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풍기 『선물의 문화사』(느낌이있는책, 2019)
무엇을 선물할 것인가. 선물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을 똑같이 고민하게 만듭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는 청심환이 최고의 선물로 등장합니다. 중국 여행길에 만나는 중국인들은 너도나도 조선 사신단에게 청심환을 달라고 애걸하죠. 중국인들조차 인정한 최고의 상품이었던 겁니다.
물론 이 책에도 청심환은 어김없이 등장합니다. 청심환이 워낙 인기가 많았던 까닭에 이문에 밝은 이들은 국경을 넘기 전에 청심환을 한 보따리 사서는 중국에 들어가 2천 배, 3천 배가 넘는 가격에 팔았다고도 합니다. 그랬으니 가짜가 판을 쳤다는 이야기도 과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심지어 19세기에는 중국에서 팔린 청심환이 대부분 썩은 풀뿌리 같은 것을 넣은 뒤 금박을 입혀 포장한 가짜였다는 기록까지 남아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죠.
이 책에는 조선 사람들이 선물로 즐겨 주고받은 19가지 물건이 등장합니다. 기록에 남아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선물을 주고받은 이들은 ‘지배층’입니다. 아무리 양보해도 최소 중인(中人) 이상이죠. 백성들이 일상 속에서 어떤 선물을 주고받았는지는 모릅니다. 기록에 없으니까요. 그런 점을 고려하면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임금이 신하에게 내려준 선물 가운데 ‘칼이 든 지팡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줍니다. 영화 속에서나 보던 물건이 우리 역사에도 있었고, 더구나 실제 유물까지 남아 있으니 말이죠.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된 이경석의 궤장(几杖)은 조선시대에 왕이 원로대신에게 내려준, 현재로선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귀한 보물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건 멧돼지 가죽으로 만든 갖옷입니다. 갖옷은 겨울에 추위를 막기 위해 입은 방한복이죠. 요즘으로 치면 모피 코트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한겨울 장면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짐승 털가죽 옷입니다. 그런데 돼지가죽으로 갖옷을 만들어 입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심지어 꽤 고급이었는지 임금부터 사대부가의 부인네들까지 돼지가죽으로 만든 갖옷이 꽤 인기가 높았던 모양입니다. 관련 일화도 여럿 남아 있고요.
여기서 말하는 돼지가죽은 멧돼지의 가죽을 일컫습니다. 겨울을 잘 이겨내는 동물의 가죽을 방한용 소재로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죠. 다만 멧돼지 사냥이 쉽지만은 않았을 테니 가격도 그만큼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 멧돼지 가죽으로 코트를 만들어 팔면 사람들이 과연 입을까요. 모피를 향한 욕망이 이제는 동물 보호라는 의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세상에 말입니다.
부담 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아가는 독서는 늘 즐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