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1944), 『면도날』
소설의 '소피'는 인생의 고난을 극복하지 못해 방탕한 삶을 살다 결국 살해를 당하고 마는 비운의 캐릭터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녀의 죽음을 그녀가 원하던 바를 얻은 '성공담'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녀의 죽음은 인생의 성공인 것일까?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소피에게 인생이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소피는 지극히도 외로운 삶을 살았다. 세상 어디에도 자기편이 없을 것이라는 외로움, 그 소외감. 소피에게 삶은 괴로움이었고, 죽음은 자기를 지독히도 괴롭힌 그 세계와의 안녕이자 모든 것에서의 해방이었다.
여기에 반대되는 캐릭터가 하나 있다. "노인과 바다"에서의 노인이다. 그는 소설 내내 희망을 갖고 사는 자의 삶의 투쟁을 보여준다. 그는 어떤 희망을 갖고 있었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노인은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소피는 틀린 것이고 노인이 옳은 것일까?
병원을 다닐 때의 일화가 떠오른다. 수험 실패 후 우울감에 빠져있을 때였다. 병원 상담과 요양을 하면서 나는 다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조금씩 갖게 되었고, 그것이 끝까지 차오른 어느 날 병원에 가 내가 얼마나 긍정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지 자랑을 했다. 생각을 고친 것으로 칭찬을 들으려고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따끔한 질책을 받았다. 내가 만약 몸이 아프고 미래가 어두운 상황이라면 선생님은 좋은 소리만을 해줬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할일이 많고, 대책 없이 긍정적이기만 한 사고는 자기기만일 수 있다며 너무 긍정적이지도 너무 부정적이지도 않은 정확한 현실 인식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셨다. 이 상담을 계기로 나는 내 지금의 상황과 앞으로 해야 할 것에 대한 객관적인 점검을 할 수 있었고 그다음 시험에는 합격을 했다.
나는 소피에게는 조금의 긍정적 사고가, 노인에게는 조금의 부정적 사고가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소피에게는 재기할 수 있는 환경이 있었다. 소피에게 래리와 같은 극단적인 인물이 아니었다면 다른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측은함이 든다. 그것 또한 소피의 선택이니 그녀의 탓이라고 하기에는 우리 인생에 우리가 선택하지 못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질문의 답을 생각해보면 소피에게 인생의 성공이란 단지 부정적인 감정의 해소 또는 회피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가정을 꿈꾸었다. 단지 인생 내내 불운했던 것이다. 균형을 찾지 못한 그녀가 안타깝다. 그녀의 죽음은 성공이 아니다. 힘든 삶을 살았을 소피에게 조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