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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석 May 31. 2020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신박한 잡학 사전

성대중 『청성잡기』

『청성잡기 靑城雜記』는 18세기 사람 성대중(成大中, 1732-1812)이 남긴 개인 문집입니다. 청성은 성대중의 호이니, 제목은 글자 그대로 ‘성대중이 쓴 잡다한 기록’입니다. 성대중은 서자(庶子)였습니다. 어머니가 양반이 아닌 서인(庶人) 첩이었습니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이유죠. 서자는 어머니가 천민 첩인 얼자(孽子)와 함께 서얼(庶孼)로 묶여 낮은 신분으로 취급됐습니다. 당연히 출세에 제약이 따랐죠.


그 울분을 글공부로 달랬을 겁니다. 큰 뜻을 품어도 세상에서 쓰임 받지 못한 지식인들의 피난처는 ‘책’이었을 겁니다. 그나마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에는 서자 출신들이 속속 기용돼 규장각을 중심으로 큰 활약을 하게 되죠. 성대중도 규장각 검서관으로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과 교분을 맺었습니다. 1764년엔 조선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오기도 했고요.



『청성잡기』는 주제별로 헤아려 따져보는 말이란 뜻의 췌언(揣言), 오늘날의 격언과 비슷한 질언(質言), 깨우치는 말을 뜻하는 성언(醒言)의 세 가지로 나뉩니다. 췌언 11편, 질언 142편, 성언이 411편입니다. 이 가운데 성언의 편수가 가장 많습니다. 성언 411편 가운데 중국 사료를 중심으로 쓴 것이 116편(28%), 한국 사료로 구성한 것이 296편(72%)입니다.


이 책으로 저를 인도한 건 김헌식의 『청년 이순신 미래를 만들다』(평민사, 2020)입니다. 『청성잡기』의 성언(醒言) 편에는 이순신에 관한 글 세 편이 실려 있죠. 부랴부랴 책을 수소문했더니 두 권이 확인됐습니다. 하나는 박소동 한국고전번역원 이사가 『청성잡기』 가운데 우리나라에 관한 것만 추려서 펴낸 『궁궐 밖의 역사』(열린터, 2007)입니다. 지금은 절판된 상태입니다. 또 하나는 전문이 수록된 올재 판 『청성잡기』(올재, 2012)입니다. 이 책 역시 한정판으로 출간돼 중고로만 구할 수 있습니다.


가장 주목해봐야 할 것은 이순신에 관한 기록입니다. 세 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이순신이 왜적을 물리칠 방법을 찾기 위해 백성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대목입니다. 이 기록은 다른 문헌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치가 더 큽니다. 또 하나 주목해볼 것은 이순신이 어린 시절부터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것으로 알려진 서애 유성룡과 첫 만남을 소개한 글입니다. 성대중의 기록을 보면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20대 시절이었습니다. 우리가 알아온 내용과 상당한 차이가 있죠. 100% 믿을 수 있다, 없다와 상관없이 이런 기록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대중은 세상사에 두루두루 관심이 많은 지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잡기(雜記)라는 제목에서 보듯 별의별 것들을 다 모아서 적어 놓았습니다. 그 가운데 어떤 이야기들은 제가 얼마 전에 읽은 조선 후기 대표 야담집 『청구야담』과도 겹치는 내용이 제법 보입니다. 이야기는 어차피 그렇게 돌고 도는 거니까요. 검무(劍舞)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밀양 출신 기생 운심, 도깨비조차 그 그림을 무서워했다는 조선 최고 화가 단원 김홍도, 우리 땅 울릉도를 지킨 안용복 등 여러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제가 최근에 읽고 소개한 『해유록』의 저자 신유한에 관한 기록도 보입니다. 신유한 역시 서자 집안 출신입니다.


신유한은 깊이 생각하기를 좋아해서 시를 빨리 짓지 못했으므로 일본인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허나 그의 『해유록』은 문장이 매우 뛰어나서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무릇 남쪽 땅의 일개 선비로 30년 동안이나 도성의 문단을 주도하였는데 어찌 아무런 까닭이 없겠는가.



이 책을 통해 임진왜란 때 포로로 잡혀 일본에 끌려갔다가 가까스로 돌아와 자기 경험담을 남긴 강항의 『간양록』과 광해군 때 명나라 군대를 지원하러 출전했다가 후금 군대에 항복한 강홍립의 수행 군관이었던 권칙이 지은 「강로전」을 읽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성대중은 전자가 훗날 유명해진 데 비해 후자가 푸대접을 받은 현실을 비교해서 적어 놓았습니다. 둘 다 시중에서 쉽게 구해볼 수 있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 했던가. 성대중의 아들 역시 당대의 심미안으로 이름을 떨쳤으니, 그 이름은 성해응. 당대의 글씨와 그림을 평가한 성해응의 책 『서화잡지』 역시 시중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저는 공교롭게도 아들의 책을 먼저 읽었죠. 아버지 성대중이 펼쳐 놓은 글밭에서 노닐다가 문득 이런 구절을 만났습니다. 이름 하여 나의 좌우명. 끊임없이 자신을 경계하고 가다듬었던, 그러면서도 기록에 충실했던 한 조선 선비의 삶이 압축된 문장입니다.


이름은 훗날을 기다리고 이익은 다른 사람에게 미루며, 세상살이는 나그네처럼 벼슬살이는 손님처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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