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충절이 머문 도시 - 통영과 이순신장군
이순신공원에서 바다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문득 되뇐다.
이순신 장군을 떠올릴 때, 사람들은 흔히 명량이나 노량,
혹은 충무공이라는 시호에 더 익숙하다.
하지만 정작 그가 가장 오랜 시간 머물며 전쟁을 지휘했던 본진은,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곳—통영이었다.
통영(統營)은 원래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의 줄임말이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전라·경상·충청 삼도의 수군을 총지휘하는 ‘통제사’로 이곳에
진영을 설치했다.
그의 전략이, 명령이, 승리가 시작된 자리—그게 바로 통영의 뿌리다.
이후 통제영이 자리했던 이곳은 1955년 충무시,
그리고 1995년 다시 ‘통영시’로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한 장군의 시호가 도시 이름이 되었다는 건, 그 도시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명확하게 말해준다.
통영 시내 중심, 시장 골목을 지나 조용히 들어선 돌담길 너머에는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딘 조선의 군영, 삼도수군통제영이 남아 있다.
여기는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다.
대한민국 해군의 시작점이자, 이순신 정신이 구체적으로 구현된 공간.
장군이 직접 머물렀던 건물은 아니지만,
그의 사후에도 수십 명의 통제사들이 이곳에서
조선을 위한 바다 전략을 구상하고 집행했다.
그 통제영 한가운데,
웅장하면서도 품격 있는 건축물이 우뚝 서 있다.
바로 세병관(歲幷館).
‘사철을 함께한다’는 뜻의 세병관은
이순신 장군의 생전 건물은 아니었다.
장군이 전장에서 장렬히 전사한 뒤,
1605년에 처음 건립되고, 지금의 모습은 1718년에 중건된 국보 제305호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 들어서며,
그의 목소리가 아닌 정신을 느꼈다.
병사들이 계절을 잊고 단결하던 곳,
장수들이 결의를 다지고 작전을 구상하던 공간.
그 모든 이야기가 기둥과 서까래에 배어 있었다.
승리는 외침이 아니라, 준비와 인내로 쌓아 올린다는 것을
이 공간은 말없이 전하고 있었다.
통제영을 걷는다는 건 단순한 유적 관람이 아니었다.
사명, 절제, 리더십, 연대.
그 모든 말들이 건물의 배치와 기능 속에 숨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이곳에 머물지 않았지만,
이곳은 분명 그를 닮은 공간이다.
후대 장수들은 이 돌담 안에서
그의 눈빛을 상상하며 지휘를 이어갔을 것이다.
나는 세병관 앞에 잠시 앉았다.
햇살은 조용했고, 바람은 역사처럼 흘렀다.
그 침묵 속에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싸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싸울 준비를 하는 일이다.”
통제영은 그렇게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통영항에서 배를 타고 한산도로 향한다.
짧지 않은 물길을 따라 도착한 섬,
그 섬 한쪽 끝 언덕 위에 제승당(制勝堂)이 조용히 앉아 있다.
그 이름은 말 그대로,
승리를 제압하는 집.
임진왜란의 혼돈 속에서
이순신 장군은 이곳을 삼도수군통제사의 본영으로 삼았다.
모든 작전은 이곳에서 시작됐고,
모든 책임은 이곳에서 짊어졌다.
제승당(制勝堂).
‘승리를 제어하는 집’이라는 뜻.
하지만 이곳은 승리를 자랑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단청이 정갈한 기둥과 단단한 마루,
그리고 내부를 채운 해전의 기록화와 장군의 초상화.
그의 눈빛은 싸움을 이긴 자의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싸운 자의 것이었다.
벽에는 노량해전, 명량해전, 한산대첩을 담은 거대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승리의 순간을 그린 화폭 속 인물들은 모두 고개를 낮추고 있었다.
승리는 오만이 아니라 절실함에서 나온다는 것.
그 진실을 그림이 먼저 가르쳐 주었다.
제승당은 단지 작전이 논의되던 누각이 아니라,
고요한 결단의 상징이었다.
싸움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지키기 위한 지혜를 모으는 곳.
그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울렸다.
제승당을 나와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도착하는 곳, 충무사(忠武祠).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봉안된 제향 공간이다.
붉은 기둥과 담백한 구조,
그리고 중앙에 모셔진 장군의 초상 앞에는 향로와 제기가 놓여 있었다.
이곳은 그를 기억하고 기리는 마음들이 모이는 곳이다.
향로에서 피어오르던 잔잔한 연기는
단순한 향의 냄새가 아니었다.
시간을 건너 전해지는 충절의 흔적이자,
후손들이 전하는 존경의 숨결이었다.
영정 앞에 서니,
사진 속 충무공과는 전혀 다른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는 살아 있는 듯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라를 지키는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바닷가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푸른 바다를 등지고, 묵직하게 서 있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곳은 이순신공원,
그리고 그 중심엔 커다란 장군의 동상이 바다를 향해 칼을 들고 서 있다.
하지만 그가 진짜 겨누고 있는 건
적의 배가 아니라, 우리가 잊고 사는 ‘책임’과 ‘신념’이 아닐까.
이순신공원은 피크닉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볍게 웃음이 흐르는 공간이지만,
그 동상 앞에 서는 순간,
공기의 밀도가 달라진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전투’보다 ‘결의’를 읽었다.
칼을 들었지만, 칼을 휘두르지 않았던 사람.
싸우기보다, 지키기 위해 싸웠던 사람.
그의 시선 너머에는 바다가 있고,
그 바다 너머엔 한산도가 있다.
우리에겐 단지 섬일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수많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전략을 세웠던 전장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바다를 사이에 두고
그의 과거와 우리의 현재를 잇고 있다.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고,
대신 바다를 바라보며 결심했다."
이순신공원은 그래서 단지 기념물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결심할 수 있도록 등을 떠밀어주는 장소다.
잠시 멈춰 서서,
그와 마주 보는 그 순간이
당신의 마음 어딘가를 다시 세우게 할지도 모른다.
여수에도 이순신 장군의 흔적은 깊다.
그곳은 그가 초기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곳이자, 수군을 처음부터 재정비했던 도시다.
즉, 여수는 출발지이고,
통영은 지휘의 중심, 승리의 무대였다.
여수가 ‘수군의 태동’이라면,
통영은 ‘수군의 완성’이다.
여수에서 시작된 개혁은 통영에서 꽃을 피웠고,
한산도에서 세계에 그 이름을 떨쳤다.
#통영의이순신 #삼도수군통제영 #세병관 #제승당 #이순신공원 #한산대첩광장 #통영여행 #여수이순신 #역사기행 #충무공의정신 #브런치기행문 #통영애온나 #여수도기다려 #통영애온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