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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Jan 09. 2025

결혼해서 학벌 컴플렉스

죄책감, 수치심, 희망고문

학벌 컴플렉스가 있다. 내 재능과 노력의 결과인 걸 머리로는 알지만 아직도 인정하기 싫은가보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때만 공부를 못했던 건데 그걸로 인생이 전체가 평가받는 기분이 지겹다. 공부했던 걸 생각하면 확신을 가지고 하진 못했다. 이게 맞는 '공부법'인지 늘 의심했다. 어떤 비법을 찾아 헤매니 지금하는 공부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그저 야간 자율학습이니 0교시니 모든 걸 성실하게 지키는 말 잘듣는 학생이었다. 기대보다 낮은 점수를 보는게 고통스러웠지만 항상 다음엔 조금 더 오를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진즉에 공부로 희망을 접고 다른 적성을 계발하는 친구들이 부러웠지만. 그러기에도 애매한 성적이었다. 다른데에 눈 돌릴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공부라도 해야하니 그 외 다른 건 모두 다 죄책감이었다. 


죄책감과 함께 항상 미완성의 삶. 이게 회사에 다니면서도 따라다녔다. 회사를 다니니 '대학실패'와는 조금 멀어졌지만 이제는 돈이 문제였다. 일하지 않고 하는 경험이 모두 '돈'과 연관 짓게 됐다. 소비하는 자체가 죄책감이 된다. 커피 한잔을 마실때마다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어젯 밤 남편은 이런 말을 해줬다. '나는 솔직히 고등학교때 열심히 하지 않어. 그런데 자기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된거 아닐까? 성실하게 해봤던 자세가 꼭 점수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니까.' 


참 지독하게 남아있는 건 성실함과 희망인 것 같다. 두가지가 어떤 성공을 가져다주는 결정적인 열쇠는 아니지만, 하루를 떳떳하게 살아낼 수 있는 도구는 맞는 것 같다. 점수로만 평가받을 때 매번 느끼는 좌절에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고, 패배감에 빠져 즐겁지 않았던 대학 시절에도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았고, 직장인이 되고 나서 애매한 월급에도 재정 상황을 직시하며 독립적인 삶을 살았다. 


가끔 안쓰러운 지난 날의 내가 불쑥불쑥 나타난다. 잔잔하게 고통스러운 이 우울감. 

그럼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막연하게 내일 아침은 다를 거라는 기대를 매일 품는 게 내 능력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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