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 적출이라고요?

"저는 아직.. 아이가 없는데요."

by Kimplay

스스로 '그래, 괜찮아.' 토닥일 만큼 나아진 어느 이었다.

초음파 진료 결과, 두 번째 수술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나는 또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을 받고 또 몸조리할 생각에 앞이 캄했다.

그런데 2차 병원에서는 더 무서운 이야기를 한다.

"혈관기형이 생겨서 그냥 수술을 할 수 없어요.

우리도 최대한 수혈팩을 들고 들어가긴 할 건데

그래도 안 될 경우엔 자궁 적출을 할 수도 있어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적출. 주어가 뭐든 그 자체로 무서운 말이었다.


앞이 노랗다는 게 이런 건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기분이 나를 관통했다.

표정 변화 없이 적출을 얘기하는 의사에게 내가 겨우 한 말은,

"저는 아직.. 아이가 없는데요.."였다.

의사가 "그러게요."라고 했던가, "그러니까요."라고 했던가.

그래, 의사는 상담사가 아니니까. 내게 닥친 불행에 대해 공감과 위로를 바랄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대답을 들은 순간에는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숨은 구렁텅이에 빠진 기분이었다.


넉이 나간 채 진료실에서 나왔다. 정말 발이 동동 굴러졌다. 초조해서 미칠 것 같았다.

"적출이라고? 적출?"

혼잣말로 되뇌는 내게 남편은 말했다.

의사는 항상 최악의 상황도 말해줘야 하니까 그런 거라고.

하지만 남편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적출의 공포에 빠져버렸다.


2차 병원에서 최악의 상황에는 어차피 대학병원으로 이송한다고 했다.

그럴 바에야 대학병원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3차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게 되었다.

1차 병원으로 충분하던 내 인생이 갑자기 3차 병원으로 건너뛴 것이다.





3차 병원에 가니 MRI를 찍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생애 첫 MRI 촬영 소감은.. "모르니까 했지, 다시 하라면 너무 겁난다."였다.

내가 폐소 공포증이 있었나 싶었다.

그 안에서 숨을 들이쉬고 멈추고 내뱉기까지 반복했다.

40여분이 지나고 나서야 그 통 안에서 나올 수 있었다.

진이 빠졌다.

MRI 결과, 의사는 혈관종처럼 보인다는 말을 했다.

혈관종은 또 무엇인가.. 건 당시에는 검색해도 잘 나오지도 않는 사례였다.

지금 당장은 출혈이 없어도 저게 갑자기 터지면 응급상황이 된다고 했다.

미리 제거하는 게 맞는데, 혹 수술 중 혈관이 터져서 출혈이 심하면

그 또한 위험하다며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궁 색전술부터 받아야 한다고 했다.


'왜 나는 불과 한 달 만에 이토록 위험한 몸이 된 거지?'

'대체 지금 내 자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답이 없는 질문만 계속 떠올랐다.




자궁 색전술은 자궁 동맥에 색전 물질을 끼워 혈액을 차단하는 시술이다.

3개월에서 6개월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녹아 원상복귀가 된다고 한다.

산 넘어 산이다. 이 원상복귀지, 분명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수술이든, 시술이든 그렇다.

분명한 건 자궁 색전술은 가임기 여성의 가임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임기 여성에게는 추천되지 않는 시술이었다.


겁이 나서 다른 병원에 가니 약물요법을 추천했다.

하지만 3개월이건 6개월이건 해보고도 없어지지 않으면

결국은 제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맥이 빠지는 결말이었다.

잘 안 될 경우, 자궁의 흔적은 흐른 시간만큼 더 단단히 유착되고 커질 게 분명했다.

일상생활 중 터지는 건 상상하기도 싫었다.

나는 더 이상 자궁을 담보로 도박을 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지켜야 했다. 곧장 수술을 결정했다.


불행이 나를 보고 달려들까 봐

나는 이 불행을 빨리 벗어버리고 싶었다.

수술을 위한 검사들을 하며 내게 해 줄 말은 이것뿐이었다.

'그래, 얼른 끝내자. 할 수 있어.'




며칠 뒤, 입원 수속을 마치고 병원 앞에서 밥을 먹는데 전화가 왔다.

"산부인관데요. 지금 다시 오실 수 있나요?"

산부인과 진료는 끝났는데..

"병원 앞이에요. 밥 먹고 갈게요."

엄마와 남편의 눈이 동그래졌다.

모처럼 입에 맞던 제육볶음이 더 이상 넘어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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