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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Aug 26. 2020

입학을 못한 초유의 3월, 유아백수라니

그래도 날씨 따수워지면 나아지겠지 했던 우리의 단합대회

 2020년 3월 2일에 입학을 못한 초등학생이 우리 역사에 또 있을까? 3월 2일이 일요일이었다면 3월 3일의 경우를 제외하고. 내가 사십 평생 살아오면서 처음이라고 했더니 전쟁둥이 아빠도 칠십 평생 처음이라고 하셨다. 우리 첫째의 초등학교 입학. 양가 첫 손주라 이미 구정 지나고 부터 이런저런 계획이 많았던 우리의 2말3초. 계획은 이제 사뿐히 즈려밟고 집콕모드로 전환해야 한다. 하아. 집콕이라니. 친구들 사이에 모성애없는 엄마로 유명한 나인데, 어쩔 수 없이 모성애를 끌어와야 한다. 어디서 끌어오지.


 초유의 3월은 시작되었고, 둘째의 어린이집도 휴원했다. 남편의 회사는 그런대로 돌아가는 중이고.

 절친노트, 친해지길 바라! 우리 셋의 단합대회가 무기한으로 시작되었다.


1. 캠핑놀이


캠핑 왔단다. 연말에 친한 가족들이랑 캠핑 한 번 다녀온게 인상적이었나보다.

느 날은 빨간색 블럭을 가운데에 막 모아놓더니 서로

"안추워? 발시렵지? 여기서 불 좀 쪼여."

하며 불멍때리기 시전ㅋㅋㅋㅋㅋㅋ


겨울에 경험한 첫 캠핑이라 얘네의 캠핑놀이 대사의 태반이

 "안추워? 잠바 덮어."

 "코코아줄까?"

 "이리와 같이 덮자." 등등.

산교육이 이렇게 중요한거구나.

첫경험이 이렇게 중요한거구나 싶었다.


2. 무엇이든 만들어보세요



딸기 끝물에 못 생긴 딸기들을 사서 저렇게 뭉게기, 설탕 넣고 섞기, 끓이고 졸이기 까지 하여 굳이 딸기잼을 만들었다. 나도 알고 있다. 도깨비방망이로 휘리릭 저으면 끓이는걸 제외하면 5분도 안되어 끝날 일이라는 걸. 우리는 시간이 너무너무너무 많았으므로 모든 과정을 수제로 하였다.


시중에서 파는건 엄청나게 설탕을 많이 넣나보다. 나도 보통 밥그릇 정도의 양을 넣으면서도 손이 벌벌 떨렸는데 그다지 달지 않았다.


3. 브라우니 만들기



이건 시중에 파는 브라우니믹스로 만들었다. 달고 맛있어서 아이스라떼와 찰떡!


4. 미디어 교육



꼭 필요합니다. 엄마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5. 미술시간


에마 알머슨을 따라해보고자 했지만...


전지를 사서 그리게 했다. 큰 종이에 그리면 혹시나 시간이 더 잘 갈까 싶어서.

사실 그렇진 않았다. 너무 크다보니 아이들이 금방 질려했던 것 같기도 하고, 큰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색칠을 너무 꼼꼼하게 하려고 해서 색연필이며 크레파스 닳는 소리에 마음이 같이 닳기도 했다.



인터넷에 '홈스쿨링 아이템'이라고 치면 나오는 많은 것들을 주문했었다. 사진에 있는건 이름을 까먹었고, 시간이 제일 잘 가고 아이들도 좋아했던건 글라스데코였다. 이사온지 한 달 만에 아이들 방 창문은 글라스데코가 점령했고 아이들은 슬슬 거실 샷시까지 진출하려고 했다. 그것만은 제발.



마음에 큰 준비가 필요한 플레이도우.

아이들도 좋아하고 내 생각에도 아이들에게 참 좋은 도구인데 후처치가 너무 힘든. 저거 한번 하고 나면 옷 속에 작은 파편들이 다 들어가있는건 물론이고 옷에도 다닥다닥 붙어서 잘 안떨어지기에 바지는 벗고 하라고 한다.



<슈링클>이라고 하는, 이것도 홈스쿨링 추천 아이템이었다. 도안에 색칠을 하고 오븐에 구우면 열쇠고리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변신하여 나타난다.


6. 지적인 활동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방, 근근넝넝이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그림책방이고, 커피도 파신다.

코로나때문에 예약제로 운영될 때 다녀왔다. 책이 내뿜는 에너지를 느껴보고 만져도 보고 마음에 드는 책도 고르게 했다. 아이들도 책 취향이 확고하게 있는지 나나 사장님이 권해주는걸 바로 받지 않고 자기의 주장? 고집?대로 쇼핑했다. 아이들이 자기 주장을 관철할 만큼 많이 컸구나 싶어 뿌듯하기도 했지만, 앞으로 좀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7. 겨울왕국2 후유증



순록이 사람보다 낫다나? 그 노래를 하루종일 떼창으로 구십구창 정도 하는 것 같았다.


8. 미디어 교육 후 눈 풀기



멀리 보며 안구를 쉬라고 했다.


9. 장금이 접선중



한식부터 이탤리언까지 두루두루 섭렵중


10. 친구초대


3월엔 나도 그렇고 친구네도 그렇고 아침 부터 서로의 집을 오갔다. 하루가 정말 길기에. 청소는 포기하고 아이들의 건강을 챙겼다. 우리 아들은 글라스데코를 왜 자기 몸에 하는지 모르겠고.


친구와 함께 놀기, 양보 하기, 차례 기다리기, 심지어 대화 하기 등도 모두 온라인으로 배워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인가. 생각하면 끔찍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긴 한데 사회적으로 안살아도 살 수 있는 동물인가. 지금은 인간의 한계의 도전하는 시기인가. 이 시간을 통해 아이들이 배워야 하는 건 무엇일까. 어른은 그렇다 쳐도 아이들 말이다. 미안하고도 끔찍한 시대가 왔고, 아직 안 끝나고 있다.


11. 베란다 텃밭


방울토마토 모종 10개를 심었다. 지금은 많이 자라서, 열매도 많이 먹었다. 아주 많은건 아니었지만.

한창 성장기(?)에 있을 때 장마때문에 볕을 못봐서 그런지 성장하다 멈춘 느낌이다. 이외에도 오이고추와 가지가 더 있는데 진딧물이 너무 껴서 걔네는 포기했다ㅠ


12. 급식납품 농가 살리기


이게 2만원어치. 두 번 정도 더 샀다. 싼편같진 않았지만 우리 정도 가족에게 알맞는 종류와 양이었다. 코로나때문에 타격입은게 한두 업종이 아니겠지만 일단 우리에게 필요하면서 도울 수 있는 부분에서 조금씩 노력해 보았다.




3월은 이렇게 아이들과 단합대회를 하며 살았다. 하루는 길지만 일주일은 짧았고, 입학(개학)은 4월로 연기되었고, 직장에선 아직 개관일정이 없는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 와중에 남편의 재택근무도 있었는데, 재택근무는 남편만 좋아했다. 나로서는 애가 셋이 된 너낌.


4월이면 끝나겠지

따뜻해지면 끝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살던, 아직은 겨울같았던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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