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분카레 Mar 02. 2024

카프카와의 대화-논제포함

<구스타프 야누흐, 문학과지성사, 감상과제,발쮀문 포함 >


지난주에는 이 책이 출간되게 된 배경과 카프카에 대한 이야기를 짤막하게 실었다. 오늘은 이어서 <카프카와의 대화>에 나오는 카프카와 야누흐 두 사람이 나눈 대화들 중심으로 카프카의 전반적인 생각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카프카에 대한 나의 견해와 토론에 필요한 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책의 중반부를 읽을 때쯤부터 줄곧 드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카프카는


나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 문학 자체로 구성되어 있다.

고 할 정도로 문학을 사랑했다. 문학을 사랑한 그가 어째서 늘 자신의 작품이 출간되는 것을 거부하고 심지어 죽을 때는 친구 부르트에게 자신의 흔적을 모두 불태워 달라고까지 했을까. 물론 문학을 좋아하는 것과 자신의 문학을 남기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는 있다. 카프카는 또


나는 우리를 깨물고 찌르는, 다만 그런 책들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해.


라고 말하면서 어째서 자신의 문학이 도끼가 되는 것을 꺼려했을까. 인간과 사회를 도끼눈으로 바라보고 도끼로 찍듯 부조리를 파헤치려 하지 않은 점에 대해 의아했었다.


이에 대한 갈증은 책을 덮을때쯤에는 어느정도 해갈이 되었는데 이는 카프카와 4년동안 나눈 대화를 야누흐가 생생하게 이야기하듯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주옥같은 카프카의 말과 생각들, 잡힐 듯 잡히지 않은 모호한 말들, 차원이 높아서 감히 이해불가인 말들이 한데 버물려 있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카프카는 본인의 글을 매우 하찮게 여기며 개인적 낙서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으며, 매우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예민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큰 기대와 허세를 품지 않았음과 동시에 인간소외에 대한 강한 회의를 가지고 있음을 여러 언급에서 알 수 있었다.


사회가 결코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여 주지 못할 것이란 것과 악이 근절될 수 없으며 오히려 강화되고 악의 영향은 가속화 되어 간다는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인간은 그저 자본을 증식하기 위한 유행에 뒤진 도구이며 역사의 잔재일 뿐이라고 말했다.


어찌할 수 없으면 침묵을 지켜야 해요. 누구도 절망 때문에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켜서는 안 돼요. 그 때문에 내 서투른 글은 모두 없어져야 해요. 나는 빛이 아니에요. 나는 그저 내 자신의 고통의 근원으로 빠져들 뿐이에요. 나는 막다른 골목이에요.(p341)


카프카는 재판을 ‘가혹하고 무자비한’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부정적인 시선을 가졌다. 그런 그가 보험공사에서 법률가의 일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퇴근 후  글을 쓰는 시간 덕분이었다.


논제와 발췌문으로 이야기 나누기


논제1>

카프카는 친구들이 자신의 작품을 대신 출판하는 것을 묵인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비난합니다. “나는 주위를 실제 이상으로 강하게 만들고 있어요. 이것은 물론 기만이죠. 나는 법률가예요. 그러므로 나는 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죠.”(p71)라고 하는데요. 이와 같은 자기평가에 대해 여러분은 카프카가 어떤 사람임을 짐작하시나요?

발췌1  >

“사실 나는 이미 타락해서 수치심도 모른 채 스스로 이런 것의 출판에 협력하고 있어요. 재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나는 주위를 실제 이상으로 강하게 만들고 있어요. 이것은 물론 기만이죠. 나는 법률가예요. 그러므로 나는 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죠“(p71)


논제2>


다음은 ‘자유’에 대한 카프카의 견해입니다. “오직 외적 조치에 의해서 얻은 거짓된 가상의 자유는 착각이며 뒤죽박죽이고, 불안과 절망이라는 쓰디쓴 풀 이외에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사막이에요.(...) 삶의 자유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회 분위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세계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하는 자세에요. 이것이 인간이 자유롭기 위한 조건이죠.”

발춰2>

야누흐는 카프카가 끄적인 그림을 보며 이야기 나눈다. “오직 외적 조치에 의해서 얻은 거짓된 가상의 자유는 착각이며 뒤죽박죽이고, 불안과 절망이라는 쓰디쓴 풀 이외에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사막이에요. 당연하죠. 왜냐하면 영속적인 실제의 가치를 지닌 것은 언제나 마음의 선물이기 때문이죠. 인간은 아래에서 위로가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성장하는 법이죠. 이것이 모든 삶의 자유의 근본조건이에요. 삶의 자유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회 분위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세계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하는 자세에요. 이것이 인간이 자유롭기 위한 조건이죠.”(p91)


논제3>

카프카가 유년시절 골목에서 싸우고 돌아올 때면 그의 집 요리사로는 그를 ‘라바콜’(추방당한자, 범죄자)이라고 불렀다고 했습니다. 라바콜의 뜻을 알게 된 카프카는 다시는 아이들과 싸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p210) 이 사건은 카프카가 ‘부정부주의’에 대해 연구까지 하게 했고 관련 작가들과 회합도 하게 했으나, 그는 오랫동안 협력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카프카는 이처럼 핍박받은 유대인으로써의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유대인들은 모두 나처럼 추방당한 라바콜이죠.”(p210)라고 말했으며 또한 “사람들이 내가 원래 라바콜이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어요.”(p208)라는 말을 하는데요. 여러분은 카프카의 이와 같은 태도에서 카프카의 어떤 심정을 읽으셨나요?


발췌3>

“여전히 나는 마음의 건강이 손상된 환자, 즉 라바콜이었어요. 그런데 외부적으로는 변한 것이 전혀 없었어요. 사람들은 나를 예전처럼 대해주었지만, 나는 내가 추방당한 자, 범죄자, 요컨대 라바콜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그것이 내 모든 행동을 변화시켰어요. 나는 이제 다른 아이들의 싸움에 가담하지 않았고, 보모와 함께 항상 얌전하게 귀가했어요. 사람들은 내가 원래 라바콜이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어요.”(p208)


“유대인들은 모두 나처럼 추방당한 라바콜이죠. 나는 아직도 집으로 가는 우회로에서 불량한 아이들의 매질과 발길질을 느끼고 있어요. 그러나 이제 싸울 수가 없어요. 더 이상 젊은이들과 같은 힘이 없어요. 그리고 나를 보호하던 보모는? 내겐 이제 그녀도 없어요.”(p210)


논제4>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두 진영에서 배포한 팸플릿을 보면서 카프카가 말합니다. 두 팸플릿들의 공통점을 ‘실재하지 않는 수취인들에게 쓴 것’이라며 비판합니다. 노동계급과 국가의 개념을 추상적으로 보았고, 오직 이웃만이 ‘실제적인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노동계급과 국가라는 “두 개념은 언어의 외부세계 속에 있지, 인간의 외부세계에 닻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추상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구체적인 모든 인간들은 외부세계의 심부름꾼이며 추상은 일그러진 그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p.217) 여러분은 카프카의 이와 같은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발췌4>

두 장의 팸플릿 중 한 장은 ‘체코슬로바키아 재향군인회’가 발행한 것으로 국가를 겨냥하고 있었다. ‘체코 사회민주주의 좌파’의 서명이 들어 있는 두 번째 팸플릿은 노동자 계급에게 격렬한 5월 데모에 참여하라고 촉구하고 있었다.(p.217)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두 진영에서 배포한 이 팸플릿들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어요. 이것들은 실재하지 않는 수취인들에게 쓴 거예요. 노동계급과 국가는 추상적인 일반화, 독단적인 개념, 언어 조작에 의해서 비로소 명료해지는 불명료한 현상들에 불과하죠. 이 두 개념은 언어 창조의 내부세계 속에 있지, 인간의 외부세계에 닻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요. 오직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인간, 즉 이웃만이 실제적이죠. 신은 이웃을 통해 우리에게 훼방을 놓고, 우리는 이런 신의 활동에 직접 노출되어 있어요.”(p.218)


논제5>


노동자들이 깃발을 들고 집회 가는 장면을 보면서 카프카와 나누는 대화입니다. 카프카의 혁명을 대하는 태도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카프카는 군중의 힘을 ‘일정한 형태가 없고 제어하기 어려운 힘’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나폴레옹을 비판하는데요. 그는 “혁명이 증발하면, 남는 것은 오직 새로운 관료주의의 진흙탕이에요. 고통에 시달리는 인류의 족쇄는 관청용지에서 생기죠.” 라고 말하는데요. 여러분은 “고통에 시달리는 인류의 족쇄는 관청용지에서 생”긴다고 말한 카프카의 말에 공감하시나요?


“저 사람들은 자부심이 강하고, 자신이 넘치며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는군요. 그들은 거리를 점령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실은 그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그들의 배후에는 비서관, 관리, 직업 정치인, 근대적인 술탄들이 도사리고 있는데, 이들을 위해 그들은 권력에 이르는 길을 닦아주고 있어요.”(p274)


“나는 군중의 힘, 군중의 이 일정한 형태가 없는, 겉보기에 제어하기 어려운 힘을 알고 있어요. 이 힘은 제어되고 틀이 잡히기를 동경하죠. 모든 실제로 혁명적인 발전의 종말에는 나폴레용 보나파르트 같은 인간이 나타나는 법이에요.”(p274)

“홍수가 넓게 퍼지면 퍼질수록, 물은 그만큼 더 얕아지고 흐려져요. 혁명이 증발하면, 남는 것은 오직 새로운 관료주의의 진흙탕뿐이에요. 고통에 시달리는 인류의 족쇄는 관청용지에서 생기죠.”(p274)


논제6>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전쟁을 혐오하는 카프카는 인간의 죽음에 대해 말합니다. “전쟁은 암과 같은 거예요. 동물적이며 육체적인 것이 지나치게 증식해서 정신적인 모든 것을 질식시키죠.(...)인간은 여러 해, 여러 날, 여러 시간이 아니라, 겨우 순간을 살 뿐이에요. 그런데 인간은 순간조차 살지 못하죠.”라고 말합니다. 그 원인을 ‘죽음을 알고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요. 그는 “삶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은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쟁은 암과 같은 거예요. 동물적이며 육체적인 것이 지나치게 증식해서 정신적인 모든 것을 질식시키죠. 인간은 여러 해, 여러 날, 여러 시간이 아니라, 겨우 순간을 살 뿐이에요. 그런데 인간은 순간조차 살지 못하죠. 단지 순간을 의식할 따름이죠. 인간은 오로지 존재할 뿐이죠.”(p291)


“삶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에요. 죽음에 대한 공포는 충족되지 않은 삶의 결과에 지나지 않아요. 그것은 불성실의 표현이에요.”(p291)

이전 04화 카프카와의 대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