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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Mar 26. 2020

아내보다 연봉이 낮은 남편의 속사정

아내의 연봉이 나의 연봉을 넘었다.

아내의 연봉이 나의 연봉을 넘었다. 10~20% 수준이 아닌 몇 배의 수준으로 넘어버렸다. 물론 아내는 사업이므로 연봉으로 환산하기가 어렵고 시간당 페이를 측정하는 게 더 적절하다. 나 역시 이제 곧 회사를 그만 둘 사람이기에 시간당 페이로 환산하면 된다. 시간당 페이로 환산하는 게 가장 정확한데, 그럼 너무 속상해서 그냥 연봉으로 계산하는 게 조금 더 위로가 되어서 연봉을 비교했다.


원래부터 아내가 연봉이 높았던 게 아니었다. 결혼 초기에는 내 연봉이 아내보다 2배는 높았다. 내가 아내의 학자금 대출 남아있는 것도 쿨하게 내줬으니 경제적으로는 훨씬 내가 월등히 뛰어났다. 그리고 결혼 당시 내가 아내에게 돈을 벌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냥 하고 싶은 거 하고 집에서 아이들 잘 키워주기를 바랐었다. 전통적인 한국사회의 현모양처로 불리는 아내의 모습을 기대했었다.


그 기대는 10년이 지난 지금, 완전히 뒤바뀌었다.

내가 원했던 현모양처의 아내의 현장을 내가 차지하고 있다. 역시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한다. 시작할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할 수도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인생이 다이내믹하고 살아볼 만한 재미가 있는 매력이 있기도 한다. 성공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하며, 무너졌던 사람이 다시 일어나서 성공하기도 하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삶이 세상 곳곳에 숨겨져 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둘째 딸아이가 내 무릎에 앉아서 모니터를 같이 응시하고 있다. 시간을 따로 내어서 조용히 글을 쓰고 싶지만 주부에게 그러한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냥 삶이 어지러워 보이는 순간에도 집중해서 내 할 일을 해낼 수 있어야 최소한 주부로써 자격이 있는 것 아닐까? 

(잠깐 이야기가 샜는데 다시 돌아온다.)



그렇다. 내가 결혼 당시 생각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삶을 우리는 살고 있다. 아내는 점점 더 커리어가 쌓이고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반면에 나의 커리어는 완전히 회복 불가한 수준에 이르렀고 아이들과 지내고 집안일을 하면서 사회랑은 점점 멀어지는 상황을 매일 경험하고 있다. 


아내는 사회에서 점 점 더 빛을 얻어가고, 나는 사회에서 점 점 더 멀어져서 빛을 잃고 있다. 그런데 빛을 잃어가는 게 나쁘지 않다. 그리고 이 매력을 점점 더 알게 된다. 


아이들과 지내면서 잠깐 봐서는 모르는 아이들에 숨겨진 아름다운 모습들, 그들 속에서 발견하는 숨겨진 인간의 신비로움. 그냥 마냥 이쁘고 즐거운 아이들의 모습들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이 내 뜻 때로 움직이지 않을 때 드러나는 나의 포악한 모습들, 성질을 참지 못해서 점점 더 늙어져 가는 듯한 나의 인내부족, 아이들도 제대로 못 보면서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살아왔던 날들의 후회. 그리고 사회활동을 하지 않아서 생겨나는 진정한 친구들. 나를 나로 보게 되는 가장 소중한 시간들을 얻고 있다.




[나의 제2의 고향 키르기스스탄에서]


말이 나를 이끄는 것인가? 

내가 말을 이끄는 것인가?

아니면, 둘의 호흡이 필요한 건가?


연봉이 많은 아내가 우리 집의 대장 같지만,

연봉이 적은 남편이 우리 집의 대장일 수 있다.

아니 대장이길 싸우기보다는 둘의 호흡이 필요한 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연봉과 사회적 지위와 그가 가진 재능을 기반으로 삶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작거나 큰 조직을 이끌어 간다. 그것이 가장 작게는 가정부터 크게는 한 나라까지.

연봉이 높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향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연봉과 영향력을 동일시한다. 


그런데, 실제 아내가 나보다 연봉이 많아지고 보니 이 말이 실제임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다. 싫든 좋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나의 위치를 깨닫고 겸손히 집안일과 아이들을 묵묵히 하려고 하다가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아내가 나보다 연봉이 많아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내가 집에서 아이들과 집안일을 넉넉히 해내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녀의 연봉을 결정했는가? 그녀의 재능+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낸 손길이 합쳐진 것이다.


그래도 내 자존심은 아직 죽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가 조용히 준비하면서 더 높은 연봉을 받는 날이 올 것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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