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이야기

지극히 개인적인 통영의 음식이야기

by 목마르다언덕

두 개의 도시, 하나의 입맛


이 도시는 원래 두 개였다.

한쪽은 ‘충무’. 충절의 이름을 가진 항구 도시.
다른 한쪽은 ‘통영’. 조선 수군의 총본영이 자리 잡았던 바다의 도시.
1995년, 두 도시는 하나로 합쳐져 지금의 통영시가 되었다.
시간이 합쳐졌고, 이야기도 겹쳐졌다.
그렇게 이 도시는 ‘맛’이 아닌 ‘삶’으로 기억되는 장소가 되었다.


누군가 통영에 가면 꼭 먹으라고 말했다.
"충무김밥은 무조건 먹어야 해."
"굴, 멍게… 통영 바다에서 바로 나는 거잖아?"

맞다. 통영은 김밥을 따로 담는 도시다.
밥과 반찬을 굳이 분리해 내는 방식은,
밥이 상하지 않도록, 오랜 항해를 버티도록 만든 생활의 지혜였다.
항구에서 일하던 어머니들이, 바다로 나가는 가족을 위해
김은 밥만 감고, 반찬은 새콤하고 맵게 무쳐 따로 넣었다.

그 김밥 한 줄에, 바다 냄새도, 가족의 마음도 함께 싸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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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봄의 끝자락에서 가장 맛있는 통영은?


5월은 통영의 풍경이 가장 환해지는 계절이다.
굴의 철은 지나갔지만, 그 자리에 멍게가 찼다.
미묘한 바다향, 호불호를 넘은 미식의 세계.

따라서 지금 이 계절, 나는 이렇게 추천한다.


여행으로 배고픈 자 – 충무김밥 혹은 멍게비빔밥
맛있는 술상 – 다찌집

숙소에서 한잔 안주 - 멸치회와 멍게회
전날 먹은 소주에 속풀이 국물 – 시락국밥

달콤한 후식 – 고메원도넛 & 꿀빵


지극히 개인적인 통영의 음식이야기

충무김밥은 밥보다, 마음을 싸는 것


통영에서 충무김밥을 먹는다는 건, 단순히 한 끼를 해결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건 이 도시가 ‘마음을 쓰는 방식’을 배우는 일입니다.

충무김밥은 겉으로 보기엔 김밥처럼 생겼지만, 그 형식은 아주 다릅니다.
밥은 초밥보다 더 부드럽고, 질기지 않게 지은 뒤 김으로만 감쌉니다.
그리고 반찬은 따로 나옵니다.
오징어와 어묵을 매콤하게 무쳐낸 무침, 그리고 시큼하면서도 시원한 무김치.

이 ‘따로 담음’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항해를 떠나는 어부들의 도시락이 상하지 않도록,
바다의 흔들림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도록 만든 지혜입니다.

그리고 그 안엔,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맵싹 한 무침의 강렬함, 질감 있는 밥의 조화


이곳의 충무김밥은 가격도 착합니다.
김밥 정식(8P + 국 포함) 6,000원, 포장 시 5,500원부터.
‘충무김밥 + 라면 세트’는 9,000원으로, 배고픈 여행자에게 훌륭한 조합입니다.

김밥 자체는 간이 되어 있지 않아 밋밋하지만,
곁들여 나오는 매콤한 무침과 석박지가 그 위에 훌륭하게 올라탑니다.
씹을수록 입안에서 맛이 아닌 이야기가 퍼집니다.

“밥이 아니라, 마음을 싸는 김밥.”
이 한 줄이 이 도시, 그리고 이 집 사장님의 철학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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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게비빔밥 – 바다를 그대로 씹는 맛


통영 ‘짱 초장집’에서 만난 제철의 기억

통영 중앙시장의 안쪽,
붉은 간판에 ‘짱’이라는 글자가 눈에 띄는 작은 가게.
‘짱 초장집’은 이름만큼이나 단순하고 솔직한 집이다.
욕지도 고등어회부터 회덮밥, 그리고 통영의 진짜 맛 ‘멍게비빔밥’까지,
이 시장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숨은 명소다.


제철 멍게, 통영을 입에 넣는 순간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
통영의 식탁 위엔 ‘멍게’가 제철이다.

잘 손질된 멍게살이 야채와 김가루, 참기름, 초고추장과 함께
큼직한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긴다.
그 위에 볶은 깨가 솔솔 뿌려지고,
새하얀 밥이 따로 따라 나온다.


첫 입은 살짝 낯설다.
그 독특한 향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입부터는 중독이다.
짠맛과 단맛 사이, 감칠맛이 숨어 있고
그 향은 오래도록 입 안에서 남는다.


바다가 아니라, 기억이다

함께 나오는 조개탕은 이 집의 또 다른 반칙이다.
푸짐한 백합 조개에 깔끔한 국물,
전날 마신 술이 있다면 속까지 씻긴다.

정갈하게 담긴 밑반찬들도 이 집의 미덕이다.
시장밥상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단정하고,
정성이 느껴지는 한 상이다.

이 멍게비빔밥을 먹으며,
곁에 있던 가족들이 말했다.


“이건 음식이 아니라, 향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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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락국밥 – 바다의 된장국


서호시장 ‘원조시락국’에서 만난 통영의 아침

“아침이 따뜻한 도시가 있다면, 바로 여기일 것이다.”
통영 여객선터미널에서 걸어 5분,
서호시장 안쪽 골목길.
붐비지 않지만, 늘 시장 사람들과 단골손님이 드나드는 식당 하나가 있다.
이름도 단출한 ‘원조시락국’.
여기서 하루는 ‘국 한 그릇’으로 시작된다.


시락국밥은 통영의 된장국이다

시락국밥은 통영 바다 사람들의 아침이다.
예전엔 장어머리를 넣어 푹 끓인 육수에

시래기에 된장과 멸치, 다시마 육수를 붓고
오랜 시간 끓여만든 바다사람들의 보양식이다.

그 국은
짭짤하지만 이상하게 시원하고,
소박하지만 속이 확 풀린다.

이유는 모르지만,
한 입 먹으면 마음이 먼저 따뜻해진다.


다양한 반찬, 담백한 국물

이곳의 반찬은 셀프다.
참기름 묻힌 김, 고추무침, 젓갈, 나물, 무생채 등
8종 이상이 정갈하게 준비되어 있다.

그리고 메인 메뉴는 단 하나.
뜨겁게 끓인 시래기국 한 그릇.
밥을 말아 국물을 떠먹는 순간,
몸이 아니라 마음부터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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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찌집 – 통영의 술상은 흥정이 아니다


‘물보라 다찌’에서 마주한 통영의 밤

통영 강구안길,
관광지 한복판의 번잡함을 지나
낯선 회색 건물 1층의 소박한 간판 앞에 선다.

“물보라 다찌.”
이름은 소박하지만,
통영의 밤을 알고 싶은 이들이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다.


다찌, 술상 너머의 환대

‘다찌’는 본래 일본어로 술상을 뜻하지만,
통영에서의 다찌는 ‘술상’ 이상의 무언가다.

기본 안주만 10여 가지.
회, 해물, 구이, 조림, 탕, 숙회…
접시 위에 바다가 펼쳐지고,
손님은 기본값만 지불하면 약간의 술이 제공된다.


상다리가 휘는 푸짐함

찬찬히 올라온 안주들은
양뿐 아니라, 손맛에서도 깊은 인심이 느껴진다.

숙회, 멍게무침, 호박조림, 생선구이, 보쌈, 무침, 꽃게찜…
한 접시 한 접시에 이야기가 있다.
심지어 술을 못 마시는 사람에게도 밥상처럼 따뜻하다.

주인장은 말한다.
“여기선 단체도 좋고, 가족도 환영입니다.”
진심이 느껴진다.


다찌는 술상이 아니다.

그건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이 오가는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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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메원도넛 – 통영 감성의 뉴트로


욕지도 제1 출렁다리 근처의 비렁길을 걷다가 마주친 작고 예쁜 가게.
통영의 전통을 레트로로 빚어낸 고메원도넛은
이 도시의 새로움을 가장 부드럽게 표현한 디저트다.

도넛 속엔 고구마와 사과 같은 다양한 필링이 숨어 있고,
겉은 촉촉하고 속은 꾸덕꾸덕한 식감으로 젊은 여행자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사진을 찍고,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에 퍼지는 건 달콤함만이 아니다.
이 도시가 생각보다 더 부드럽다는 느낌이다.

비렁길 제1 출렁다리를 건너기 전,
고메원도넛 본점은 공식 루트처럼 놓여 있다.
여행의 중심이 되기엔 충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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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빵 – 단순하지만 기분 좋아지는 맛


통영 전통시장에서 꼭 사야 할 간식이 있다면 바로 이 ‘꿀빵’이다.
1960년대, 조청에 빵을 굴려 만든 이 독특한 간식은
지금까지도 통영에서 가장 줄 서는 길거리 음식 중 하나다.

찹쌀빵을 바삭하게 튀겨 조청에 담갔다 꺼낸 후
통깨를 솔솔 뿌린 꿀빵은
겉은 바삭, 속은 쫀득하고
달달하지만 이상하게 질리지 않는다.

통영에서 멍게하우스 수제꿀빵을 모른다면 반칙이다.
한 입 베어 물면 안다.
왜 이 빵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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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도시가 하나가 되어,
맛은 기억이 되었고,
기억은 이야기가 되었다.

이 도시에서 먹는 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하루와 배려, 기억을 함께 먹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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