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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Aug 17. 2022

골프 말고 배드민턴 치는 이유

엄마가 주신 큼지막한 골프채가 베란다 한편에 떡하니 자리한 걸 보면 한편으로 마음이 무겁다. 안 보이는 곳에 두고 싶었지만 딱히 공간을 더 낼 자리도 없다. 그래서인지 저 빨간 골프가방이 매일 아침 '날 언제 가지고 놀래?'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빨간색 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살짝 가방만 새로 사볼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것도 수십만 원이다. 골프를 치지도 않으면서 이 고민을 하고 있는 이유는 언젠가 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다.


하루에 한 번 이상 골프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래도 전혀 듣지 못한 사람보다는 치게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게 또 가까운 사람일수록 자극이 더 하겠지. 처음엔 유혹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골프를 언젠가 배워야 할 것 같다는 부담감이 됐다. 지금은 치지는 않지만 미루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쯤 대학 교양수업으로 한 학기 동안 골프를 친 적 있다. 그때에 주변이나 가족 누구도 치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그때에나 지금도 골프는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언젠가 치게 되지만 지금은 배드민턴이 더 나에게 맞는 운동이라는 확신이 있다. 사실 골프는 운동 자체에 몰입하기보다 어떤 관계 중심의 활동 같다.


간결한 준비물 '합리적인 비용과 시간'

아무리 대중적인 스포츠가 됐다고 하지만 나에겐 골프를 필드에 나가서 한 달에 한 번 치는 비용도 버겁다. 평소 한 달 연습하는 비용도 13-30만 원 수준이고, 필드에 나가면 수십만 원을 써야 한다. 반면에 체육관 입장료는 어딜 가나 시간당 몇 천 원 수준이다. (장비는 말해 뭐해..)


압도적인 운동량

골프장은 주로 외곽에 있기 때문에 가는 시간부터 미리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배드민턴장은 주로 도심에 있어서 퇴근하고 바로 이동할 수 있다. 게다가 운동량도 압도적으로 많은데 시작하기만 하면 완전히 긴장하고 몰입하며 경기에 임해야 한다. 중강도로 운동했을 때 배드민턴은 30분당 300칼로리를 소모하지만 골프는 한 라운드를 도는데 10km 거리를 카트를 이용하지 않고 걸으면서 했을 때 5시간당 600칼로리가 소모된다.


2명만 있어도 된다. 그마저도 없어도 된다

배드민턴은 딱 둘만 있어도 가능하다. 심지어 혼자 가도 가능하기도 하다. 내 경우에는 매주 이틀 레슨을 받고 있는데 코치가 비슷한 시간대에 온 혼자 온 사람들을 연결시켜준다. 그래서 일단 가서 레슨을 받고 모르는 사람들이랑 친다. 레슨을 받지 않더라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넬 수도 있다. 내가 다니는 체육관에는 항상 그 시간대에 혼자서 오는 초등학생 1명과 아저씨가 있는데 각각 따로 오면서 매일 새로운 사람들과 같이 친다.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게 쉽지 않겠지만 배드민턴장에서는 모두가 그런 방식으로 일상이 되어서 치는 것 같다. 둘이서 왔지만 복식경기를 하고 싶으면 여기저기 찔러보고, 거절당하고, 또 말 걸어본다. 나도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사계절 스포츠, 여름에도 즐길 수 있는 실내 운동

배드민턴은 뙤약볕과 추위를 피해서 안전한 장소에서 치기 때문에 날씨로 인한 핑계가 사라진다. 어떤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싶다면 실내에서 하는 운동이 제격이다.


승패는 있지만 성적은 없다 

직장동료가 골프는 모든 것이 수치화되는 것 때문에 요즘은 골프에 흥미를 잃었다고 했다. 한번 싱글을 쳤더니 이제는 이 정도면 만족해서 그런 것 같다. 실력을 유지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내 실력이 하나하나 점수화된 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지점이다. 그에 비해 배드민턴은 경기를 할 때 승패가 갈리긴 하지만 개개인의 실력에 구체적으로 점수가 매겨지진 않는다. A조, B조 같은 레벨이 존재하긴 하지만 골프보다는 광범위하다. 그리고 그런 거에 구애받지 않고 잘 치는 사람들도 많고, 그런 걸 물어보며 치지도 않는 것 같다. 


집을 이사한 후 가장 설레게 한 지점이 체육관과 가깝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기가 겹쳐서 체육관이 오래 개관하지 못했지만, 세 달 전 개관 소식이 들렸고 그 일정에 맞춰서 배드민턴을 등록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배드민턴장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후끈한 열기와 사람들의 운동화 고무 밑창이 바닥이 끽끽 대는 소리가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배드민턴을 처음 본격적으로 배운건 중학교 체육시간이었고, 그 기억이 생생하고 좋아서 이 순간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언젠가 여건이 된다면 반드시 배드민턴을 꾸준히 칠 거라고 막연하지만 확고하게 다짐했었다. 지금은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매주 이틀은 내가 10대가 된 것 같고,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체육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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