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연 Feb 26. 2018

창녀 - 넬리 아르캉


창녀

넬리 아르캉

제목부터가 자극적인 소설, <창녀>는 내용면에서도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만 하다. 네이버에서 책 제목을 검색하면 일단 19금 딱지가 붙어서 제대로 검색이 안 되기에, 작가 이름 '넬리 아르캉'으로 검색을 하면 갖가지 검색 결과를 볼 수가 있다. 그 와중에 작년, 2017년에 작가의 생애를 다룬 영화, <넬리>가 한국에서도 개봉을 하면서 출판사인 문학동네에서 책 리뷰 이벤트를 한 것까지 훑어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읽으면서 정말 정신병에 걸려버릴 것만 같았다. 소설은 작가가 26살에 출판을 했다고 하는데 영화 <넬리>를 보면 실제 출판 당시의 나이는 이미 서른이 넘었던 것 같았고 (실제 작성했던 나이는 스물여섯이었을 수 있겠지만) 그리고 서른 여섯의 나이로 2009년 자살을 해 생을 마감을 했다. 그녀의 생애 이력을 단순하게 훑어보면 이 작품의 정신병증적 나열들이 쉽게 이해가 간다.

처음에는 책 읽는 자체가 너무 힘이 들었다. 수많은 콤마(,)들로 연결되어 있는 아주 긴긴 한 문장이 책의 몇 페이지를 지나서야 마침표(.)로 완결이 난다. 그 하나의 마침표를 찍기까지는 숨을 멈추고 글 속에 빠져들어가게 된다. 아니 사실은 너무 숨이 막힐 것 같아서 그렇게까지 몰입하려니 괴로웠다. 읽으면 읽을수록 정신병 걸린 창녀가 의식의 흐름대로 혼잡한 세상을 나열했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곳곳에는 넬리, 아니 작중 창녀인 신시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이 담겨 있다. 이 사회상의 부조리를 그녀가 해온 '노동' 속에서 하나하나 짚어낸다.


p.20 섹스노동자란 용어 정말 기발하지 않아, 그 말 속에선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직업, 가장 유서 깊은 사회적 기능에 대한 존중의 예가 느껴져, 나는 사람이 밀가루 반죽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섹스를 주물러 노동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주 맘에 들거든, 쾌락도 일종의 노고일 수 있고, 억지로 도출해 낼 수 있으며, 노력을 요함으로써 그로 인해 수당을 받을 수도 있는, 일정한 제약고 표준이 부과되는 그 무엇이라는 생각 말이야.

그런 그녀도 '섹스노동자', 즉 매춘부를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고루한 표현으로 나타낸다. 정말 그렇게 생각을 해서인지, 아니면 이 부조리한 세상이 주입한 대로 그대로 믿게 되어버려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그렇게밖엔 설득을 할 수 없기 때문인건지.
이런 표현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창녀를 소재로 하는 소설들은 대게는 창녀를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어떤 직업적인 것으로 환원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넬리의 이 소설도 그 관점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p. 22 이미 나는 창녀로 운명 지어진 거나 다름 없고, 실제로 창녀가 되기 전부터 창녀였던 것 같으니까 말이야.
p. 77 그보다 훨씬 이전, 그러니까 피겨스케이팅과 탭댄스를 배우던 어린 시절에 이미 난 창녀였어,
p. 214 내가 창녀가 된 이래 나의 동료들은 죄다 마찬가지로 창녀들이야, 이미 창녀였거나 나중에 창녀가 되는 식이지

넬리는 여성적인 것을 모두 창녀로 환원하는 세계를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은 바로 '창녀'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중이라고 느껴졌다. 그것을 스스로가 원했든 아니든.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여성을 창녀로서 만드는 것이라고.
그것은 그녀가 성노동을 하면서 만나는 동료들 이야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단지 자기 자신이 '창녀'가 되면서 그들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는 것만을 나타낼 뿐이다.


p. 159 그나저나 씁쓸한 표정으로 지들 딸들만은 이런 직종에 종사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결코 딸자식들이 창녀인 건 바라지 않는다고 (중략) 그럼 도대체 나는 누구라고 생각하시나, 나도 여느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한 아비의 딸년이라구 (중략) 당신 딸이 세계 모든 나라에서 몰려든 온갖 아버지들의 자지를 줄줄이 빨아댈까 노심초사 한다면서 대체 당신 자신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데,
p. 161 이 게임을 진행하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당신은 이해 못할 거야, 한 사람은 문을 노크하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은 그 문을 열어주기 위해서 말이야

넬리는 이 책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한다. 굼벵이처럼 잠만 자며 늙어가는 어머니를 집에 둔 채, 자기 나이대의 여자 아이들에게 돈을 지불하며 섹스를 하려는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고객들의 모순을 하나하나 짚는다. 고객들은 자신의 딸만큼은 성노동자가 되지 않길 바라면서 자신의 딸뻘의 아가씨를 상품으로 찾는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한 환상이다. 그 넬리들도 결국 다 누군가의 딸자식이고, 장, 마이클 등 갖가지의 가명들을 가진 그 고객들도 누군가의 아버지이다. 이는 돌고 돌아 결국 딸자식과 섹스를 하는 아버지를 그려낸다. 넬리는 그 지점을 꼽아낸다.


p. 192 아무렴,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창녀 노릇 제대로 한 번 해보기 위함이야
p. 198 요즘 같은 때 이런 나라에서 창녀짓과 학생 노릇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엄청 놀라더라구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많은 여성들이, 그리고 이제는 남성들도 자신의 성을 매개로 서비스를 판다. 그리고 그런 좌판 바깥에서는 학생 노릇을 하니, 크게 놀랄 일도 아닐 것이다 이젠. 오히려 대놓고 광고를 하는 상황이다. [미모의 여대생 항시 대기] 우리는 어디서나 이런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수요가 있다. 그러니 공급이 생기는 것이다. 창녀 같지 않은, 학생 같은, '더럽지 않고 순수한' 여자들을 찾아서 남자들은 돈을 지불한다. 하지만 창녀와 성녀는 종이 한 장 차이이고, 한 사람에게는 여러가지 모습이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


p. 23 나의 젊은이란 빛을 내기 위해서 타인의 늙음을 필요로 하니까 말이야

소설 속에서 넬리는, 신시아는, 늙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연신 글에서 나타냈다. 그리하여 늙어가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직은 싱싱한 자기 자신을 비교하며, 아버지에게, 아버지와 같은 고객들에게 자신을 어필한다.
소설을 관통하는 또 다른 소재는 아마도 '엘렉트라 컴플렉스'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정신병 걸릴 것 같은 이 소설 끝까지 읽느라 고생이 많았다.









Copyright. 2018. 윤해후. All Rights Reserved.

매거진의 이전글 화성에서 살 생각인가? - 이사카 코타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