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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Aug 22. 2020

시작은 2월이었다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지

1월에 설 연휴 보내고 출근했더니 중국 다녀온 사람, 발열 있는 사람 보건소에 연락하세요.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 하루 이틀 보냈는데, 2월 10일 잠정 휴관한다고 했다(수도권 확진자가 300명이 넘는 지금(2020년8월22일)은 휴관 소식이 없다). 확진자가 20명 수준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굳이 휴관까지?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2월 중순에 이사를 앞두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던 중이라 차라리 낫다 싶기도 했다. 이사하는 날 휴가 안내도 되니까. 그때는 그런 가벼운 마음이었다.

다행히 열흘 정도 지나서 재개했는데 3일 있다가 다시 무기한 휴관으로 변경되었다. 대구의 신천지 교회에서 대규모 감염이 예고되던 때였다. 2월의 출근 일수는 이틀. 그 후로 5월 5일까지 단 하루도 출근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건 넓어진 집 때문이었다. 화장실 두 개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 노래를 불렀는데, 드디어 꿈을 이루었다.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꿈이 이루어졌다니까요.


집이 넓어져서 너무 좋아요. 더 많이 어지럽힐 수 있으니까.


아이들의 활동량도 늘었지만 나의 활동량도 늘었다. 고오맙다. 내가 다니는 직장도 집에서 걸어서 4분 25초 씩이나 걸리는 곳이라 걷다가 만 느낌인데 아이들이 참 많이 움직이게 해 준다. 열도 뻗치게 해주고. 아이들 덕에 운동도 되고 혈액순환도 돼서 좋네.



욕조 있는 화장실이 숙원사업이었다. 나는 반신욕 할 수 있어서 좋고, 아이들을 욕조에 넣어 놓으면 나도 좀 쉬는 맛이 있어서 좋았다. 지금은 아이들이 좀 더 컸다고 혼자 샤워를 한단다. 욕조에 들어가서 하는 통목욕을 하면 놀 시간이 줄어드니까 빨리 씻고 나와서 놀려고. 그래서 이제는 좀처럼 통목욕을 하지 않는다. 저기서 오래 놀게 하려고 거품입욕제까지 샀는데, 당근 마켓에 팔아야겠다.


분리수거있던 날 버려져 있던 천재블럭상자를 들고 왔다. 아이들 씻을 때 같이 씻기라고 했다. 그 날은 1시간 정도 쉴 수 있었다. 대박.


넓어진 2월의 집은 나를 당황하게도 만들었지만 다행이기도 했다. 전 보다 열 평 이상 넓어진 집에 내 앉을 곳이 없다는 느낌이 며칠간 지속되어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바랐던 새 집이지만 새 동료나 새 사무실처럼 조금은 어색하고 낯선 느낌을 그냥 지나치게 하지 않았다. 충분히 치워주고 충분히 매만져 준 후에야 비로소, 사실은 아이들이 하도 에너지를 발산하는 바람에 새 집의 신분하락을 맛 본 후에야 조금 편해졌달까. 편해진 건지 익숙해진 건지, 매일 청소기를 미는데 매일 더러워지는 집이 신기했다.


집콕시대에 열 평 이상 작았던 집에 사는 중이었다면... 게다가 나는 "집은 상처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답답함과 우울함은 더 컸을지도 모른다. 이사의 시점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뷰는 훨씬 좋았던 전 집에 대한 미련 때문에 앞 동으로 턱 막힌 베란다 창문을 볼 때마다 나도 턱 막히는 느낌을 받곤 했지만, 다 가질 수는 없는 거라는 마음으로, 집콕만이 답인 시절에 행복한 소리는 그만하자는 마음으로 마음을 이 집에 더더욱 붙이려고 했다.



유일한 외출은 고구마 라떼가 있는 카페였고, 나도 이렇게 얼굴 파묻고 먹고 싶다. 다행히 손님이 없었고, 아이들은 그림 그리기와 스티커 붙이기를, 나는 커피와 약간의 독서를 즐길 수 있었다. 단골이라 그런지 사장님은 자꾸 나보고 셋째 낳으란다. 하도 그러셔서 턱밑까지 "사장님이 키워주실 거에요?"라는 말이 받치는데 아직 내뱉진 못했다. 사장님의 따님은 아들 하나 있는데, 맞벌이로 힘들게 사는 걸 보니 둘째 낳으란 말을 못 하시겠단다. 아니, 저도 맞벌인데요? 남은 다 편하고 걱정없이 사는 줄 안다.

(여기 카페 사장님은 군고구마를 갈아서 해주시는 거라 그냥 파우더 넣어서 만들어 주시는 데랑은 맛이 다르다)



넓은 집에 가면.... 이라며 미뤄두었던 레고도 사주었다. 10킬로 6만 원. 당근 마켓에서.

그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 안에 레고만 들어있던 건 아니었다. 쓰레기들 골라내서 버리고 때가 꼬질꼬질 껴있는 것들 야밤에 세척하고 말리느라 펼쳐놓고, 너무 더러운 블럭도 버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픽은 저 옆에 천재블럭이었지 레고가 아니었다. 8세와 6세에겐 아직 어려운가 싶었는데, 8살 따님에게 여쭤보니 너무 작아서 끼웠다 뺐다 하는 게 귀찮단다.



너무 답답했던 날엔 아이를 친정으로 보냈다. 결혼할 때 돈이 없어서 텔레비전을 못 샀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도 텔레비전은 없다. 집 살 돈은 있는데 텔레비전 살 돈은 없더라. 지금까지도. 외할머니네 가는 날 만이 미디어가 허용되는 날인데, 참 멋진 포즈로 보고 있다. 내 팔자 너와 같았으면 좋겠구나.


2월은 코로나도 있었지만 넓은 집도 생겼다. 3월이면 첫째가 입학도 하겠지. 이사했으니 시부모님도 한 번 모셔야지. 입학 때 맞춰서 오시면 되겠네. 이런저런 이벤트에 대한 생각들로 복잡하기도 행복하기도 했다.

독박이 힘이 부치면 친구네 집에 가기도 하고, 친구가 우리 집에 오기도 하며 하루를 보내거나, 아직 재택근무까지는 말이 안 나왔던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가기도 했다. 혼자 만들면 5분이면 끝날 것을 아이들을 끌어들여 핫케익 만들기, 도너츠 만들기 등을 일부러 하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조심하면 지나갈 줄, 없어질 줄 알았다. 사스나 메르스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2월의 나는 청소를 빨리 하는 사람이 되었다. 완성도와 상관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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