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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PD Apr 09. 2017

베테랑 PD가 담아낸 초봄 같은 청춘의 삶

다큐 영화<다시, 벚꽃> 리뷰

다큐멘터리는 매끄럽기보단 덜컹이기 쉽다. 큰 변수를 짊어지고 만들어야 하는 숙명 때문이다. 예상했던 상황은 틀어지기 쉽고 뜻밖의 상황은 불쑥 찾아온다. 벌어진 일을 온전히 담기 어렵고 또 놓친 건 다시 찍기 힘들다. 그래서 다큐는 불가피하게 매끄럽게 봉합되지 못 한 채 대중 앞에 나서야할 때가 일상이다. 그런데 유해진 PD는 독보적으로 매끄러운 스토리텔링을 구사하는 연출가다. 그의 전작 <풀빵엄마>, <나는 록의 전설이다>, <감독 봉준호>도 대단한 흡인력을 가진 작품들이다. 다큐는 상당한 양의 촬영분을 모아 메시지에 따라 정교하게 퍼즐을 맞춰가야 하는데 유해진 PD는 시청자의 눈을 뗄 기회를 잘 주지 않는다. 그건 시청률 이탈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TV 다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미덕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천의무봉(天衣無縫)의 편집 실력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편집을 위해선 기획과 촬영에 있어서도 원숙한 연출 실력이 필요하다.   

다큐 영화 <다시 벚꽃>은 [버스커버스커]로 일약 스타가 된 가수 장범준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원점에서 인생을 재설계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그가 청춘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그의 고민은 그 청춘에 잘 어울린다. 그저 인디 공연을 하던 한 가수가 어느 날 갑자기(?) 전국적인 스타로 떠서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런데 그는 아직 그런 명성을 감당하기엔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청춘은 아직 피지 못 한 조급함도 있지만 일찍 펴서 금방 져버릴 것 같은 불안감도 있다. 이 영화는 후자의 이야기인 셈이다.    

어쩌면 평생 한 번 올까 말까한 기회가 찾아오면 그걸 놓치기 싫어 아등바등 살기 쉽다. 그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잃고 미래를 포기한다. 항상 자신의 이름이 허명이 될까 불안해하며 살아야 한다. 장범준도 영화 <댓씽유두-That thing you do>의 밴드 멤버들처럼 거대한 미디어 산업 속에 녹아 정체성을 잃고 표류하기 쉬웠다. 하지만 그는 쉽지 않은 길을 택했고 다시 아래로 내려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눈으로 확인해보며 위를 향해 다시 걷는다. 그는 동시에 굳이 자신의 명성으로부터 도망가기보다는 그것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러니 장범준은 꽤 현실적인 사람이다. 영화를 보면 그가 자신의 위치와 자산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아티스트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술적 재능과 별개로 좋은 장점을 지녔으니 부러움마저 든다.    


영화<다시 벚꽃>은 장범준이 1집 실패 후 2집을 준비하는 약 1년의 시간을 담고 있다. 그 사이에 왜 그가 유명세를 뒤로 하고 대중에 관심에서 사라졌었는지, 그는 무엇을 했었는지, 그는 어떤 사람인지, 또 어디로 가려하는지 등이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드러난다. 나는 그가 악보를 잘 보지 못 해 열심히 배우는 장면이 가장 흥미로웠다. 동시에 잘 모르니 새로운 것도 할 수 있다는 한 동료의 인터뷰는 그의 노래가, 또 그의 인생이 왜 청춘을 상징하는지 집약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영화를 보다보면 망각했던 청춘 시절에 했었던 고민과 느꼈던 감정들이 아직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 영화에선 주인공 장범준의 삶과 더불어 다큐멘터리 장르의 완성도를 만끽하는 것도 중요한 관람 포인트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다시 벚꽃>은 유해진 PD의 전작처럼 한번 보기 시작하면 좀처럼 한 눈을 팔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극영화처럼 영상과 음악으로 이목을 몰아세우진 않지만 이야기를 계속 따라가게 만든다. 궁금증을 던지면 굳이 돌아가지 않고 바로 이어서 그 설명이 나오고 처음 꺼내는 이야기가 시작될 때는 망설이지 않고 내용의 본질로 빨리 들어간다. 앞선 이야기가 다음 이야기를 잇는 단서가 되기도 하고, 앞의 영상 위로 새 이야기가 음성을 통해 시작되기도 하며 막과 막을 꼼꼼하게 엮는다. 보통 TV 다큐를 만드는 사람들은 ‘스트롱 스타트’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다. 초반에 시청자를 잡지 못 하면 낭패를 보기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와 달라서 엔딩이 더 중요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의 평가가 흥행에 더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이 다큐는 매끄러움은 유지하는 동시에 방점은 뒤에 두고 있어 영화에 잘 적응했다. 쉽지 않은 변신이었다. 더군다나 내레이션 없이 그런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해야 할 거다.   

  

<다시 벚꽃>은 재능이 만개한 다큐 고수의 손길과 청춘을 살고 있는 한 가수의 열정이 일종의 화음으로 느껴지게까지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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