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 하세요?"
이 질문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듣고 배웠지만, 그걸 실제로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사람이 어떠한 직업을 가졌다는 건, 그 사람이 그 분야에 오랫동안 노력을 했고 그 노력의 결과로 능력을 얻었거나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직업이라는 영역은 분명히 한 사람의 노력과 그에 따른 능력에 대한 평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위 질문을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이런 속뜻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그동안 당신은 당신의 능력을 얼마나 갈고닦아 왔나요? 그리고 그 결과 지금 어떠한 능력을 사회에 입증해 보이고 있죠?"
이 질문이 더 솔직하고 구체적인 질문이 될 듯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100% 맞는 말은 아니다. 아마 사회주의 국가가 성공했다면 이 말의 실현 가능성을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겠지만,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 말은 틀렸다. 직업에는 분명히 귀천이 있다. 그래야 덜 속상하고 실제 현실을 모든 사람들이 똑똑히 바라볼 수 있다.
혹은 이렇게 정의를 바꾸는 건 오히려 더 타당성과 합리성이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은 직업을 평가할 때 귀하고 천한걸 따지지만, 그 직업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에는 귀천이 있을 수 있다.
현대사회의 직업은 그 직업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보다는 능력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이 구조를 바꾸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좋은 능력에 대한 평가는 오직 결과로만 평가되는데, 이러한 평가는 당연히 그 직업을 대하는 사람의 태도까지 바꾸게 된다. 오직 좋은 결과를 위해서 기본적인 도덕성과 사람을 대하는 진실된 태도 등은 무시해도 된다. 아니 그렇게 해야 좋은 결과를 내는 경우가 의외로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그 둘 사이에서 사람들은 그 직업에 대한 태도보다는 능력과 결과를 택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그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성공의 길로 빠르게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물어본다.
"무슨 일 하세요?"
"네, 집안일하고 아이들 케어합니다."
라고 당당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목격한다.
"프리랜서에요. 이것저것 합니다."
라고 나를 주로 소개하고 있다.
사실 두 대답 모두 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주요하게 하고 있는 일은 집안일과 아이들 케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시간적 간격을 잘 찾아서 프리랜서로 이것저것 하고 있다. 시간적 배분이 집안일과 아이들 케어에 더 집중되어 있고, 일의 우선순위 역시 그렇다. 그래서 사실 집안일을 하고 있고 부업으로 이것저것 합니다.라고 소개하는 게 더 나에 대해서 정확히 이야기하는 거다.
나를 잘 아는 지인들에게는 집에서 애들 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아주 부러워한다. 역시 뭘 몰라도 한참을 모른다는 생각을 혼자 하지만, 그걸 굳이 설명하지는 않는다. 경험하지 못하면 알지 못하는 게 사람이기 때문에 그냥 그들의 부러움을 순간 즐기는 게 오히려 나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주부 아빠인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먼저는 나를 위해서 쓴다. 사실 대한민국에서 남자가 주부일을 주업으로 한다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는 아직 이러한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일단 기본적으로 학부모의 커뮤니티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아이들이 초등학생 정도 되면 학부모들의 커뮤니티가 형성이 되는데, 그 학부모들의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학원, 교육 등 정보교환이 이루어진다. 그 커뮤니티에 들어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일단 남자인 나를 그 커뮤니티에 들어오게 하고 싶은 엄마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나마 나의 아이와 친한 친구 엄마들은 따로 연락해서 아이들을 서로 만나게 해 준다. 그래 아빠가 아이들을 볼 때 일어나는 일중 현재로써의 최선은 여기까지인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그룹이나 집단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주부 역시 주부들의 모임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그 일에 매진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런데 남자인 내가 그 모임에 들어가서 정체성을 찾는 건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단순히 성이 다르다는 이유도 있지만, 공감대 형성에 여전히 미치지 못하는 많은 부분들이 있다. 그래서 내가 나의 정체성을 잘 찾기 위한 방법은 그저 스스로 찾아내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좋은 건 역시나 글쓰기다. 글을 쓰면서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하게 되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도 정리가 되고 거기다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건 다른 사람들의 생각까지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일기와 다른 점은 이런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있게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기가 더욱 좋긴 하다. 자신에게 온전히 솔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부 아빠인 나는 무엇을 위해서 쓰는가?
사실, 주부 아빠라고 명칭을 호칭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게 사실이다. 길진 않지만 지금까지 일을 해본 결과 주부는 정말 위대한 직업이고, 주부를 잘 해낸 사람은 다른 어떤 영역에서도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주부를 아무렇게나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위대한 '주부'의 단어를 내가 막 사용하기에는 여전히 나는 부족함이 많다.
아직도 하루 세끼 식사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집안일도 잘하는 듯하다가 또 무너져서 실패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냥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못하는 날들도 간혹 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들에게 소리치지 않기로 다짐해놓고, 또 어느새 소리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신경을 잘 못써줘서 아이들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도 하고, 나 역시도 주부 일과 프리랜서 일 사이에 혼란을 겪기도 하면서 우선순위를 놓치는 경우가 여전히 많이 생겨난다. 아직은 주부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다른 일을 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나는 여전히 초보주부임에는 분명하다. 최소한 중수 정도는 되어야지 주부 아빠라고 당당히 쓸 수 있을 텐데 그러기에 나는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주부 아빠라고 수식어를 달기가 부끄럽지만, 그래도 지금 나를 가장 잘 설명해줄 수 있는 수식어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나도 좋은 주부 아빠가 되겠지라는 희망을 품고 수식어를 사용해 본다.
서두가 길었는데, 서두가 무엇을 위해서 쓰는 결론이다. 또 다른 주부 아빠들을 위해서, 또 다른 초보주부들을 위해서 나의 심정과 실패과정 그리고 일어서는 과정들을 글로 남긴다면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다.
시행착오와 실패를 겪겠지만, 이 일에서 이탈하거나 이 일을 통해서 정체성을 오히려 망각하는 그런 일은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든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나의 작은 실천으로 인해서 조금 더 한국사회의 내실이 튼튼해 지기를 희망하는 큰 포부(?) 또한 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것을 받아들일지는 여전히 의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