나보다 오빠가 훨씬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못 박은 사건은 평범한 어느 날 일어났다.


내 인생 다섯 번째 가을이었다. 시골 할아버지 댁 마당에서는  나락 타작이 한창이었다. 우리 가족, 사촌 가족, 고모, 삼촌, 마을에서 할아버지 댁 일을 거들어 주는 아재들까지 타작을 하느라 분주했다. 내 키만 한 누런 나락들은 켜켜이 쌓여 타작당하길 기다렸다. 꼭 헤어롤 같이 생긴 탈곡기가 빠르게 돌아가는 만큼 나락이 낱알은 수북이 마당에 쌓이고 있었다. 어른들은 모두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두 살 터울의 오빠와 나는 신나게 나락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두 살 터울의 유아들이 늘 사이좋게 놀 수는 없다는 사실은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금방 알 것이다. 오빠와 나는 잘 놀았지만 무슨 수가 틀렸는지 이내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5살, 7살짜리가 티격태격해봤자 뭐 특별하겠는가. 금방 헤헤거리며 다시 놀 일이니 말이다. 그런데 자기가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오빠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마침 마당에 나오신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다짜고짜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의 요지는 분명 '얘가 날 괴롭혔다'는 것이었다.


부엌문 앞 부뚜막에 우뚝 선 할아버지는 훌쩍이는 오빠의 손을 잡고 소리쳤다.

"얘 요년! 어디 오빠를 울리고! 이 망할 년!"

다섯 살의 눈에는 부뚜막에 올라선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께서 호통치는 순간에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영화 속 슬로 모션 장면처럼 마당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눈이 나에게 쏠렸다. 분주하게 돌아가며 마당을 가득 채우던 탈곡기도 소리도 멈춰버렸다.

할아버지는 훌쩍거리는 오빠를 데리고 사랑방으로 가셨고, 할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자 그제야 눈물이 고여 눈 앞이 흐려졌다. 그때서야 엄마가 다가와 나를 달래주었다.


그 순간의 할아버지는 나빴지만 사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잘해주셨다. 다만 잘해주신 수많은 기억보다 다섯 살짜리 아이에게 '망할 년'이라고 했던 그 순간의 할아버지가 또렷한 건 왜일까. 다섯 짜리가 오빠랑 놀다가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지금까지 살면서 할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그 순간의 기억이 빠짐없이 났던 걸 보면, 좋은 기억보다 안 좋은 기억이 더 잊히지 않는 것 같다. 하필 안 좋았던 기억의 파편이 내 기억 속에, 내 가슴속에 깊이 박혀버린 것이다. 지금 내 할아버지가 그런 말을 했던 나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사실 할아버지에 대한 서운한 기억보다 좋은 기억이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말이다. 다만 좋은 기억보다 안 좋은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난다는 것,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이 모여 한 사람을 이룬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굳이 이런 좋지도 않은 기억, 지극히 사적인 기억을 끄집어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 과정 자체가 일종의 자가 치유 과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고, 글을 쓰면서 내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날의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그런 비슷한 일들을 겪지 않았더라면 나는 조금 더 나은 성격을 가질 수 있었을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자주 하는 생각들이다. 나에게는 이미 지나버린 일이고 이미 지울 수도 없는 일이지만 내 아이들은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참 신기하지 않은가. 수많은 좋은 기억들보다 안 좋았던 몇몇 기억들이 더 선명하다는 것 말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구식 탈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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