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연봉이 나의 연봉을 넘었다.
아내의 연봉이 나의 연봉을 넘었다. 10~20% 수준이 아닌 몇 배의 수준으로 넘어버렸다. 물론 아내는 사업이므로 연봉으로 환산하기가 어렵고 시간당 페이를 측정하는 게 더 적절하다. 나 역시 이제 곧 회사를 그만 둘 사람이기에 시간당 페이로 환산하면 된다. 시간당 페이로 환산하는 게 가장 정확한데, 그럼 너무 속상해서 그냥 연봉으로 계산하는 게 조금 더 위로가 되어서 연봉을 비교했다.
원래부터 아내가 연봉이 높았던 게 아니었다. 결혼 초기에는 내 연봉이 아내보다 2배는 높았다. 내가 아내의 학자금 대출 남아있는 것도 쿨하게 내줬으니 경제적으로는 훨씬 내가 월등히 뛰어났다. 그리고 결혼 당시 내가 아내에게 돈을 벌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냥 하고 싶은 거 하고 집에서 아이들 잘 키워주기를 바랐었다. 전통적인 한국사회의 현모양처로 불리는 아내의 모습을 기대했었다.
그 기대는 10년이 지난 지금, 완전히 뒤바뀌었다.
내가 원했던 현모양처의 아내의 현장을 내가 차지하고 있다. 역시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한다. 시작할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할 수도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인생이 다이내믹하고 살아볼 만한 재미가 있는 매력이 있기도 한다. 성공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하며, 무너졌던 사람이 다시 일어나서 성공하기도 하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삶이 세상 곳곳에 숨겨져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둘째 딸아이가 내 무릎에 앉아서 모니터를 같이 응시하고 있다. 시간을 따로 내어서 조용히 글을 쓰고 싶지만 주부에게 그러한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냥 삶이 어지러워 보이는 순간에도 집중해서 내 할 일을 해낼 수 있어야 최소한 주부로써 자격이 있는 것 아닐까?
(잠깐 이야기가 샜는데 다시 돌아온다.)
그렇다. 내가 결혼 당시 생각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아내는 점점 더 커리어가 쌓이고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반면에 나의 커리어는 완전히 회복 불가한 수준에 이르렀고 아이들과 지내고 집안일을 하면서 사회랑은 점점 멀어지는 상황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아내는 사회에서 점 점 더 빛을 얻어가고, 나는 사회에서 점 점 더 멀어져서 빛을 잃고 있다. 그런데 빛을 잃어가는 게 나쁘지 않다. 그리고 이 매력을 점점 더 알게 된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잠깐 봐서는 모르는 아이들에 숨겨진 아름다운 모습들, 그들 속에서 발견하는 숨겨진 인간의 신비로움. 그냥 마냥 이쁘고 즐거운 아이들의 모습들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이 내 뜻 때로 움직이지 않을 때 드러나는 나의 포악한 모습들, 성질을 참지 못해서 점점 더 늙어져 가는 듯한 나의 인내부족, 아이들도 제대로 못 보면서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살아왔던 날들의 후회. 그리고 사회활동을 하지 않아서 생겨나는 진정한 친구들. 나를 나로 보게 되는 가장 소중한 시간들을 얻고 있다.
말이 나를 이끄는 것인가?
내가 말을 이끄는 것인가?
아니면, 둘의 호흡이 필요한 건가?
연봉이 많은 아내가 우리 집의 대장 같지만,
연봉이 적은 남편이 우리 집의 대장일 수 있다.
아니 대장이길 싸우기보다는 둘의 호흡이 필요한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연봉과 사회적 지위와 그가 가진 재능을 기반으로 삶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작거나 큰 조직을 이끌어 간다. 그것이 가장 작게는 가정부터 크게는 한 나라까지.
연봉이 높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향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연봉과 영향력을 동일시한다.
그런데, 실제 아내가 나보다 연봉이 많아지고 보니 이 말이 실제임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싫든 좋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나의 위치를 깨닫고 겸손히 집안일과 아이들을 묵묵히 하려고 하다가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아내가 나보다 연봉이 많아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집에서 아이들과 집안일을 넉넉히 해내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녀의 연봉을 결정했는가? 그녀의 재능+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낸 손길이 합쳐진 것이다.
그래도 내 자존심은 아직 죽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조용히 준비하면서 더 높은 연봉을 받는 날이 올 것이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