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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후 조리원은 없나요?
11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가장 아프고 어두웠던 시간들이 빛 속에 바스러졌다.
by
Kimplay
Jul 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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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새해가 시작되고 우리는 빙어축제에 갔다.
추운 빙판 위에서 다리를 배배 꼬며 얼음 구멍을 보고 있었다.
얇은 낚싯줄은 미동 없이 떠 있었다.
남편은 연달아 빙어를 잡았지만
내 낚싯줄에는 한 마리도 걸려들지 않았다.
"오빠, 춥다. 저기 가 보자."
우리는 잡은 빙어를 놓아주고 빙판을 벗어났다.
바로 옆에 있는 메인 행사장으로 가서 모닥불을 쬐고,
예매권에 포함되어 있는 닭꼬치를 하나씩 먹었다.
언덕 위에는 하얀 눈썰매장이 있었다.
우리는 썰매를 하나씩 챙겨 들고 아이들 틈에서 썰매를 탔다.
덩치 큰 남편의 썰매는 잘 내려가다가 자꾸 옆으로 엎어졌는데
그게 얼마나 웃겼는지 서로 깔깔대고 웃었다.
새해가 시작되고 두 번째 주말이 찾아왔지만, 생리는 찾아오지 않았다.
산부인과에 가 봤지만 초음파를 본 의사는
"임신 가능성은 없고요. 생리 유도제 맞고 가실래요?" 하고 물었다.
나는 "아, 기다리면 하겠죠. 괜찮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생리하기 전에 온천이나 가자며 서둘렀다.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며 새해 주말들을 보내고 있었다.
일주일 뒤, PT가 끝나고 피부 트러블 때문에 피부과에 들렀다.
의사는 내게 임신 가능성을 물었고, 나는
"생리가 좀 늦어지고 있긴 한데, 괜찮아요 "라고 했다.
생리주기가 늘어나는 일은 종종 있었
고
,
게다가 산부인과도 다녀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피부과 의사는 주의하라고 한참 설명하며 나를 각성시켰다.
덕분에 나는 한 번 더 임신 테스트기를 샀다.
'확인 한 번 더 하고 피부과 약 먹어야지'
심신안정을 위해 더블체크 정도로 생각했던 임신테스트기는
소변이 닿자마자 붉은 두 줄을 나타냈다. 맙소사.
"아니, 이게 뭐야, 뭐야, 왜? 언제?"
나는 눈을 깜빡거리면서 임신테스트기를 다시 봤다. 아무리 봐도 두 줄이다.
연거푸 했더니 또 두 줄이다.
피부과 의사가 너무 고맙다는 생각과 동시에,
동네 산부인과 진료에 대한 의아함이 생겨났다.
일주일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의문도 생겨났다.
나는 왜 산부인과에서 초음파까지 해 놓고, 또 임신테스트기를 해 보았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네가 보낸 신호였다는 생각이 든다.
놓치지 말라고 보낸 신호.
두 번의 유산, 유산 후유증에 대상포진까지 겪고 나서 찾아온 생명이었다.
유산을 또 겪을까 두려워 난임 병원을 다니던 차에 생긴 생명.
그래서 더 떨리고 간절하고 걱정됐다. 나는 곧장 난임 병원으로 향했다.
잠시 뒤 나는 상기된 얼굴로 진료실에 앉아 있었다.
4주 2일이었다. 진짜 임신이었다.
대상포진에 걸리고 두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대상포진 약이 영향을 미치진 않았는가,
따
져볼 정도로 언제 임신이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걸까요. 배란일일 수 없는 날짜였는데요."
"삼신할머니가 어떻게든 주시려면 준다니까. 허허"
의사는 심각한 나를 보며 웃었다.
그 달에 무슨 이유로 몸속에 변화가 생긴 건지
내 몸에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내가 모르는 수많은 우연들이 겹쳐 아가가 찾아왔다.
병원 밖을 나서니 겨울 햇
볕이 따갑고 건조했다.
가장 아프고 어두웠던 시간들이
빛 속에 바스러졌다.
다시 시작이었다.
이번에는 네가 빠뜨린 것 없이 잘 챙겨
서
내게 왔으면 하고 생각했다.
keyword
임신
임테기
산부인과
Brunch Book
유산 후 조리원은 없나요?
09
난임 병원 상담을 다녀왔다.
10
대상포진이라니
11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12
드디어 겪게 된 임신의 다음 단계들
13
출산. 이토록 대단하고 어려운 일
유산 후 조리원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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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 충전 에세이 <콧구멍워밍업> 저자 내가 겪은 낯선 일들과 계속 머물고 싶은 평온한 일상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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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포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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