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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Sep 05. 2022

레슨 3개월의 고비

배드민턴 에세이

오징어 게임으로 다시 재조명되고 있는 '깍두기' 문화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초등학교때 매일 놀면서 팀을 짜야했는데 그때마다 깍두기는 흔하게 존재했다. 룰도 모르고 게임도 못해서 깍두기였지만, 한 명 분을 더 하기 때문에 깍두기는 오히려 도움이 될 때도 많았다. 친구들과 노는데 동생도 데려갈 수도 있었고, 전학생들도 쉽게 친해지곤 했다.

중학교에 들어서자 상황이 달라졌다. 모르거나 못해서 겉도는 캐릭터가 되면 왕따랑 연결 짓는 문화가 생겼다. 왕따가 아니면 은근히 따돌린다고도 말했다. 왕따는 누구나 당당히 말했고, 은따는 뒤에서 '사실 쟤가 은따야'라며 비열하게 굴기도 했다. 나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방관자에 가까웠고 가끔씩 은따 같은 애였다. 


요즘은 운동을 하면서 복식 게임을 할 때 종종 깍두기 같은 존재가 된다. 초반에 같이 치던 사람들이 전부 그만두는 바람에 지금은 아는 사람 없이 혼자서 배드민턴 치러 간다. 그래서 오늘은 또 누구와 칠 수 있을까? 얼마나 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한다. 체육관에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잘 치는 사람들만 있다면 더욱 곤혹스럽다. 그분들이 나에게 맞춰주는 것도 한두 번이다. 나만 지치고 상대는 땀이 하나도 나지 않는 재미없기 상황을 인식하다 보면 적당한 때에 나와야 한다. 나 혼자 신나면 상대는 도중에 게임하겠다고 다른 곳으로 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불러서 가기도 한다. 몇 번 그런 상황을 마주하고 같이 치는 운동인데 동호회 없이 하려니 몹시 외롭기도 했다. 사교적이지 못하는 데다가 활동적인 운동을 하려니 이런 상황에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러나 어느 날은 충분히 재밌게 할 만큼 했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다 처음 만난 고수와 한 팀이 되었는데 나를 깍두기처럼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승리를 이끌어주셨다. 그분이 너무 잘 치다 보니, '여기서 이긴 팀이 저희와 한 게임하시죠'라며 미리 예약을 받기도 했다. 이런 날만 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올 텐데 매일 운동하는 상황이 일정하진 않다. 


그럼에도 간혹 엄청나게 재밌고, 보통은 적당히 재밌으려면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 자발적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거기서 내가 배드민턴을 칠 수 만 있다면 다 괜찮다. 게임 한번 못하는 날도 있고, 사람이 없어서 연습만 하는 날도 있고, 나보다 더 초보자와 치는 날도 있다. 어느 날은 랠리만 해도 빨리 지치고, 어느 날은 게임을 하고 있어도 한 것 같지도 않다. 누구와 어떻게 칠지 그날 내 상태가 어떨지 모르는 건 일단 가봐야 알게 된다.


민망한 상황을 시간으로 재보면 사실 10분도 채 안된다. 보통은 힘들어서 쉬고 있고, 초반보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일단 말거는 것도 비교적 익숙해졌다. 매일 같은 사람과 안정적으로 치거나, 비슷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랑 만 쳐도 금세 지겨워질 것이다. 조금씩 다른 환경일지라도 변화를 인식하는 것이 여러모로 재밌다. 실력의 초반부를 연습하는 때이므로 겪어야 할 일들을 겪고 있을 뿐이다. 배드민턴 치는 날에는 외로움도 즐거움도 함께 왔다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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