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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May 03. 2024

계절을 담은 서정,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풍경화

석기자미술관㊺ 판리 <일본 문화를 바라보는 창, 우키요에>-2

가쓰시카 호쿠사이와 더불어 일본 우키요에 풍경화의 양대 산맥을 이룬 또 한 명의 거장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 1797~1858). 38년이라는 나이 차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예술과 삶에서 상당히 다른 행보를 보였다.


15살에 유명 화가의 문하에 들어가 장장 17년 동안 실력을 갈고닦은 히로시게는 스승이 세상을 떠난 32살에 이르러서야 홀로서기의 길로 나갔고, 2년 뒤인 1831년 다른 화명으로 펴낸 『도토 명소 東都名所』 연작을 통해 히로시게 풍경화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2년 뒤인 1833년에 발표한 『도카이도 53역참 東海道五十三次』으로 단숨에 우키요에 대가의 반열에 오른다.     


호쿠사이가 파도 표현에서 자기 화풍을 극명하게 보여줬다면, 히로시게는 화면을 비스듬히 그어 내린 빗줄기로 유명하다. 히로시게는 화면에 계절감을 담은 최초의 우키요에 화가로 불릴 만큼 다양한 계절의 변화를 화폭에 담았다. 그래서 호쿠사이보다 훨씬 섬세하고 감각적인, 그래서 더 일본적인 풍경을 그렸다. 탄탄한 성공가도를 달린 히로시게는 이후 『에도 근교 8경 江戶近郊八景』, 『교토 명소 안내 都名所之內』 등 빼어난 걸작을 잇달아 내놓았다.     


특히 히로시게가 1856년부터 세상을 떠난 해인 1858년까지 꾸준히 제작한 『명소 에도 100경』 연작은 히로시게의 마지막 걸작으로 꼽힌다. 19세기 중반 일본 에도에서만 많게는 1만 5천 부가 팔렸다고 하니, 당시 히로시게 화집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19세기에 이미 ‘대중의 미술화’를 이룬 일본의 미술이 이후 세계 각지로 뻗어나가 자포니즘 열풍을 부른 건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넓은 시야로 일대 풍경을 화폭에 담은 호쿠사이와 다른 히로시게 풍경화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카메라를 바짝 들이대 찍은 사진처럼 특정 기물을 크게 확대해 배치하는 파격적인 구도다. 그래서 당대에 ‘에도 촬영사’로 일컬어졌다. 아래 마지막 그림 「오하시 아타케의 소나기」는 반 고흐가 모사한 작품 「빗속의 다리」로 유명하다. 일본의 시인 나가이 가후는 「우키요에 산수화와 에도 명소」라는 글에 다음과 같이 썼다.     

“호쿠사이의 화풍은 강렬하고 단단하며 히로시게는 부드럽고 조용하다. 사생으로 말하자면, 히로시게의 기교가 호쿠사이보다 더욱 치밀하다. 더불어 호쿠사이의 스케치보다 더 뚜렷하고 명쾌하다. 문학 형식으로 비유하자면, 호쿠사이의 작품이 화려한 형용사를 많이 사용한 기행문이라면, 히로시게의 작품은 섬세하고 평온하며 조근조근 서술하는 문장이다. 이로 인해 호쿠사이의 전성기 걸작은 일본의 정취를 특별히 구현한 것 같지 않고, 반대로 히로시게의 작품에서 전형적인 일본 풍정과 순수한 향토 감각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호쿠사이의 산수화는 사실 묘사에 머물지 않으며 항상 남다른 감각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반대로 히로시게는 시종일관 냉정하고 따라서 약간 단조롭지만 그렇다고 변화가 없지는 않다. 호쿠사이가 폭풍, 뇌우와 번개, 급류를 빌려 산수에 즐겨 움직임을 부여한다면 히로시게는 비, 눈, 달과 색 그리고 찬란하게 빛나는 별빛 아래 편안하고 조용한 야경을 통해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호쿠사이 산수화의 인물은 쉼없이 부지런히 일하는데, 히로시게 그림의 여행객은 말 타고 삿갓 쓴 채로 피곤해서 졸고 있다. 두 대가의 작품에 드러난 서로 다른 경향은 두 사람의 상반된 성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죽는 날까지 새로운 예술의 탐구에 매진했던 호쿠사이와 달리 히로시게는 60살에 머리를 깎고 불교에 귀의했다. 여기, 히로시게의 대표작을 몇 점 소개한다.

     

「다카나와의 보름달 高輪之明月」, 『도토 명소』 연작, 오반니시키에, 34.8×21.3cm, 1831년경, 도쿄 오타기념미술관


「쇼노 소나기 庄野 白雨」, 『도카이도 53역참』 연작, 오반니시키에, 34.8×22.5cm, 나고야시립박물관


「간바라 밤의 눈 蒲原 夜之雪」, 『도카이도 53역참』 연작, 오반니시키에, 35.5×22.7cm, 나고야시립박물관


「다마강 추월 玉川秋月」, 『에도 근교 8경』 연작, 오반니시키에, 36.9×24.9, 1837~38, 도쿄 오타기념미술관


「아라시야마에 만발한 꽃 あらし山満花」, 『교토 명소 안내』 연작, 오반니시키에, 35.5×22cm, 1837~38, 도쿄 국립국회도서관


「세바 洗馬」, 『기소카이도 69역참』 연작, 오반니시키에, 37.3×25.2cm, 1837년경, 도쿄 오타기념미술관


「가메이도 매화 숲」, 『명소 에도 100경』 연작, 오반니시키에, 36.7×26.2cm, 도쿄 에도도쿄박물관


「후카강 스사키 10만 평 深川洲崎十万坪」, 『명소 에도 100경』 연작, 오반니시키에, 35.3×23.8cm, 도쿄 에도도쿄박물관


「오하시 아타케의 소나기 大はしあたけの夕立」, 『명소 에도 100경』 연작, 오반니시키에, 36.7×25cm, 도쿄 에도도쿄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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