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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Dec 22. 2020

조선의 별별 직업들, 기산 풍속화에 다 있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올해 7월 <곤장치고 주리 트는 조선 시대 풍속화가 있다고?>란 글에서 김준근이란 화가의 존재를 자세하게 소개해드렸죠. 그런데 또 기산 김준근입니다. 지금부터 제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보시면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시게 될 겁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신간 도서 가운데 《조선잡사》(민음사, 2020)란 것이 있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속 연구자 4명이 조선 시대 여러 직업 이야기를 모아 펴낸 책이죠. 여기 소개된 조선 사람들의 직업이 모두 예순일곱 가지입니다.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어서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제가 읽으려고 마음먹은 책 가운데 비슷한 것이 있었답니다. 정명섭 작가가 쓴 《조선직업실록》(북로드, 2014). 이 또한 조선 시대 별난 직업들을 모아 소개한 책이죠. 두 책 모두 출발점은 같지만, 직업의 종류나 글을 쓴 방식은 다릅니다. 비교해가며 읽는 재미가 있죠. 두 책에서 소개한 선조들의 직업 가운데는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도 있고,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은 어떨까? 옛사람들의 이런저런 직업을 묘사한 조선 시대 그림은 어떤 것들이 남아 있을까? 그림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감상하고 공부하면 책을 읽어가는 재미에 의미까지 더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자료를 뒤적여가던 차에 되풀이해서 등장하는 하나의 이름을 만나게 됩니다. 김준근, 바로 그분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김준근의 그림에는 정말 없는 게 없습니다. 단언컨대, 조선 말기의 사회상과 생활사, 풍속사를 알고 싶다면 김준근의 그림을 보면 됩니다. 밭 갈고 모내기하고 벼 타작하는 농사일부터 방물장수, 빗장수, 물장수, 대장장이에 길쌈에 포수까지 조선 시대 온갖 직업들이 망라돼 있죠. 아예 이참에 거꾸로 해보기로 합니다. 《조선잡사》와 《조선직업실록》에 없는 직업을 그린 그림만 골라보자!     


국내에서 김준근의 그림을 가장 많이 소장한 곳이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입니다. 2008년에 이 대학에서 꽤 고급스러운 도록을 만들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구해보시기 바랍니다. 워낙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궁금증을 견디지 못한 저도 지난해 도록을 사서 읽었습니다. 숭실대 소장본은 <매산본>과 <스왈른본> 두 종류인데, 여기서는 그림의 격이 더 높은 <스왈른본>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좌) <도리깨질하고> (우) <가래질하고>(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거듭 강조하지만, 김준근의 그림은 ‘예술성’을 기준으로만 봐선 곤란합니다. ‘수출용 그림’이었음을 염두에 두고 ‘내용’에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죠. 두 장면 모두 전통 농촌에서야 흔히 보던 모습이었겠지만, 지금은 <6시 내고향>이나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에서나 간간이 볼 수 있는 지나간 풍경이 됐습니다.     


(좌) <통그릇 깎고> (우) <목혜 파고>(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김준근 그림의 가치는 이 두 장면에서 여실히 확인됩니다. 왼쪽은 그릇 깎는 장면, 오른쪽은 나막신 깎는 장면입니다. 그릇 깎는 그림을 보면 장인이 어떤 도구를 이용해, 어떤 자세로 그릇을 깎았는지 자세하게 알 수 있죠. 오른쪽은 또 어떤가요. 나막신 깎는 재료며 도구 하나하나가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김준근의 그림은 ‘잘 그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잘 보여주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던 겁니다. 이 그림을 감상한 이들이 외국인이란 사실을 기억한다면, 그림을 저렇게 그린 까닭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죠. 어울리지 않는 채색도 ‘기념품’이란 사실을 고려하면 수긍이 갑니다. 여성들의 노동 장면을 묘사한 아래 그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장면을 묘사했는지 도록의 설명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좌) <목화 틀고> (우) <명주실 뽑고>(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가을에 수확한 목화송이를 씨아라는 기계에 얹어 씨를 빼내는 씨아질 모습이다목화를 가공하여 실을 만드는 첫 번째 작업 과정이다직사각형의 나무토막을 몸체로 삼아 2개의 기둥을 박고 그사이에 둥근 나무 2개를 맞물려 끼운 다음 오른쪽 손잡이를 돌리면 2개의 롤러(원통형의 회전물체사이로 씨만 남고 솜은 통과한다.”     

한 아낙네가 누에고치를 끓는 물에 삶아서 명주실을 뽑고 있다부뚜막 위 물을 넣은 솥에 불을 지펴 물이 끓기 시작할 때 누에고치를 넣고 젓가락으로 휘저어 걸린 실마리를 잡아당기면 명주실이 나온다.”     


‘실마리’란 말이 그래서 나왔나 봅니다.      



(좌) <줄 타고> (우) <탈 쓰고>(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지금으로 치면 연예인이라 불리는 광대들입니다. 왼쪽은 줄 타는 광대라 하여 줄광대, 오른쪽은 탈춤 추는 남사당패로 추정되는데요. 영화 <왕의 남자>에서 봤듯이, 광대는 천한 신분을 가진 이들이 종사했던 몇 안 되는 어엿한 직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김준근의 그림에는 이런 예술을 직업으로 가진 이들을 묘사한 것도 상당히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많이 떨어지는 <매산본>에는 <스왈른본>에 없는 장면이 더러 보이더군요. 대표적인 것이 아래 그림들입니다.     


(좌) <은공(銀工)> (우) <매당아(賣糖兒)>(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색을 입히지 않은 것으로 봐선 사려는 사람이 조금 낮은 가격을 불렀나 봅니다. 그래서 드로잉이나 밑그림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뭐 어쨌든 <스왈른본>과 달리 여기에는 한자로 그림 내용을 적었습니다. 은공(銀工)은 은세공품을 만드는 장인입니다. 은을 녹이는 풀무는 물론 각종 공구가 보이죠.     


오른쪽은 보시는 그대로 엿장수입니다. 왼쪽에 엿가위 든 소년이 파는 건 ‘판엿’, 오른쪽에 삿갓 쓴 소년이 파는 건 ‘가랏엿’이랍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동네 장터에 가면 십중팔구 저런 모습으로 엿을 파는 장사꾼들이 보였죠. 지금은 좀처럼 만나보기 어려운 직업입니다. 이 밖에도 김준근의 그림에는 굉장히 다양한 직업들이 등장합니다. 그것만으로도 김준근 그림의 가치는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김준근의 생애는 비밀스럽습니다. 생몰년을 비롯해 남아 있는 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원산, 부산, 인천 등 개항장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점, 그리고 국내에 최초로 번역된 서양 문학작품 『텬로력뎡』(천로역정)의 삽화를 그렸다는 점 정도죠. 한마디로 베일에 싸인 수수께끼의 인물입니다.     


그래서 더욱 김준근의 그림이 전 세계에 무려 1,600점이 넘게 남아 있다는 사실은 놀라움으로 다가옵니다. 김준근을 ‘미술 한류의 원조’로 부르는 까닭이죠.          



※ 이 글은 아트렉처(artlecture.com)에 먼저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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