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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May 07. 2024

600년 역사의 서울 풍경은 어떻게 변해왔나

석기자미술관㊻ 도록 <서울 600년 서울풍경의 변천전>


서울 그림 자료를 찾다가 손에 넣은 도록이다. 중고로 비싸게(!) 샀다.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해 1994년 9월 6일부터 21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 <서울 600년 기념 서울 풍경의 변천전>의 도록이다. 예술의전당과 서울특별시, 조선일보사가 주최하고 한국방송공사가 후원했다. 큐레이터는 송인상 예술의전당 미술부 과장이었고, 자문위원으로 박래경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박용숙 동덕여대 교수, 이대원 화가, 이인실 화가, 최덕휴 화가 다섯 분이 이름을 올렸다. 전시 서문은 당시 예술의전당 전시사업본부장이던 이구열 선생이 썼다.     


한국화 39점, 서양화 100점을 더해 서울을 그린 그림 139점을 선보인 대규모 전시로, 근대 서울 그림의 출발점이라 할 심전 안중식의 1915년 작 <백악춘효>부터 전시가 열린 1994년 작품까지 80년을 아우른다. 서울을 주제로 한 이만한 규모의 전시는 당시로도 유례가 없었고, 전시가 열린 1994년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없다. 30년 전에 만들어진 전시 도록인데도 도판 상태를 포함해 만듦새가 매우 훌륭하다. 이리 뒤적 저리 뒤적 넘기다 보면 마냥 즐겁다. 훗날 내 작업에 든든한 밑거름이 돼줄 것이다.     


안중식 <백악춘효>, 1915, 비단에 채색, 192.2×50cm, 국립중앙박물관, 등록문화재

  

근대로부터 서울 그림을 시작하려면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 1861~1919)의 <백악춘효 白岳春曉>에서 출발하는 것이 마땅하다. 경복궁을 중심에 놓고 그린 그림 자체가 그전에는 없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심전이 1915년에 비단에 그린 <백악춘효>는 여름본과 가을본 두 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한다. 두 그림은 크기가 다르다. 역사적, 미술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나란히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조선의 마지막 도화서 화원이었던 화가는 이 그림에 어떤 마음을 담았던 것일까.     


김주경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 1927, 캔버스에 유채, 97.5×130.5cm,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풍경을 그린 가장 오래된 유화 작품으로 전하는 것은 김주경이 도쿄미술학교 유학 시절인 1927년에 그린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이다. 당시 서울 정동에 있던 대한성공회의 전신 ‘조선성공회’ 건물을 중심으로 한 일대 풍경을 담은 작품으로, ‘대상의 질감을 고려한 붓의 터치와 마티에르 효과 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29년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했다. 1971년 창덕궁의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돼 1980년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됐다.     


월북화가인 김주경은 1930년 조선미술전에도 <성 마리아, 성 니콜라이 성당>을 출품하는 등 서울 풍경을 많이 그렸다고 하나 안타깝게도 지금 전해지는 작품은 없다. 더욱이 1920년대 서울 그림이 워낙 드물기도 해서 이 작품은 더 귀하다.     


박득순 <서울 풍경>, 1949, 캔버스에 유채, 98×162cm, 서울시립미술관

   

해방 전의 대표적인 서울 풍경화 작가로는 박영선(1910~1994)이 있고, 해방 후 1950년 이전에 서울 전경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박득순(1910~1990)의 <서울 전경>을 꼽는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기 전 서울의 모습을 담은 귀한 그림이어서, 이구열 선생도 전시 서문에서 이 작품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1949년에 제작된 대작인 <서울 전경>은 박득순의 특출했던 사실적 묘사력과 정확한 표현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역작이다남산의 중턱(지금의 케이블카 정류장 부근)에서 북한산 쪽을 바라보며 눈앞에 펼쳐진 서울의 도심부 일대를 광대한 시각으로 구도 삼은 이 작품은 서울 전경을 주제 삼은 유화로서 현존하는 (기록에도 선례가 없다가장 오랜 대작이다.”     


박상옥 <서울의 아침>, 1959, 캔버스에 유채, 58.5×104.5cm, 한원미술관


6․25 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 첫손에 꼽는 서울 풍경화가는 박상옥(1915~1968)이다. 1950년가 저물어가는 시기에 서울 전경을 한 화면에 담은 보기 드문 대작으로, 1994년에 전시될 당시의 제목은 <서울 전경>이었으나 어느 시점에 바뀌었는지 한원미술관 소장품 검색에서는 <서울의 아침>으로 나온다.     


최덕휴 <한국외환은행을 중심으로 본 서울>, 1988, 캔버스에 유채, 145.5×227.3cm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서울 풍경을 가장 많이, 가장 오래, 가장 공들여 그린 화가는 최덕휴(1922~1998)였다. 광복군 화가로도 유명한 최덕휴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성실한 서울 풍경화가로 꼽힌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최희용 씨가 아버지에 관한 기록과 작품 목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온라인 공간에 최덕휴 뮤지엄(http://choidukhyu.org/) 열었다. 최덕휴 뮤지엄에서 찾아본 이 작품의 제목은 <외환은행본점에서 본 서울>이다.     


2011년 가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아드님을 뵙고 인터뷰한 기억이 떠오른다. 최덕휴 화백의 작품 40여 점을 선보인 이 전시 소식은 2011년 10월 28일 KBS 뉴스9에 방영됐다. 벌써 13년 전이다. 이런 기록이 하나하나 모여 소중한 자료가 된다.     


풍경화로 피어난 옛 서울의 추억 (KBS 뉴스9 2011.10.28.)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2379769     


이억영 <자하문(창의문)>, 1984, 종이에 수묵담채, 143×243cm


2011년은 내게 기억할 만한 한 해였던 것 같다. 이보다 몇 달 앞서 서울 그림으로 기억되는 또 다른 화가 이억영(1923~2009)의 전시를 KBS 뉴스9에 소개한 바 있기 때문. 이억영 화백은 여든일곱 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한평생 먹으로 서울의 풍경과 역사 유적을 그렸다. 그해 여름 서울 청계천문화관에서 열린 <창석 이억영, 서울의 실경산수> 전을 취재했고, 화가의 외동딸인 이선주 씨가 인터뷰에 응해주셨다. 이것 또한 하나의 역사로 남으리라.     


청계천에서 한강까지화폭에 담은 옛 서울 (KBS 뉴스9 2011.08.14.)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2340165     


의도했건 아니었건 미술기자 초년병 시절부터 서울 그림과 이런저런 인연을 맺어온 셈이다. 언젠가 그 모든 기록을 정리해서 유의미한 결과물을 남겨야 할 테고, 도록을 차분하게 넘겨보면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한 화가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소개하려 한다. 채색한국화가 조풍류의 <서울전경도>다.     


조풍류 <서울전경도>(2023)

  

지금까지 공개적인 자리에서 한 번도 전시된 적 없는 조풍류 화가의 2023년 작품이다. 그러다 보니 아직 정확한 크기를 재본 적이 없다. 대형 캔버스 5개를 이어붙인 화면에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을 담은 이 대작이 전시장에 걸리면 얼마나 근사할까. 나는 이 그림이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서울 전경으로 남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해 그림을 완성한 화가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라는 의미는 과거를 통해서만 이야기 할 수 있다역사와 전통이 관련되어 있지 않은 현대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전통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시대마다 빼어난 것들만 살아남아 전승돼온 것들이다그러므로 전통에서 배우고 전통을 통해서 이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것이 바로 나의 예술의 미래이기 때문이다남산에서 바라본 서울전경도 2년을 그려 완성했다. 22세기 미래의 서울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이 작품이 유구한 역사의 서울에 가장 멋진 선물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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