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살인. 1 (효라빠 장편 소설)
회색의 육중한 철문이 열렸다. 신선한 공기가 문 하나 사이로 다르게 느껴졌다. 안에서는 공기뿐 아니라 주변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악을 택한 자들이 있는 곳(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돈을 차지하기 위해 가차 없이 사람의 목숨을 끊는 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속이는 자,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폭력을 행사하는 자......).
교도소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 사람의 심리를 흔들어 놓았다.
설령 지은 죄가 없는 사람도 무언가 모를 음침함에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고 어깨를 움츠려 들게 했다.
차가운 수갑을 차고 들어 가는 죄지은 자들을 따라 검은 망토를 걸친 암흑의 그림자도 뒤따라오는 듯했다.
팀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간단하게 아침 조회를 하고 이주형 부장은 사동으로 들어갔다. 교도관 8년 차인 이주형은 교도소에서 이 부장으로 불린다. 본인의 직급은 8급(교사)이지만 직원이나 수용자들이 부르는 호칭은 부장이다. 기업체의 부장도 아닌데 왜 부장인지 자신도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다만 선배들이 그렇게 불렀고 자신도 8급 선배들을 부장 님이라고 불러왔다. 어느 순간부터 이유도 모른 체 부장이라는 호칭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근무하고 있었다.
똑같은 모양의 쇠창살이 죽 늘어선 시멘트 바닥의 복도를 지나 사동 담당실 문을 열었다. 야간 근무자가 의자를 뒤로 눕힌 채 부스스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자는 것처럼 보였지만, 주형의 담당실 문 여는 소리에 게슴츠레 눈을 뜨며 자신은 잠을 잔 게 아니라 피곤해서 눈만 감고 있었다는 듯 몽롱한 표정으로 주형을 올려다보았다. 눈밑으로 내려온 다크 서클이 야간 근무의 피로감이 어떤 것인지 말해주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 부장님 나오셨어요? 아우~ 야간근무가 피곤하긴 하네요."
"잠 못 자고 일하면 발암물질 유발한다고 하잖아요. 고생하셨습니다. 빨리 퇴근하세요."
"네, 아이고 허리야~ 이젠 허리까지 쑤시네. 야간근무 중 특이사항은 없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하세요. 저 먼저 들어갑니다."
주형의 동료 근무자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담당실을 나갔다. 피곤에 절어 축 처진 어깨와 까치집을 짓고 있는 뒷머리가 안쓰럽게 보였다.
주형은 담당실의 컴퓨터를 켰다. 야간 근무자 말대로 인수인계 사항에는 특이점이 없다고 적혀 있었다. 주형이 관리하는 사동에는 70여 명의 수용자가 있다.
살인, 강도, 강간, 사기... 다양한 범죄자들이 수용되어 있고 그들이 교도소에 들어오기 전 했던 일도 다양했다. 사업가, 정치인, 공무원, 노숙자... 이곳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머무는 곳도 없다.
주형도 또 다른 야간 근무자가 교대를 해주기 전까지 그들과 함께 갇혀 있어야 한다. 교도관들끼리 하는 말로 '반 징역' 산다고 한다. 교도소에 근무한 지도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 되었지만 주형은 아직도 그 생활이 쉽게 적응되지 않는다. 범죄자들처럼 그도 교도소라는 직장을 탈출하고 싶은 생각이 수없이 들지만 처, 자식 얼굴이 눈에 아른거려 매번 가슴속으로 삭이고 만다.
모니터의 인수인계 파일을 읽고 있는데 담당실 문이 열리고 사동 도우미 일명 '소지'라고 불리는 젊은 수용자가 들어와 그를 불렀다.
"부장님! 출근하셨어요?"
"그래. 도우미 몇 명 출역했어?"
"세 명 나왔습니다."
"일처리 하면서 다른 수용자들과 별거 아닌 걸로 엮여서 싸우지 말고 오늘도 고생해라"
"알겠습니다. 시키실 거 없으시면 가서 일하도록 하겠습니다."
"일 있으면 부를 게."
"네. 부장님. 수고하세요"
"너도 고생하고"
간단한 인사로 둘의 대화는 끝났다. 범죄자라고 다 위험해 보이진 않았다. 주형과 사동 도우미가 나누는 대화는 일반 회사에서 직원들이 나누는 대화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대화가 끝나자마자 책상 위의 전화벨이 울렸다.
[감사합니다. 3 동하 교사 이주형입니다.]
[이 부장, 나 팀장이야.]
[네. 계장님. 아침부터 웬일이세요?]
[다름 아니라 자네 사동으로 수용자 한 명이 들어가는데 그 수용자가 관심대상 수용자야. 관리에 신경 좀 써야 할 거야]
[네? 어떤 문제수인데요?]
[강간치사죄로 들어온 무기수인데. 자기 요구조건이 먹히지 않으면 자해와 소란을 피우는 놈이야. 폭력성도 있고]
[자해 요?]
[아킬레스건을 몇 번 잘랐어]
[그렇군요. 일단 잘 알겠습니다.]
관할 팀장이 문제수용자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아직 그 수용자를 대면하지 않았는데 아킬레스 건을 잘랐다는 말에 주형은 머리카락이 쭈뼛 서며 팔에 소름이 돋았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순간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짧지 않은 근무 기간 동안 그런 문제수를 몇 번은 겪어 봤기에 더욱 긴장이 됐다.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은 주형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또 올 것이 왔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교도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문제수를 상대하는 건 정말 하기 싫은 업무 중 하나였다. 그들을 상대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무기수나 장기수 일 때는 더욱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죄짓고 교도소에 들어온 것을 반성하고 수용생활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자해와 소란으로 규율을 위반하는 그들을 볼 때마다 가증스러웠다.
컴퓨터의 보라미 시스템에 접속해 팀장에게 전달받은 이름을 조회했다. 어이없게도 수형번호가 '1004' 번이었다. 주형은 모니터 속 전자 신분카드에 찍힌 '1004'라는 숫자를 보며 왜 이런 악마가 천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악마에게 천사라는 수번을 붙여준 게 혹시 사람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라고 생각해 봤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짙은 음영으로 되어있는 '최태식'이라는 이름을 클릭하자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의 얼굴 사진과 신상정보 창이 떴다. 빡빡 밀어버린 머리카락과 홀쭉하게 들어간 볼, 가늘게 찢어져 치켜뜨고 있는 눈에서 악의 기운이 느껴졌다. 죄명은 강간치사였다. 어떤 범죄를 벌였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건 개요를 클릭했다.
조금 있으면 신입으로 받아야 할 '1004번 최태식'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주형은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사건 개요]
- 최태식은 강도 전과 3범의 범죄 전력이 있는 자로서 2010년 5월 10일 23:00~24:00 경 피해자 최 00(28세)의 2층 투룸의 가스 배관을 타고 올라가 창문의 방범창을 뜯고 침입하여 물건을 절취하던 중 안방에서 자고 있는 최 00을 보자 욕정이 생겨 피해자의 입을 수건으로 틀어막고 손을 뒤로 묶은 뒤 하의와 속옷을 벗기고 자신의 바지와 팬티를 내린 후 성기를 삽입하여 강간을 저질렀다. 피해자가 거칠게 반항을 하자 주먹으로 머리를 수차례 강타하여 뇌출혈이 발생했으며 지인 김 00이 원룸을 방문했을 때 피해자는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로서 최태식은 법원으로부터 강간살인죄로 무기형을 선고받은 자이다.
사건 개요를 읽고 있는 주형의 눈에 힘이 들어가고 주먹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주형은 사건 내용을 읽을 때마다 자신이 그 현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살인사건 같은 강력 범죄의 경우 더욱 그랬다. 범죄 현장을 자신이 지켜보고 있고, 살인 현장의 피비린내가 코 끝을 자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떨 때는 자신이 잔혹한 범죄의 피해자가 된 것 같기도 했다.
1004번 최태식의 사건 개요를 읽으며 또 감정 이입이 되는지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입에 손수건이 물리고 손이 뒤로 묶인 채 겁탈당 했을 20대 후반의 젊은 여자의 발버둥 거림이 머릿속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졌다. 비참한 신음을 지르며 눈에서 흘렀을 피해자의 눈물도 보였다. 뇌출혈이 될 정도로 무자비하게 폭행했을 최태식의 주먹이 주형의 머리도 때리는 것 같았다. 작은 원룸에서 벌여졌을 강간과 살인의 상황이 떠올라 더 이상 모니터 속의 신분카드를 읽을 수 없었다.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두드렸다. '찰삭~ 찰칵~' 묵직한 소리가 아무도 없는 담당실에 울려 퍼졌다. 몇 대 더 때렸다. 그런 잔혹한 상상 속에서 빠져나오는 나름의 방식이었다. 지친 표정으로 의자를 뒤로 제쳤다. 출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기운이 쭉 빠졌다.
일은 해야 되겠다 싶어 집에서 내려온 블랙커피 한잔을 마셨다. 담당실 건너편의 굵은 쇠창살이 드리워진 두꺼운 철문이 희미하게 보였다. 범죄자들을 가두어 놓는 방안의 철문과 쇠창살이 반대로 자신을 가눠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진한 커피를 한 잔 더 들이켰다.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현재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데 사동 입구에서 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부장! 신입 왔어. 8방 독거실로 배정됐으니 준비하게"
"팀장님이 전화하셨던 그 수용자입니까?"
"팀장님한테 대충 얘기 들었지?"
"네."
"그럼. 고생하게.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팀 사무실로 trs(무전) 날리고"
"알겠습니다."
기결팀의 부팀장 격인 상담 주임이 그 문제수를 사동에 인계하고 돌아갔다.
왼쪽 발을 절뚝거리며 50대 초반의 말라 보이는 사람이 파란색 수의를 입고 주형이 있는 담당실 쪽으로 한 발 한 발 걸어오고 있었다.
"1004번 최태식 씨?"
"네~"
"이제부터는 이곳에서 생활하니까 다른 교도소에서 있었던 일은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저는 누가 건드리지만 않으면 생활 잘합니다."
"그래요? 그럼 잘해 봅시다. 짐 검사해서 허용되지 않는 물건은 폐기할 테니까 일단 방으로 들어가세요!"
"허용되지 않는 물건 이요? 제가 가지고 온 것은 다 주세요. 그전 교도소에서는 전부 사용했습니다."
"보안에 장애가 되는지 안되는지 확인한 후 넣어 줄 테니 일단 방에 들어가세요"
"......"
주형의 말에 1004번 최태식의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미간에 주름이 잡히고 가늘게 찢어진 눈이 매서운 야수의 눈빛이 되어 주형을 쳐다봤다.
최태식이 문제수라는 걸 알기에 주형은 바짝 긴장 됐다.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태연한 척 최태식의 눈을 바라봤다. 순간 정적이 흐르고 최태식이 먼저 입을 열었다.
"방금 말했지만 저는 안 건드리면 조용히 삽니다. 대신 그렇지 않으면 참지 못합니다. 일단 들어갈 테니 짐 검사해서 압수할 게 있으면 미리 얘기해 주십시오. 부장님!"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방으로 들어가세요. 1004 번은 독거 수용자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혼자 생활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둘 사이의 긴장감이 깨지지 않은 채 최태식은 8방 쪽으로 절뚝거리는 왼발을 옮겼다. 아킬레스건이 잘리면 걷지 못하는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최태식은 절둑거리는게 조금 불편할 뿐 걷는 데는 전혀 이상 없었다.
최태식이 방으로 들어가고 주형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경기는 이제 시작됐고 1회 초 탐색 전을 막 끝낸 기분이었다.
담당실 의자에 앉은 주형은 그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문제수를 몇 번 관리해 봤지만 그때마다 승부는 쉽게 나지 않았다. 힘들게 이기더라도 처절한 싸움으로 인해 심신이 너덜너덜 해지는 걸 느꼈다. 두 번 다시는 겪어 보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교도관이라는 일을 하고 있는 이상 언제든지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그 상황이 다시 찾아온 거였다.
주형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교도관 이미지처럼 강하고 기가 세지 못했다. 처음부터 교도관을 할 마음도 없었다. 행정직 공무원 준비 하면서 몇 년의 수험생활 동안 계속되는 낙방으로 지쳐 가고 있을 때 그나마 합격점수가 낮았던 교정직으로 눈을 돌렸고 운 좋게 합격해 지금까지 다니고 있었다.
어느새 교도관 8년 차에 나이도 30대 후반이 되었다. 결혼도 했고 집에는 와이프와 토끼 같은 아이가 셋이나 있었다. 그 아이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교도관 생활을 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평범한 체구에 평범한 얼굴, 누가 봐도 동사무소 공무원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주형의 직업이 교도관이라고 말하면, 교도관이라는 직업에 놀라고 이런 사람도 교도관을 한다는 것에 한번 더 놀랬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병약한 모습이었다. 힘센 친구들에게 자주 놀림 당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끝까지 아니라는 하는 오기와 무언가 몰입하면 끝을 보는 집요한 성격이 그의 어느 한 구석에 담겨 있었다. 어쩌면 약간의 꼰대 같은 기질이 그나마 잔혹한 범죄자들 사이에서 교도관이라는 일을 해오는데 도움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집요한 기질도 수용자와 기싸움으로 티격태격하고 나면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004번 최태식의 물품 검사를 끝내자 야간 근무자 교대 올 시간이 되었다.
주형은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일단 오늘은 아무 탈 없이 끝났구나 라는 안도의 숨을 쉬며 퇴근 준비를 서둘렀다.
업무 인계 하고 2층의 직원 샤워실로 올라갔다. 퇴근하기 전 주형이 항상 하는 일이었다. 그는 꼭 샤워를 하고 집으로 갔다.
따뜻한 물로 몸을 씻음으로써 교도소 안에 있는 동안 달라붙은 음침한 악귀들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주형은 종교는 없었지만 샤워 꼭지에서 나오는 물이 성수가 되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킨다고 믿었다. 자신만의 믿음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안을 수 없었다. 교도소의 잔혹한 악귀들이 자신을 따라와 아이들에게 옮겨 붙을 거라 여겼다.
비누 거품을 풍성하게 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닦았다. 제사장이 신성한 의식을 치르기 전 몸을 씻듯 주형도 몸을 씻었다. 그리곤 아침에 들어왔던 육중한 회색의 철문 사이로 빠져나갔다.
8방으로 들어온 1004번 최태식은 차디찬 마루 바닥에 털썩 주저 않았다.
'네놈이 한 번 해보자 이거지. 이 최태식이가 어떤 놈인지 네가 아직 모르는구먼. 너도 한번 겪어봐라 내가 어떤 놈인가'
혼잣말을 하며 마루 바닥 사이를 지나가던 작은 개미 한 마리를 엄지 손가락으로 짓이겼다.
얼굴엔 미소가 번졌다. 이주형을 괴롭히기 위한 생각이 떠오른 건지 개미 한 마리를 죽인 것에 대한 쾌감인지 모르겠지만 최태식은 웃고 있었다.
그리곤 바닥에 누웠다. 몇 평도 되지 않은 곳의 시멘트 벽만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자신도 자신을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야생과 같은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하게 구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대화하는 게 싫었고 남들이 자신을 간섭하는 것도 싫었다. 부모의 얼굴도 몰랐다. 고아원에서 설움과 배고픔을 안고 자랐다.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되었다고 누구를 탓하지도 않았다. 현실의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귀찮게 하는 것들을 처단하는 게 방법이라 고만 여겼다.
마룻바닥에 누워있던 최태식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왼쪽 바지를 걷어 올렸다. 발목에 날카로운 것으로 베인 몇 개의 흉터가 보였다. 손으로 그 흉터들을 쓰다듬었다. 흉터를 보는 그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직접 칼로 그었지만 타인에게 당한 것 같은 증오심이 담겨 있었다. 자신이 자해를 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주형과 첫 대면이 껄끄럽게 끝난 이후로 최태식은 아킬레스건에 몇 개의 흉터가 더 생길 거라는 걸 준비하는 의식을 치르고 있는 듯했다.
파란색 수의 가슴에 붙어있는 노란색 명찰을 내려다봤다. '1004'라고 적혀 있었다. 최태식이 피식 웃었다.
'미친 새끼들 수번이 1004라고? 천사처럼 사라는 거야, 뭐야!' 그제야 주형이 자신을 1004번이라고 부르는 게 떠올랐다.
우연찮게 '1004'라는 수번을 배정받게 된 최태식은 목안교도소에 있는 동안은 가슴에 천사를 안고 교도소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천사의 수번을 달고 있는 악마가 될 것인지 아니면 악마에서 천사가 될 것인지는 하늘만이 알 수 있었다.
주형은 다시 회색의 육중한 철문 앞에 섰다. 단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교도소의 모습이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정문 앞에 선 자신의 마음은 어제 출근할 때와는 전혀 달랐다. 자신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느껴졌다. 최태식과의 2회 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침 조회를 끝내고 교대 시간이 되었기에 많은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담당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비몽 사몽 잠에 취해 있어야 할 야간 근무자가 긴장된 표정으로 주형을 쳐다봤다. 그리곤 기다렸다는 듯이 말문을 열었다.
"이 부장님. 나오셨어요!"
짧게 말하는 목소리가 평상시와 사뭇 달랐다.
"고생하셨습니다. 어제는 별일 없었어요?"
주형도 긴장한 채 곧바로 대답했다.
"아이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8방 1004번 최태식 말입니다. 그 수용자가 자기 짐 속에 사용할 물건이 있는데 왜 바로 넣어주지 않느냐고 밤새 귀찮게 했습니다. 주간에 담당 부장님 출근하면 확인하라고 했는데도 당장 필요하다고 어찌나 힘들게 하던지. 몇 시간만 기다리라고 간신히 설득시켰습니다."
야간 근무자가 피곤에 찌든 표정으로 힘겹게 말했다.
"안 그래도 저를 찾을 줄 알았습니다."
"큰 골칫덩어리 하나 들어온 것 같습니다. 저야 4일에 한 번씩 보는데 부장님은 매일 최태식이 대면하려면 장난 아니겠는데요."
주형을 걱정해 주는 듯 야간 근무자가 말했다.
"제 일이니 할 수 없죠. 피곤하실 텐데 얼른 퇴근하세요."
"고생하세요. 저는 이만 들어가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최태식은 밤새 야간 근무자를 힘들게 했다. 오랜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직원들을 귀찮게 하고, 자신의 요구사항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최태식은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사소한 거로 귀찮게 하고 그게 통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자해와 소란을 할 것이다. 주형도 문제수들이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기에 2차전을 치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를 한다고 하지만 그것부터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전쟁을 치르기 전 잠깐의 여유를 느껴 보고 싶어 보온병의 블랙커피를 잔에 따랐다.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딩동~ 딩동~' 인터폰 벨소리가 울렸다. 소리와 동시에 8방의 버튼 불이 깜빡거렸다. 최태식이 있는 방이었다.
주형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여기며 마시려던 커피를 책상 위에 두고 용건을 물었다.
'8방, 인터폰 눌렀어요?'
'부장님! 저 1004번 최태식입니다.''
그가 찢어질 듯한 날카로운 목소리로 주형을 불렀다.
'알고 있습니다. 얘기하세요'
주형이 긴장됐지만 덤덤한 척 대꾸했다.
'제 물건 왜 안 넣어줍니까? 어젯밤에 필요한 물건이 없어서 힘들었잖아요? 빨리 넣어주세요'
'어제 분명히 말했잖아요. 보안에 위험한 물건인지 아닌지 확인을 하고 넣어준다고. 그리고 칫솔, 수건 등 당장 필요한 것은 넣어 주었잖아요.'
'알았으니까. 빨리 넣어주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태식은 막무가내 자신의 요구사항을 말했다.
'지금 넣어줄 테니. 짐 확인할 준비 하세요'
어차피 해야 할 거 더 피곤해지기 전에 마무리 지을 생각으로 주형이 사동 도우미를 불러 담당실 한쪽에 있는 짐 박스를 꺼내 최태식과 확인에 들어갔다.
"일단 이쪽으로 와보세요. 신체검사 후 방을 검사하고 넣어주겠습니다. 팔 벌리세요."
"......"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얘기하겠습니다.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니 규율에 맞춰 잘 생활 잘하시기 바랍니다."
"......"
"변형된 노트와 임의로 제작한 모포와 침낭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침낭을 뜯어서 만든 노끈은 위험한 물건으로 간주되어 폐기할 겁니다. 관에서 지급한 물건이나 본인이 구매한 물건도 임으로 개, 변조하면 징벌을 받을 수 있으니 앞으로 주의하세요"
"......"
말대꾸 할 것 같았던 최태식은 아무 말이 없었다. 살기어린 눈빛으로 도형을 바라보는 것으로 자신의 입장 표명을 했다. 최태식의 죽일듯한 눈빛에 주형이 움찔했으나 최대한 안그런척 티를 내지 않았다. 처음부터 밀리면 갈수록 힘들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돌아온 최태식은 마룻바닥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댔다.
'내가 만만하다 이거지!' 최태식은 혼자 웅얼거리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침과 함께 작은 커터칼 날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주형의 경고에 아무 말 없었던 이유는 입속에 커터칼 날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태식은 주형이 신체검사 할 줄 알고 칼날을 입속에 넣어두었다. 순간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손으로 잡기에도 작은 칼날을 정성스럽게 집어 들었다. 그리곤 왼쪽 바지를 걷고 아킬레스건을 쳐다봤다. 서너 개의 가늘게 늘어선 흉터 사이를 칼날로 그었다. 얇은 피부가 갈라졌다. 그 위를 한 번 더 그었다. 또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그렇게 계속 그었다. 최태식은 이를 악물었다. 괴물이라 그런지 고통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았다.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마루 바닥에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피는 많이 흐르지 않았다. 짧은 칼날 때문에 아킬레스건이 바로 잘리지 않았다. 끊임없이 자르는 작은 칼날이 더욱 고통스러울 텐데도 그는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최태식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자해를 해 외부병원에 입원 하게 되면 많은 인력이 동원되어야 하고 담당 근무자는 관리 소홀로 보안과장 등 윗사람들에게 질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그 점을 피하기 위해 다음에는 자신의 요구사항을 들어준다는 것을 그리고 자해를 하면 담당 근무자가 본 업무 이외의 휴식시간에 근무 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귀찮은 일이 생기고, 가장 큰 약점인 수용자가 칼날을 소지하게 된 경위와 그 책임에 대해 이주형이 징계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계속된 칼질에 살 속에 묻혀있던 아킬레스건이 드러났다. 여러번 잘려 나갔던 이킬레스건은 또 잘려 나갔다. 최태식은 피 묻은 손으로 담당실과 연결된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딩동~ 딩동~]
[8방, 왜 눌렀어요?]
주형의 목소리가 좁은 방안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나 좀 봅시다.]
최태식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전의 말투와 확연하게 달랐다. 조용한 저음이 주형을 더욱 긴장되게 만들었다.
[뭐라고요?]
주형의 목소리가 조금 떨려왔다.
[부장님~ 나 좀 보자고요!]
[무슨 일 때문인데요?]
[사고 쳤으니까. 오려면 오고 알아서 하쇼!]
최태식은 자기 할 말만 하고 누르고 있던 버튼에서 손을 뗐다.
주형은 올게 왔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빨리 온 것 같았다. 담당실에서 나와 8방으로 갔다. 복도를 걸어가는 짧은 시간에도 사고 쳤다는 말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8방 철문에 달린 쇠창살 사이로 최태식을 내려다봤다. 그는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1004번 사고 쳤다는 말이 무슨 말이에요?"
"아~ 씨발! 이거 안 보여?"
최태식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왼쪽 다리를 들어 보였다. 발목의 살이 잘려 피가 흐르고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주형이 소리쳤다. 목소리가 떨려왔다.
"왜! 내 몸뚱이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네가 뭔 상관이야!"
주형 보다 큰 소리로 최태식이 고함을 질렀다.
"자기 몸이라고 해도 교도소에 있는 동안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겁니다. 자해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씨발~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교도관이면 다야? 좋게 생활하려 했는데 네가 먼저 건들었잖아."
최태식 흥분한 목소리로 주형을 째려보며 말했다.
"건드리기는 내가 뭘 건드려. 나는 정당하게 업무 처리한 거밖에 없습니다."
주형도 지지 않겠다는 듯 소리쳤다.
"꺼져 너랑 말하기 싫으니까. 팀장 불러와. 씨발 꺼지라고! 확 니 얼굴도 그어 버리기 전에"
최태식이 소리를 지르며 자해한 커터칼 날을 들고 주형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진정해요"
주형이 순간 움찔하며 말했다.
"진정은 너나 해라 이 개새끼야!"
최태식은 흥분한 체로 주형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잘린 최태식의 아킬레스건을 본 주형은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약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꾹 참았지만 쉽지 않았다. 주형은 혼자 처리할 상황이 아니어서 통제실에 trs(무전)를 했다.
<통제실 3 동하 8방에서 수용자가 자해를 했습니다. 기동순찰팀 출동해 주세요! 기동순찰팀 3 동하로 출동해 주세요!>
<여기는 통제실입니다. 현재 3 동하 8방에서 자해 및 소란이 발생했으니 기동순찰 팀은 신속하게 출동 바랍니다. 3 동하 8방에서 소란이 발생했습니다. 기동순찰 팀은 신속하게 출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기동순찰! 접수했습니다. 출동하겠습니다.>
trs에서 긴박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몇 분 지나자 사동 입구에서 직원들의 발구름 소리가 주형의 귀에 들려왔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 부장. 자해라니? 무슨 일이야?"
crpt(기동순찰) 팀 김성균 주임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급하게 뛰어 왔는지 숨을 헐떡거렸다.
"김 주임님 8방 1004번 최태식이라는 수용자가 발목 아킬레스 건을 그었습니다. 어제 다른 교도소에서 이입 왔는데 오자마자 사고 치네요"
"아~ 그놈! 관심대상 수용자라 알고 있었는데 오자마자 그러네"
김성균 주임은 무도 특채로 들어온 강성 교도관이다. 그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스타일이었다. 그의 무지막지한 팔뚝과 덩치에 웬만한 문제수 들도 기를 펼 수 없었다.
주형은 김성균 주임을 볼 때마다 나도 저런 교도관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하지만 현실의 주형은 그저 만만한 교도관이었다. 김성균 주임은 강해서 수용자들과의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야! 최태식!"
성균은 자해 한 최태식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바로 소리 쳤다.
"넌 뭐야?"
최태식도 지지 않고 같이 소리 질렀다.
"너, 너라고?"
"그래. 이 새끼야!"
김성균 주임을 잘 알지 못하는 최태식은 욕까지 했다.
"이 사람 같지도 않은 새끼가 디질려고 환장을 했나!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까불어? 야! 최태식이 죽고 싶냐?"
최태식의 욕을 들은 성균의 목소리가 흥분의 절정에 다다랐다.
"이거 안 보여? 내가 또 자해하면 네가 책임져. 네가 열받게 해서 그런 거니까."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똘아이 새끼야. 네가 자해하는데 왜 내가 책임을 져 미친 새끼야!"
성균은 자해를 한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큰소리로 말했다.
"더 긋는다!"
"그어라 더 그어! 네 다리가 아프지 내 다리가 아프겠냐"
성균은 손에 피를 묻힌 채 자해하겠다고 위협하는 최태식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상대했다. 짝다리 짚고 서서 방문을 열고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에는 여유가 느껴지기 까지했다.
주형은 그 모습에 놀랍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직원이 수용자에게 욕을 하면 안 되는 것도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말 그대로 막무가내였다.
"최태식~ 다 그었으면 내가 들어간다!"
김성균 주임은 말을 끝내자마자 빛의 속도로 워커를 신은 채 최태식의 방으로 뛰어들었다.
'퍽!'
잽싸게 최태식의 손에 들려 있는 커터칼 날을 발로 차고 무릎으로 최태식의 목을 누르며 제압했다. 최태식의 '헉~ 헉~' 거리는 소리가 복도의 주형에게도 들렸다. 성균은 팔을 꺾고 허리에 차고 있던 수갑을 손에 채운 후 최태식을 복도로 끌고 나왔다. 그리곤 뒤늦게 뛰어온 crpt대원들과 함께 그를 보호실로 옮겼다.
직원들이 사라지자 사동이 고요해졌다. 다른 수용자들도 최태식이 끌려가는 걸 보고 기가 눌렸는지 웅성거리던 사동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주형은 담당실 의자에 앉았다. 매스껍던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최태식의 잘린 아킬레스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한동안 잠을 설칠 걸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문제수와의 돌발 상황이 끝나면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주형은 머릿속이 온통 그 기억으로 가득 차 버렸다. 다음 날 출근하기는 죽도록 싫었다. 김성균 주임 덕분에 마무리된 것 같았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최태식이 징벌 받고 또다시 주형의 사동에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입에선 또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고, 아침부터 최태식과의 2회전으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퇴근시간이 되었다. 어김없이 야간 근무자와 교대를 하고 퇴근 준비를 했다.
사물함에 놓여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사동근무자는 개인적인 통신 장비를 소지할 수 없기 때문에 점심 교대 이후 몇 시간 만에 만져보는 핸드폰이었다. 패턴을 풀자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주형의 형 도형에게 온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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