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오지 않는 밤
남편이 출장을 간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현관문은 이중 잠금까지 철저히 해 두고, 일찌감치 저녁 식사를 마쳤다. 식탁을 정리하는 사이, 거실에는 아이들이 들고 나온 책과 장난감이 차려졌다. 발 디딜 틈 없는 바닥에 우뚝 선 선풍기는 삐걱대며 회전하고 있었다.
고개를 드니 지는 햇빛에 물든 하늘이 주황이다. 어제는 밤이 되어서야 거실 커튼을 쳤는데, 오늘은 좀 더 미리 치고 싶다. 열린 창문에 다가서니 방충망에 러브버그가 몇 쌍이나 붙어 있었다.
“왜 엉덩이를 붙이고 다니는 거야?”
해충도 아니고, 활동기간도 1-2주 정도지만 벌레는 벌레였다. 어디서 들은 대로 분무기에 물을 담아 방충망에 뿌려봤지만 물 자국만 남기고 버그는 그대로였다. 러브버그를 쫓는 동안, 아이들도 나름의 방역 무기-돌돌 말린 종이와 다 쓴 휴지심-를 들고 창가로 모였다. 그걸로 방충망을 톡톡 두드린다. 타격이 없는 위협이지만 돕겠다고 분주한 모습이 귀여워 슬며시 뒤로 빠져 감상한다. 곰 인형의 배를 밟고 올라선 둘째가 미끄덩 넘어지면서 감상이 끝난다.
우는 아이에게 달려가며 번뜩 불빛에 달려드는 불나방이 떠올랐다. 아이를 살핀 뒤,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안쪽 등 하나만 켜 두고 거실로 나오며 제안했다.
“얘들아, 거실 불을 꺼 보자.”
서로 불을 끄려고 손을 뻗는 바람에 거실 등은 몇 번이나 반짝거리다 꺼졌다. 가장 밝은 등이 꺼졌는데도 여전히 바깥보다 밝았다. 아직 밤은 얕았고, 주방 안쪽에 남겨둔 불빛이 거실까지 번져 나온 덕분이기도 했다.
벌레들이 불빛에 달려드는 건 야행성 비행 곤충의 본능이라고 한다. 그들은 달빛을 향해 날아다니는데, 조명을 달빛으로 착각해 그 주위를 빙빙 도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울어대던 매미도 밤이 온 줄 모르고 밝은 도심에서 여전히 울고 있었다. 그들을 지독히도 착각 속에 살게 하는 건 우리였다. 방충망에 남겨진 물자국이 멋쩍다.
거실 한가운데 앉았더니 아이들이 불나방처럼 달려온다. 내 무릎에 서로 앉으려는 아이들을 양쪽으로 꼭 안고 어두워지는 밤을 살폈다. 소란하던 집이 잠잠해진다.
고요한 틈에 선풍기는 끼익 끼익, 소리를 날려 보내고 있었다. 저기에 윤활제를 뿌려도 될지, 그런 문제가 아니라면 나사가 헐거워진 걸까? 답이 돌아오지 않는 질문이 쌓인다. 잘 모아뒀다가 내일 남편이 오면 풀어놓기로 한다.
이제 밖은 완전히 캄캄해졌다. 길던 여름해가 졌으니 잘 때가 된 모양이다.
“자러 가자.”
아이들은 동화책을 세 권 읽고 어두운 방 안에서 손전등을 흔들다가, 선풍기 바람을 쐬며 잠이 든다. 나는 가까스로 잠에서 빠져나와 현관문이 잘 잠겼는지 재차 확인했다.
남편이 집을 비운 하루는 낯선 여행지에서 보내는 밤 같았다. 집을 떠나 있는 건 남편인데, 내가 집을 떠나온 기분이었다. 밤이 된 집 안의 고요는 깊었고, 창밖의 어둠은 짙었다. 그때까지도 선풍기는 삐걱대며 돌아가고 있었다. 사실 어제도 선풍기는 삐걱댔었다.
내일은 하지(夏至)다. 가장 긴 낮과 가장 짧은 밤이 있는 날. 할 수 있다면 낮을 베어 주방 가장 큰 서랍에 넣어두고 싶었다.
아이들이 잠든 밤, 식탁 위에 꺼내 놓고 남편과 이야기해야지.
너무 낯선 밤이었다고. 그래서 저 소리도 너무 크게 들렸어. 이제 밤 위에 낮을 깔고 이야기를 나누자!
내일 할 말을 모으는데 아이가 운다. 방으로 들어가 보드랍고 따뜻한 아이를 토닥였다. 사소한 소리에 귀가 예민해지고, 잠긴 문을 여러 번 확인하는 밤이 지나고 있었다.
다음 날, 드디어 남편은 돌아왔다. 그 얼굴을 보자, 베어 낸 낮을 꺼낼 새도 없이 선풍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빠, 보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