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사원이 퇴사를 통보한 뒤 다행히 후임자가 금세 뽑혔다. 송별회 겸 환영회로 점심 회식을 하기로 했다. 며칠 전 황 이사는 이번 주에 저녁 회식을 하자고 김 사원에게 넌지시 물었다. 김 사원은 이번 주에 시간이 안된다고 답했다. 굳이 술자리에서 전하고 싶은 인사는 없었다. 김 사원이 웬만하면 저녁 회식을 피하고 있던 것을 황 이사도 알기에 김 사원이 거절할 줄 예상했을 것이다.
점심 식사였지만 나름 회식인지라 구운 고기에 반주를 곁들였다. 건배를 하며 수고했다, 고마웠다, 환영하다, 잘 부탁한다 같은 형식적인 인사가 오고 갔다.
소주를 몇 잔 마신 황 이사가 입을 열었다.
"김 사원은 회사 다니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 뭐야?"
김 사원은 눈만 깜박였다.
"나는 김 사원이 예전에 청계산 올랐던 게 제일 기억에 남아. 그때 우리 야유회로 다 같이 청계산 갔었잖아? 그때 김 사원이 산을 엄청 잘 타더라고. 그리고 작년에 워크숍 가서 노래방에서 깜짝 놀랐지. 노래를 안 할 줄 알았는데 시키니까 하는 거야. 그때 김 사원이 부른 게 네버엔딩 스토리였지? 노래 좋더라”
카카오톡 안 쓰겠다고 분란을 일으킨 일이나 근로자의 날에 전화 못 돌려놓는다고 박 이사와 불꽃을 튀긴 일보다 정말 산 타고 노래 부른 게 제일 기억에 남았을까?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마지막이라고 애써 좋은 얘기를 꺼내 주니 고마웠다.
그러고 보니 청계산 갈 때만 해도 아직 웃음을 잃지 않았었다. 매일매일 맞닥뜨리는 일이 설레고 신기하기만 하던 때. 노래방? 그때 한 명 한 명 지목하면서 노래를 부르게 해서 아는 노래 중에 모두가 같이 불러줄 것 같은 노래를 선택했을 뿐이었다. 뜻밖의 고루한 선곡에 노래까지 진지하게 부르자 다들 웃기는 했었다.
한동안 계속 바쁘고 정신이 없었다. 이직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회사에 대한 불만과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었다. 그런 마음이었으니 이력서를 쓰기부터 면접을 보러 다니고 이직을 확정하기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여전히 '드디어 떠난다'는 후련함과 '섣부른 결정은 아닐까'하는 두려움 사이에 있었다.
점심 회식 덕분에 잠시나마 돌아볼 수 있었다. 웃음이 피식 나오던 시절도 있었는데, 하마터면 까맣게 잊어버릴 뻔했다. 그런데, 그때는 어떻게 웃을 수 있었을까. 무엇이 변했기에 지금은 웃음을 잃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