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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Mar 04. 2020

고집 센 아들 vs 아빠

회복탄력성이 빠른 아이들

"안돼!"

원하는 걸 포기한다는 건 어린 아이나 어른이나 똑같이 어렵다.

결국 나의 아들은 포기하지 못하고 고뇌에 빠졌다.

고뇌라는 단어는 어른들에게 적절한 줄 알았는데 10살인 아이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경험하는 고뇌의 무게와 내가 경험하는 고뇌의 무게는 비슷하지 않을까?


오래전부터 아들 녀석이 집요하게 요구해온 것이 있다.

반려견


나도 반려견 키우고 싶다. 그런데 너네 셋 키우기에도 벅찬데 솔직히 도저히 자신이 없다. 그래서 막내가 조금 더 크면 키울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아들이랑 이 주제에 대해서 오랫동안 대화해왔기에 그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엄청 크고 멋진 반려견을 데리고 우리 옆을 지나갔다. 나도 마음에 들었고 아이도 마음에 들어한다. 물론 우리가 그 큰 반려견을 키울 순 없다. 계획은 있다. 큰 개를 키울 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는 것이 첫 번째 계획이다. 그 계획을 성취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그 반려견을 보자마자 아들은 자기도 키우고 싶다고 아우성친다. 나의 아들은 집요하다. 한번 하고자 하는 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다. 어린 시절 키즈카페에 가더라도 한 가지 놀이만 2시간 내내 하는 집중력과 집착(?)이 아주 강한 녀석이다. 때로는 장점일 수도 있고 때로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단점일 수 있는 성격인데, 장점으로 키워주기 위해서 노력 중이다. 그러려면 부모의 인내가 필요하다. 그런데 인내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지금 형편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들을 집요하게 요구할 때,

이럴 때는 답이 없다. 그런데 이럴 때도 인내가 필요하다.


나 또한 집요하고 지속적으로 No! 를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 아들이 괴로워하고 타협을 계속 요구하더라도 마지막 데드라인까지 몰고 오더라도 나는 지속적으로 No를 이야기해야 한다.




아빠의 고집 VS 아들의 고집


그런데 생각해보니,

너나 나나 둘 다 고집 센 남자아이다.


아빠인 나는 우리 형편상 너의 요구는 지금 들어줄 수 없어! 를 계속 고집하고 있고

아들은 지금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 건 내 삶이 너무 고통과 좌절로 가득 넘치는 거예요! 를 계속 고집하고 있다.


누가 이길 것인가?

권력은 분명 아빠에게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그 권력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아들에게 있다.


결국 나는 권력을 움직이는 아들의 힘에 흔들려서 

"한번 생각해 볼게"


라고 타협점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아들에게 큰 기대감을 줬다.

물론 이 타협점에는 엄마와의 대화도 포함되었다.

한번 생각해보자는 엄마의 조언이 아들에게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줬다.

나의 고집은 이렇게 한번 꺾였다.



하루가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아내와 나는 다시금 정신이 들었다. 

"아직은 아니야.."


아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역시나 어제보다 더 괴로워한다. 슬퍼하고 통곡한다. 괜히 기대감을 주게 만들었나라는 후회도 밀려오는 것 같고 좀 더 단호하게 하지 못한 것 같은 자괴감에 빠진다. 그리고 아들 녀석은 왜 저렇게 하고 싶은걸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 책임을 엄마 성격으로 돌려보지만 그것 역시 내 마음을 편하게 하지는 못한다.


회복탄력성이 빠른 아이들


어른들은 어떠한 사건, 괴로움에서 다시금 행복하게 돌아오는데 상당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리고 상처를 크게 입힌 사건들에 대해서는 트라우마가 생기고 잘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살아온 세월이 길고 굳어진 몸과 마음, 생각 속에서 새로운 영역으로 전환하기에는 꽤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이들은 사건과 괴로움에서 다시금 행복하게 돌아오는데 시간이 거의 걸리지 않는다. 이 사실을 쉽게 잊어버려서 아이들을 양육하고 기르는데 부모들이 어려워한다. 나 역시 아이들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크고 아이들이 금방 회복하고 생각의 전환이 빠르다는 걸 금방 잊어버린다.


나의 아들은 아침에 세상 모든 근심과 괴로움을 다 짊어졌지만, 지금은 우리 집에서 반려견을 키울 수 없다는 엄마, 아빠의 이야기에 괴로워하는 시간을 오래 가지진 않았다. 1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이 지나서 아들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빠! 서은이(막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 반려견 키워요. 전 이제 괜찮아요!."


결국 아들이 이겼다.

고집을 꺾을 줄 아는 이가 승리자다.

그리고 아빠가 고집을 꺾을 수 없는 이유를 받아들여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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