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굴.

따뜻한 살인.3 (효라빠 장편소설)

by 효라빠

주형이 사동 순찰을 돌고 있었다. 매일 수시로 하는 일이지만 항상 긴장감이 느껴졌다. 길게 뻗은 복도의 쇠창살 쳐진 방에 수용된 범죄자들이 아무 일 없이 생활하는지 관리, 감독하는 게 주된 업무다.

20개의 방, 70여 명의 사람이 하루 종일 지내는 곳이라 조용할 날이 없었다. 간혹 운동이나 접견을 나가기도 하지만 그들은 좁은 방 안에서 대부분의 일과를 보냈다. 범죄, 나이, 전과 등으로 분류심사해 방을 지정했다.

주형의 시선이 한 방 한 방 파란색 수의를 입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쇠창살 안에 있는 그들이 주형을 보고 인사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시선을 피하기도 했다. 주형과 그들은 같은 사람이지만 이곳에서는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부... 부장님..."

8명이 있는 대(大) 방에 젊어 보이는 수용자가 주변 눈치를 보며 주형을 불렀다.

"1800번 할 말 있어요?"

주형이 방 전체를 둘러보며 물었다. 방안의 다른 수용자들도 그를 쳐다봤다.

"저... 이 방에 못 있겠습니다. 입실 거부하고 싶습니다."

주변 눈치 보며 힘겹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무슨 말하는 거예요? 수용자는 지정해 준 거실에서 생활해야 하는 거 몰라요? 여기는 교도소입니다. 안됩니다."

주형이 단호하게 말했다. 교도소의 지정된 거실은 자신이 다른 방으로 옮기고 싶다고 옮길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정말로 이 방에서 못 있겠습니다. 딴 방으로 옮겨주세요. 부장님 부탁드릴게요."

주형의 설명에도 막무가내였다. 안된다는 말에 그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몇 번이고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데요?"

"......"

수용자는 아무 말하지 못하고 주변 눈치만 보고 있었다. 주형은 방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담당실로 갑시다."

"네."

그가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반대로 방에 있던 다른 수용자들의 표정은 굳어져 갔다.

"방에 무슨 일 있어?"

담당실로 불러낸 주형은 젊은 수용자가 긴장하고 있어 편하게 물었다.

"......"

"괜찮아, 있는 그대로 말해봐. 방 안에서 무슨 일 있었지?"

"그 방에 건달이 있는데 저를 매일 못살게 굽니다. 잠도 못 자게 하고, 빨래도 시킵니다. 심심하다고 때리기까지 합니다. 어쩔 땐 밥도 못 먹게 합니다. 그 방에서는 도저히 못 있겠습니다."

젊은 수용자가 눈물을 글썽였다.

"누가, 어떻게 했는지 여기 종이에 있는 그대로 적어. 네 이름은 뭐야?"

체구도 작고 어려 보이는 수용자가 울면서 말하자 주형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곽태성입니다."

"태성이? 집은 어디야?"

"제주도입니다."

"가족은 제주도에 있어?"

"아뇨."

태성의 목소리가 점점 가늘어졌다.

"그럼 가족들은 어디에 있어?"

"가족은 없습니다"

태성이 종이에 쓰던걸 멈추고 말했다.

"없다니?"

"어릴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엄마 얼굴도 기억나지 않아요."

태성이 흐느꼈다.

"그... 그래... 그럼 지금까지 혼자 살아왔어?"

"네."

"휴~"

주형은 나이 어린 소년수들이나 부모 없는 젊은 수용자들을 볼 때면 가슴 아팠다. 그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들어온 것은 아이들 만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잘못도 있다고 여겼다. 사회의 일원인 주형도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1800번 곽태성을 보고 있으려니 또 그런 마음이 들었다. 흉악한 범죄자들 사이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고생했을 걸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교도소는 뭘로 들어왔어?"

"절도요. 갈 데도 없고, 배도 고파 돈이 필요해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털었습니다."

염치없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형은 얼마 받았는데?"

"1년 6개월 받았습니다. 이제 만기가 얼마 안 남았습니다."

"아무리 돈이 없다고 그런 짓을 하면 되냐."

남의 물건을 훔쳤 다고 하는데도 배가 고파서 그랬다는 말에 불쌍하게 느껴졌다. 태성은 흰 종이에 그동안 있었던 일을 빼곡히 적었다. 삐뚤 삐뚤 한 글씨가 주형의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들었다.

"일단 입실 거부했으니 너도 조사 수용될 거야. 그리고 방안에 있던 건달과 너를 괴롭힌 사람들도 다 조사 수용한 후 조사관이 조사해 네 말이 맞으면 너는 훈방 처리 할 것이고, 너를 괴롭힌 사람들은 징벌을 먹이던지 검찰에 송치해 추가형을 띄우 던 지 할 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주형이 앞으로 일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줬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다른 방으로 갈 거니까. 거기 가서는 생활 잘해. 앞으로도 지켜볼 거야. 알겠어?"

"앞으로 착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

상담을 마무리하고 일 처리를 끝낸 주형은 담당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교도관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교도소는 죄를 짓는 사람들이 반성과 참회를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유를 박탈당함으로써 피해자들보다 아니 최소한 그만큼의 고통은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8년의 교도관 생활을 해온 주형은 처음 자신이 생각했던 교도소와 현실의 교도소가 너무 다르 다는 걸 깨닫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강간 등 지저분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수용자들이 나체의 여자 사진이 있는 야한 잡지를 공식적으로 구매해 보고, 잔혹하게 살인을 저지른 수용자가 방 안에서 과자와 제철 과일을 영치금으로 구매해 먹으며 희희낙락 티브이를 보며, 직원이 정당한 지시를 해도 듣지 않으며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해 근무자들을 힘들게 하는 것을 수시로 봤다.

소란과 난동을 피워도 강하게 처벌할 수도 없었다. 징벌실이라 해도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독방이 아니었다. 운동과 티브이 시청 등을 못할 뿐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일부 수용자들은 여러 사람들과 생활하는 방이 마음에 안 들면 독방을 가기 위해 일부러 징벌을 먹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자신이 교도관으로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탈한 마음에 주형은 감았던 눈을 떴다. 내가 열심히 한다고 뭐가 바뀔 수 있을까 싶었다. 나만 불쌍한 피해자가 되지 않으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줄 알았다. 하지만 답답한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거창하게 사회정의 실현은 아니더라도 월급 값어치는 해야 할 것 같았다. 10년이란 시간 동안 교도관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꽉 막힌 속을 뚫어 줄 사이다를 찾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찾을 수 없었다.

항상 그렇듯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순찰 돌기 위해 담당실 문을 열고 회색 콘크리트와 굵은 쇠창살로 둘러싸인 사동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겼다.


텅 빈 집 거실 소파 위에서 성균은 눈을 떴다. 어제도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바닥에는 빈 소주병 만이 뒹굴고 있었다. 한쪽 팔이 저려 몸이 뻐지근 했다. 일어나 움직이려 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멀뚱멀뚱 천장만 올려다봤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전날 취기 때문인지 입안이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지며 갈증이 일었다. 자신의 의지보다는 타오르는 목이 성균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주방 정수기에 입을 대고 물을 들이켰다. 마시는 물보다 흘리는 물이 더 많았다. 가슴팍이 축축이 젖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성균은 하루 병가를 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몇 해 전부터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했다. 삼, 사일 전 약이 떨어졌다. 병원에 가야 했다. 병원비와 약값도 박봉의 공무원 월급에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 교정본부에서 지원해 주는 직원 정신건강 프로그램으로 어느 정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강성 교도관으로 통하는 성균이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회사에서 아무도 몰랐다. 강철 같은 몸이라 정신도 강철 같을 거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성균은 남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말하지 못했다. 약한 모습을 다른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었다. 수용자 건 직원이건 간에.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병원으로 향했다. 푹 눌러쓴 모자가 시선을 가려서 인지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요즘 몸은 어떠세요?"

정신병원이 아니라 아담한 상담실처럼 차려진 진료실에서 노란색 카디건을 입고,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동네 할아버지 같아 보이는 정신과 의사가 성균을 바라보며 물었다. 털털한 그의 표정에 성균의 마음이 잠시나마 포근해졌다. 그 느낌이 좋아 성균은 항상 이 병원을 찾았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수용자들을 볼 때 생기 던 증오도 많이 가라앉았고, 확실히 약 먹으면 기분이 차분해집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약은 그전처럼 처방해 줄게요. 괜찮겠죠?"

의사는 검은색 뿔테 안경을 습관적으로 추켜올렸다. 반복적 행동에 자꾸만 그쪽으로 신경이 쓰였지만 이상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의사는 똑똑하고 완벽한 사람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런 모습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저... 그런데 약은 계속 먹어야 하나요? 이제 많이 좋아진 거 같은데..."

회사에 하루 병가 냈다고 제출해야 할 서류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병원을 수시로 다니는 게 귀찮게 느껴졌던 성균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직은 더 먹어야 합니다. 성균 씨는 심한 편은 아니지만, 우울감이나 기타 공황장애가 심한 분들이 약을 몇 달 복용한 후 상태가 호전돼 본인들 마음대로 약을 끊었다가 더 심한 우울감이 들어 안 좋은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증상이 호전된 것 같아도 당분간은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게 좋습니다."

성균의 눈을 쳐다보며 할아버지 의사는 여전히 검은색 뿔테 안경을 추켜올렸다.

"알겠습니다. 선생님이 하라면 해야죠."

성균이 씩 웃으며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약 먹으면서도 심적으로 불안하거나 우울감이 들면 언제든지 다시 오세요. 이 병은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우리가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는 거와 똑같은 거예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특별히 더 할 말이 없었던 성균은 고개 꾸벅 숙이며 인사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손목의 시계를 봤다. 진료를 하고 약을 타고 나도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오랜만의 평일 낮 시간이라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집으로 바로 가기엔 봄날의 날씨가 너무 좋았다. 병원 입구에 우두커니 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모두 바쁘게 움직였다. 갈 곳이 없는 자신과는 달라 보였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손안에 들어왔다. 바람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다.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바람이 손 안에서 머물렀다. 얼마 전 헤어진 여자 친구가 떠올랐다. 그녀는 성균과 함께 할 때면 항상 그의 손을 살포시 잡아 주었다. 이제는 부드러웠고 따스했던 그녀 손의 감촉을 느낄 수 없다는 게 가슴 한편을 허전하게 만들었다. 오래 사귄 여자 친구였다.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부터 감정조절이 잘 안 되는 성균에게 실망하고 그를 떠나가 버렸다.

여자 친구와 다툴 때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었지만 교도관이어서 감정조절을 못하고 흥분하냐는 말을 들으면 화를 걷잡을 수 없었다.

교도관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지금까지 일해온 성균에게 그것 만큼 모욕적인 말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해버렸다. 그녀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단 한 번이었지만 그건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 뒤 헤어지게 되었고 본인도 심각성을 느껴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어느 정도 심적 안정이 되고 이제는 성균이 그녀의 손을 잡아 줄 자신이 있었는데 사랑했던 그녀가 이제는 옆에 없었다.

병원 한쪽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차 유리창에 복잡하게 꽂힌 전단지가 마음을 더 심란하게 만들었다. 와이퍼를 올리자 바람을 맞으며 바닥에 떨어졌다. 뒤따라 오던 차들이 무심히 밟고 지나갔다. 헬스장 전단지속 몸짱 아가씨가 아스팔트와 한 몸이 되어 사라져 갔다.

혼자 살고 있는 아파트 현관문 앞에는 엄마가 두고 간 반찬 통이 놓여있었다. 나이가 40을 넘어가면서 그는 독립했다. 집에서는 자꾸 결혼하라고 했지만 여자 친구와 헤어진 후로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성균은 혼자 살고 있었다. 병원에서 처방받아온 약을 빈 속에 털어 넣고 다시 소파에 누웠다. 약 속에 안정제가 들어있는지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휴대폰에 설정해 놓은 알람이 울렸다. 많은 시간 잠을 잤지만 정신은 더 몽롱했다. 정신 차리기 위해 얼굴을 차가운 물로 씻고 출근을 서둘렀다.

아침부터 수용자들이 사동에서 작업장으로 나가는 개방이 있기 때문에 늦으면 안 됐다. 몇 백 병의 수용자가 한꺼번에 이동하기 때문에 개방과 폐방은 교도소에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업무였다.

아침 개방을 끝내고 팀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감사합니다. 기동순찰팀 교위 김성균입니다.]

[주임님 안녕하세요. 3 동하 교사 이주형입니다.]

[어~ 이 부장 아침부터 웬 전화야?]

성균이 놀라는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저번에 최태식이 건 도와주셔서 고맙다고 전화드렸습니다.]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래.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인데. 그놈 외부병원 치료 마치고 징벌 종료되면 자네 사동으로 다시 갈 수 있어. 그때는 확실히 잡아. 그런 놈들한테 밀리면 안 돼. 한번 코 걸리면 끝까지 피곤해. 알지?]

[잘 알죠. 그때도 주임님만 믿겠습니다. 하하]

농담이 아니었다. 성격상 수용자에게 대차게 하지 못하는 주형은 성균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소에 코뚜레를 하듯 코 걸린다는 말은 다른 사람에게 약점을 잡혔다는 표현으로 교도소 안에서 많이 쓰였다. 최태식에게 코 걸리지 말라는 성균의 조언에 주형은 다시금 긴장이 됐다.

[내가 하는 일이 그런 일인데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

crpt팀(기동순찰팀)에 몸담고 있는 성균은 주형의 말에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주임님, 다름 아니라 한번 더 부탁드릴 게 있는데 괜찮을 까요? 자꾸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뭔데 그래.]

[다름 아니라. 제 사동에 건달이 몇 명 있는데 그 방에서 무슨 장난을 치는 것 같습니다.]

[장난? 무슨 장난?]

조직이 있는 방이라는 말에 성균이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어제 곽태성이 방에서 못 있겠다고 입실 거부 했습니다. 자술서 내용을 보니 방에서 건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그들이 발효 요구르트와 과일을 이용해 술을 제조해 마셨답니다. 거기다 의사에게 처방받은 정신과 약을 복용하지 않고 방 사람들에게 판매도 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이 새끼들 정신이 없구만. 그 방 탈탈 털어야겠는데. 혹시 그 조직 목안 사거리파 애들 아냐?]

성균이 대충 누군지 알겠다는 듯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맞아요. 그놈들입니다.]

[그중에 한놈 저번에도 추가로 징역형을 1년 더 받았는데 지금까지 그러고 있나 보네. 안 되겠다. 한번 더 혼내 줘야지. 알았어 우리 팀에서 정리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팀장님에게 보고하고 검방 갈 테니까. 그놈들 눈치 못 채게 그냥 놔둬]

[주임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성균은 전화를 끊었다. 출근만 하면 힘이 펄펄 났다. 정신과 병원에서 지나가던 사람들만 멍하니 바라보던 그와 같은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목소리부터 달랐다.

성균은 교도소를 교도소로 생각하지 않는 범죄자들을 처단한다는 설렘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곽태성이 주형을 따라 담당실로 면담 가고 방안에 있던 수용자들은 긴장한 체 머리를 맞댔다. 목안 사거리파 행동대장 출신 이대현이 모든 일을 꾸미고 있었다. 그는 전에도 같은 방에 있던 수용자를 폭행해 추가형 1년을 받았다. 성균이 말하던 그 수용자였다. 이대현은 성균에게 묵은 감정이 많았지만 교도소 안이라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참고 있었다. 앞에서는 질서 지키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복수하기 위에 칼을 갈고 있었다. 빨리 출소해 유흥과 도박, 섹스 같은 걸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마다 성균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사동 도우미를 통해 들은 바로 곽태성이 바로 조사 수용됐다고 하자 꼬투리가 잡히지 않을까 긴장 됐다.

"형님! 그놈이 다 불어 버리면 어떡하죠? 그럼 일이 커질 텐데요."

이대현 밑에서 똘만이 역할을 하는 방회정이 말했다. 방회정은 정식 건달은 아니었다. 일명 건달 추종자라고 불리며 건달을 형님으로 모시며 폼만 잡고 다니는 부류였다. 건달도 아니면서 말끝마다 무조건 '형님! 형님!'이라는 호칭을 붙였다. 어쩔 땐 말보다 '형님!'이 더 많이 나올 때도 있었다.

"걱정하지 마. 그 새끼는 간이 작아서 다 불지 못할 거다. 나한테 겁먹고 있어서 사실대로 말하면 지 목이 온전치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대현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험악한 인상이 더 날카롭게 보였다. 입고 있는 옷밖으로 살이 보이는 곳은 다 문신이었다. 보이진 않지만 옷 속에도 다 문신일 것이다. 한 마디로 손바닥, 발바닥 그리고 얼굴 빼고 전부가 문신이었다. 곰처럼 큰 덩치와 문신만 보더라도 보통 상대가 아니었다.

성균도 그들을 관리하기 쉽지 않았다. 정당하게 지시하면 앞에서는 말을 잘 듣는 척하면서 뒤로는 호박씨를 까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을 절대 봐주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수용자보다 더욱 엄격하게 관리했다.

"맞습니다 형님. 곽태성이 형님을 만만하게 보지는 못할 겁니다 형님."

방회정이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대현의 어깨를 주물렀다. 머리를 빡빡 밀어 버린 그의 뒤통수엔 어디서 맞아 생겼는지 모를 땜통이 나 있었다. 대현의 말에 '형님! 형님!' 하면서 머리를 아니 허리를 수그릴 때마다 동전 두께만 한 땜통도 같이 올라갔다 내려왔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저금통이었다. 꼭 저금통 꼭대기의 동전 구멍만 한 크기였기 때문이었다.

"너희들 조사받게 되면 입 잘 다물고 있어. 알았어? 우리 계획이 잘못 나가면. 좆같은 징역 더 살 수도 있어. 씨발~ 지금도 빨리 나가 떡 치고 싶어 죽겠는데. 나는 더 못 참는다. 만일 잘못되면 너희들도 죽을 각오 해!"

대현이 동생들을 쳐다보며 눈에 힘을 주었다. 그들의 대화에는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듯했다. 단순히 곽태성을 괴롭히는 것 치고는 그들의 행동이 너무 진지했다.

"네 형님! 그런데 crpt 김성균 주임이 냄새를 맡으면 어떡하죠. 그 새끼 저승사자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형님도 그놈 때문에 추가형 받았잖습니까?"

방회정이 긴장된 얼굴로 대현을 올려다보면 물었다.

"나도 그게 신경 쓰인다. 곽태성이 입실 거부 하기 전에 계획대로 일을 처리했어야 했는데. 복잡하게 됐어. 야! 조익현이 밖에 애들한테 지시한 건 어떻게 됐어? 준비 잘되고 있어?"

대현이 방회정 옆에서 말을 듣고 있던 다른 건달을 쳐다보며 물었다.

"네. 형님! 명령만 내려 주시면 바로 실행하게 준비해 놨습니다."

목안 사거리파 행동대원 조익현이 머리를 조아리며 답했다.

"어떤 애들로 준비했어? 우리 쪽 애들은 아니지? "

"네. 형님. 이쪽 생활한 적은 없습니다. 지시한 대로 계보에 없는 놈입니다. 만약에 붙잡혀도 경찰에서 우리와 끈을 역지는 못할 겁니다."

조익현이 대현의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칼 쓰는 놈이냐?"

"네. 형님! 별명이 횟집 사장입니다. 사시미 하나는 잘 씁니다. 작년에 부산 오성파 부두복 김대복을 작업했던 놈이 그놈입니다."

"그래? 그때 그놈이라면 믿을만하겠군."

"네. 형님.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이놈은 혼자서 움직입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해. 그때 오성파 부두목 사건 때는 건달이었지만 이번엔 교도관이야. 교도관이 칼에 맞아 살해됐다면 일이 조용히 끝나지 않을 거야. 절대 눈에 안 뛰게 정리해. 단순 사고인 거처럼."

이대현이 조용히 조익현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저 그렇게 머리 안 돌아가는 놈 아닙니다. 횟집 사장 이란 놈은 진짜 프롭니다. 칼빵을 놔도 전문가처럼 보이지 않게 합니다. 나중에 수사기관에서 확인을 하더라도 우발적인 상황인 것처럼 작업하기 때문에 전혀 의심받지 않을 겁니다. 작업 후에는 조용히 중국으로 밀항하도록 지시했습니다. 돈만 전달해 주면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저만 믿어 주십시오. 형님."

"그래. 너만 믿겠다. 오늘 접견 예약되어 있지?"

"네. 형님."

"그럼 작업 시작하라 그래. 그놈이 명줄이 얼마나 긴지 한번 보자. 나를 징역 더 살게 만든 대가는 치러야지"

대현이 말을 맺으며 비장한 표정으로 조익현을 쳐다봤다.

조익현이 접견 나가자마자 사동 복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벅저벅 군화 소리 같은 여러 명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지시 내리던 목안 사거리파 행동대장 김대현이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방에 있는 사람들 전부 동작 그만! 그대로 문 열고 나와! "

crpt 대원들을 데리고 검방(거실검사) 온 성균의 목소리였다. 중저음의 단호한 지시에 김대현을 포함한 방안의 수용자들이 바짝 긴장했다.

"주... 주임님~ 뭐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방금 전까지 대현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던 방회정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비밀 계획이 새어 나가지 않았나 하는 불안감에 얼굴이 굳어졌다.

"나오라면 나올 것이지 뭔 말들이 그리 많아! 너 어디서 생활했어?"

성균이 고함을 지르며 방회정을 쳐다봤다.

"생활은 않고... 그냥 형님들 좀 모시고 있습니다."

방회정이 대현의 눈치를 살피며 우물쭈물했다.

"야! 모시긴 뭘 모셔 인마! 너네 부모님이나 그렇게 모셔라! 니 옆에 노란 명찰 달고 있는 놈을 모시냐?"

성균이 대현을 쳐다보며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

"......"

대현은 속에서 피가 끓었지만 아무 대답 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복수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거실 검사가 끝나고 방에 있던 목안 사거리파 행동대장 이대현과 접견을 갔다 온 행동대원 조익현 그리고 추종자 방회정이 곽태성을 괴롭힌 것으로 일단 조사 수용됐다. 방안에서는 특별히 위험한 물건은 나오지 않았다. 대현은 그들의 계획이 아직 발각되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조사 수용으로 독방에 들어가게 된 대현은 다시 한번 성균의 복수를 위해 이를 갈았다.

성균이 그들의 방에 검방 오기 불과 몇 분 전 조익현이 접견 간 것은 이번에는 하늘이 자신을 돕는듯했다. 이제 은밀하게 준비했던 계획이 실행될 거라고 대현은 믿었다. 저승사자가 진짜 저승사자를 만나로 곧 하늘로 올라가겠구나라고 생각하자 비열한 웃음이 대현의 얼굴을 가득 채웠다.

곽태성은 피해자였지만 그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7일 동안 조사방에 수용되었다. 조사가 끝나고 곽태성은 다시 주형의 사동으로 돌아왔다. 그를 괴롭히던 패거리들은 폭행 혐의가 인정돼 징벌을 받고 독방으로 전방 됐다. 일이 잘 해결돼 곽태성의 얼굴이 좋아질 줄 알았는데 다시 돌아온 그의 표정은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곽태성~"

"네. 부장님."

"사건 마무리 됐는데 얼굴 표정이 왜 그래?"

"그게... "

"또 문제 있어?"

"저..."

곽태성이 시원하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말을 얼버무렸다.

"할 말 있으면 빨리해 사람 속 터지게 하지 말고"

주형이 답답하다는 듯 다그쳤다.

"부장님. 이 말 안 하려니 죄책감 들어 못 있겠습니다."

"무슨 말인데 죄책감까지 들어?"

"그 방에서 저를 괴롭힌 거 말고도 다른 일을 벌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목안 사거리파 행동대장 이대현이 김성균 주임을 가만 두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작업한다고 했습니다."

"작업? 그 말 사실이야?"

주형이 당황하며 태성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제가 조사방 다녀온 게 1주일 됐으니 지금 쯤이면 밖에서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는데요."

"알았어. 말해줘서 고마워. 이 사실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 알았지?"

"네. 부장님."

주형은 태성과 면담을 끝내고 기동순찰팀 사무실로 성균을 찾아갔다.


"주임님, 저랑 커피 한잔 하실래요?"

"커피? 커피는 여자랑 마셔야지 왜 나랑 마셔. 하하"

차 한잔 하자는 주형의 말에 성균이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주형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저번에 제 사동에서 주임님이 정리하신 조직들 있잖습니까?"

"이대현하고 그 똘만이들 말해? 징역이 징역인지 모르는 놈들은 가만 두면 안되지."

"그때 피해자였던 곽태성이 조사 끝나고 다시 제 사동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말을 하더라고요."

"이상한 말?"

성균이 농담을 멈추고 진지한 눈빛으로 주형을 바라봤다.

"곽태성 말로는 이대현이 복수하기 위해 밖의 동생들에게 작업을 지시했다고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작업인지 모르겠지만 무슨 꿍꿍이가 있는 듯합니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곽태성은 단지 옆에서 말하는 걸 들었다고만 해서 조사실에 인계해 이대현을 조사하기도 애매해 주임님께 먼저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대현이 조사받을 때도 폭행건과 사제 술 제작 말고는 다른 사건은 없는 걸로 조사가 끝났거든요. 다시 조사한다고 해도 밝혀내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주임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난 또 뭐라고~ 내가 일은 열심히 했나 보네. 교도관 하면서 그런 협박 안 들으면 일을 제대로 한 게 아니지 안 그래? 걱정하지 마 그런 비곗덩어리 들은 한 트럭을 가져와도 한 주먹이면 끝이니까. 그 말하려고 일부러 사무실까지 들른 거야? 김 부장 교도관 하려면 배짱을 더 키워야겠어. 하하"


심각해 보이는 주형의 말을 듣고 성균은 한 귀로 흘려버렸다. 10여 년 근무하면서 '복수하겠다, 나가서 보자' 등 협박은 수없이 들었다. 출소 후 죽이겠다며 외정문에서 기다렸던 수용자도 있었다. 그때도 좋게 해결해서 돌려보냈다. 한 또라이는 쇠파이프 들고 설치긴 했지만 바로 제압해 경찰에 인계했다. 그래서인지 주형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번엔 좀 다른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 조심하시는 게..."

"걱정 안 해도 돼. 자~ 이 부장은 배짱 좀 키우고 알았지? 하하"

"......"

성균과 대화 후 주형은 자신이 예민한 것 같기도 했다.

사동으로 돌아온 주형은 성균의 당당한 모습이 멋져 보였다. 만약 자신에게도 비슷한 일이 생기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질문을 해봤다. 바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교도관이라는 직업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인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일을 해오며 이런 고민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적지 않은 나이에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자신도 없었다.

집에 있는 와이프와 아이들을 생각하면 잘릴 걱정 없이 직장 생활할 수 있는 것으로도 감사했다. 와이프가 어린이 집 보조 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세 아이의 학원비며 기타 생활비는 주형이 돈을 벌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었다. 자신의 성격과 직업과의 관계는 가족 생각하며 넘겨 버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매달 날아오는 카드 고지서는 교도관으로서 겪는 고민과 갈등을 누르는 신통한 약이었다.

처음 입사해 교도관 제복을 입고 출근할 때는 죄짓고 들어온 수용자를 교정교화하는 사회의 주춧돌이 된다는 마음으로 일했다. 막상 해보니 머리가 굳어진 성인을 교정교화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을 시작하고 일이 마음처럼 되지 않자 몇 년 동안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때 퇴직 얼마 남지 않은 선배가 해준 조언이 있었다.

'부모 말도 안 듣는 놈들인데 무슨 말을 듣겠냐! 거창하게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처자식 먹여 살리는 직장인이라고 생각해 그러면 속 편해. 그러다 나중에 노하우가 생기면 정말 관심 있는 수용자 한, 두 명이나 챙겨서 관리하는 거지. 교도관이라고 해서 사동의 많은 수용자를 교정교화 한다는 건 천국에서도 안될 거야.'

그 말을 들었을 때 주형은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자신은 그런 교도관이 되고 싶지 않았다. 수용자 교정교화는 못하더라도 흔히 말하는 월급 루팡은 되기 싫었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이 그런 교도관이 되어 가고 있었다.

성균을 보면서 지금 자신의 모습을 돌아봤다. 반성이 되기도 하고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 처럼 강하게 할 수도 없어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같은 사람인데 비슷한 상황을 누구는 당당하게 대처하고, 누구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어떤 차이일지 고민이 되었다.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악인과 선인으로 나뉜다고 어느 철학자가 말한 것처럼, 태어날 때부터 강하고 강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인지, 김성균 주임은 강하고 자신은 강하지 않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심란해졌다. 자신도 그런 강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고, 인간의 모습이 후천적으로도 바뀌듯 성격도 바뀔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됐다. 그렇지만 여전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성균은 평소와 다름없이 퇴근했다. 주형의 말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수용자가 복수한다는 협박은 한두 번 듣는 게 아니었다. 설령 복수를 하러 온다고 해도 유도와 여러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라 충분히 제압할 거라 믿었다. 차의 시동을 켜고 핸들을 잡았지만 이상하게 액셀이 밟히지 않았다. 기다리는 이 없는 빈 집으로 가기 싫었다. 사랑했던 윤하가 떠올랐다. 핸드폰을 열어 카톡을 확인했다. 프로필 사진의 그녀 모습은 헤어지기 전 그대로였다. 여자 친구에게 감정조절 하지 못해 헤어졌지만 성균은 그녀를 잊지 못했다. 윤하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그런 바보 같은 행동에 사랑하는 그녀를 더 이상 아껴줄 수 없다는 마음이 들어 성균이 먼저 이별을 통보했다. 잘 지내냐고 몇 번이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다는 걸 처음 알았다. 깊은 한숨을 몰아 쉬고 차의 액셀을 밟았다. 성균이 도착한 곳은 집이 아니라 작은 식당이었다. 같이 공무원 공부를 했던 선배가 운영하는 가게였다. 선배는 몇 번의 낙방으로 공부를 접고 장사를 택했다. 성균이 집에서 혼밥 하기 싫을 때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고 가던 단골 집이었다. 오늘도 선배를 벗 삼아 술 한잔 하고 싶었다.


"형, 장사 잘돼?"

성균이 가게에 들어섰다. 저녁 시간이라 몇 안 되는 테이블이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왔냐!"

현진이 힐끔 쳐다보더니 바로 고개를 돌렸다. 성균까지 챙길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나 어디 앉으면 돼?"

"아무 데나 앉아. 뭐 줘? 삼겹살? 바쁘니까 술은 알아서 가져다 먹어"

현진이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바쁜데 괜히 왔나 싶기도 했다.

"오케이. 나는 신경 쓰지 마"

"신경 쓸 틈도 없다. 손님 좀 빠지면 올게 삼겹살에 한잔하고 있어. 오늘따라 손님이 많네."

현진이 삼겹살과 밑반찬을 놓고 서둘러 다른 테이블로 갔다.

"알았어. 일해"

성균이 소주를 따랐다. 술이 잔을 넘쳐 테이블을 적셨다. 혼자 앉아 있는 성균은 혼이 나진 사람처럼 보였다.

정신과 다니면서 우울감이 많이 사라졌지만 윤하 생각이 날 때는 약으로 되지 않았다. 술을 마신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취기 오르면 참는 게 더 힘들었다. 그래도 술을 끊을 수 없었다.

혼자 울기도 하고 미친 듯이 소리도 질러 봤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리움만 더 쌓였다. 세상의 절반이 남자고 절반이 여자듯 윤하가 없어도 다른 여자면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성균의 마음은 생각과 달랐다. 세상의 절반이 여자라고 하지만 윤하라는 여자는 윤하뿐이었다. 헤어진 후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늦어 있었다. 다시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이 매일 성균의 가슴에서 타올랐지만 행동으로 실행할 수 없었다. 살인자, 무기수, 조직, 흉악한 범죄자들 앞에서도 약한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윤하 생각만 하면 바윗돌 같던 마음이 솜사탕으로 변해 버렸다. 알다 가도 모를 일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현진한테는 말했다. 현진의 말에 의하면 그게 사랑이라고 했다. 성균은 반박하지 못했다. 그 사랑을 다시 찾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실수했을 때 그녀는 한 번의 기회를 준다고 했지만 성균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윤하가 눈물 흘리며 잡았을 때도 성균은 뿌리쳤다. 그때는 정신과 치료받기 전이라 감정적으로 온전치 않아 그랬을 수도 있었다.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성균은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사랑스러운 윤하의 손을 살포시 잡고 한걸을 한걸음 발을 맞추던 그때로......


혼자 삼키던 소주가 어느새 빈 병이 되었다. 파란색 소주병을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빛에 반사된 유리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붉게 변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한숨이 새어 나왔다.

'왜 이렇게 힘들게 사냐?'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괴로운 현실을 던져 버리고 싶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야 인마! 벌써 한 병 다 마신 거야?"

홀에 손님이 빠지자 현진이 성균의 테이블에 앉으며 말했다.

"왔어? 이제 한가해?"

"보시다시피. 빨리도 마셨네. 요즘 무슨 일 있어? 왜 자꾸 술타령이야? 죽기 살기로 운동만 하던 놈이 이러고 다니니까 불안하잖아. 요즘은 운동 안 해?"

현진이 걱정된다는 듯 냉장고의 소주병을 들고 오며 물었다.

"그나마 운동이라도 하니까 버티는 거지. 안 그럼 여기 앉자 있지도 못할 거야. 딴 세상에 있을 수도"

성균의 목소리는 힘이 빠져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무슨 일 있지? 교도소에서 누가 너 괴롭히냐? 직원은 아닐 테고 도둑놈들이 널 못살게 구냐?"

"형~ 나 몰라?"

"하긴. 천하의 김성균이 어디 가서 기로 밀릴 사람은 아니지."

"맞네. 윤하 씨 때문이지?"

"흠..."

성균이 애매하다는 듯 헛기침만 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러니까 뭐 하러 헤어지자고 그래. 너한테 그 얘기 듣고 참 멍청하다 싶었다. 여자 친구가 용서해 준다고 하는데도 용서받기 싫다고 하는 놈은 세상천지에 너밖에 없을 거다. 나 같음 업고 다닐 텐데. 아이고 바보야~"

현진이 한심하다는 듯 꾸짖으며 술을 마시고 오이 조각을 베어 물었다. 아삭 거리는 소리가 테이블 분위기와 다르게 청량하게 들렸다.

"형~"

"왜?"

"저... 윤하한테 다시 연락해 보면 어떨까?"

"답이 나오네. 그걸로 지금까지 고민하고 있었던 거야? 미치겠다. 하면 되지 뭘 그렇게 망설여."

"연락이 안 올까 봐 도저히 못하겠어"

성균도 술이 가득 차있는 소주잔을 입으로 가지고 갔다. 술 때문이지 마음 탓인지 어두운 표정이 더 찡그려졌다. 그의 시선은 현진의 입술에 머물러 있었다.

"해봐. 안 오면 그때 가서 깨끗이 잊어버려. 뭐가 고민이야?"

"그러면 윤하랑 정말 끝이잖아. 말이 쉽지 형은 내 마음 모를 거야"

성균의 목소리가 커졌다. 현진이 자기 일 아니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아 속에서 짜증이 올라왔다.

"알았으니까. 흥분하지 말고 연락해 봐. 20대 애도 아니고 김성균이 참 순수하다 순수해. 부럽네 아직도 그런 감정도 있고. 나도 안정적인 공무원을 했어야 했는데, 하루 종일 고기 굽는 냄새 맡으며 서빙해 봐 여자 생각이 나는지. 네가 배가 불렀다."

현진이 살짝 비꿨다.

"알았어. 알았다고. 형 믿고 카톡 해 볼게."

현진의 신세 한탄에 성균이 그나마 정신이 들었다.

성균이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 열고 윤하를 찾았다. 뭐라고 보내야 할지 망설이다 카톡을 보냈다. 고민해서 보낸 건 '뭐 해?'라는 단 두 글자였다.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현진과 계속 술을 마셨지만 윤하는 읽지 않았다.

"답장 왔어?"

현진도 궁금한 듯 물었다.

"아직. 읽지도 않았어. 젠장"

"지금 수업시간 아냐?"

"맞아. 지금 마지막 pt 하고 있겠다."

성균이 허탈한 표정으로 답했다. 윤하는 헬스 트레이너를 하고 있었다. 예전 사귈 때는 수업 중에도 짧은 답장이 오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나 이제 일어날게.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가서 푹 자. 잘 될 거야. 윤하 씨도 너를 사랑했잖아. "

"고마워. 잘되겠지. 형 가게 정리해야 하는데 내가 너무 오래 있었던 것 같네."

"조심히 들어가, 형 일한다."

성균이 마지막 잔을 비우고 일어났다. 앉아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집에 가려고 식당을 나오자 다리가 휘청거렸다. 머리도 어지러워 택시를 타려 했지만 쉽게 잡히지 않았다. 포기하고 집으로 걸었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성균의 뒤를 멀찍이 따라가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푹 눌러쓴 모자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모자 창 사이로 비치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늦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길거리엔 사람이 없었다. 성균은 주머니의 핸드폰을 꺼냈다. 기다리던 윤하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 괜한 짓을 했나 싶어 마음이 심란했다. 술은 기분 전환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갑자기 손이 떨려왔다. 스마트폰 진동이었다. 윤하였다.

[오빠, 연락했네?]

성균은 자리에 멈춰 섰다. 인도 한복판에서 스마트폰 액정 뚫어져라 쳐다봤다.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윤하에게 답장이 와 기분은 좋았다. 윤하도 자기처럼 연락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시작하자고 보내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잘 지내?' 고민 고민하다 몇 자 적었다. 전송 버튼을 누르려는데 누군가 성균을 불렀다.


"김성균 주임님!"

낯선 목소리가 성균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스마트폰만 보고 있던 성균은 대답이 없었다. 굵직한 목소리의 주인은 성균을 한번 더 불렀다.

"김성균 주임님 맞으시죠?"

성균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교도소 밖에서 자신을 '주임'이라는 호칭으로 부를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성균이 뒤를 돌아봤다. 주변이 어두웠고 푹 눌러쓴 모자 때문에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저 불렀어요?"

"목안교도소에서 근무하시는 김성균 주임님 이 시죠?"

"그런데... 저 아세요?"

성균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 굵직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뒤로 돌리고 있던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의 손엔 신문지로 둘둘 말린 막대기 같은 게 들려 있었다. 앞에 서있던 성균에게 갑자기 그가 달려들었다. 도발에 잘 지내 냐고 전송 버턴을 누르려던 성균의 손에서 스마트폰이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가 한 손으로 성균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신문지에 싸인 물건을 잡고 있는 다른 손은 성균의 복부를 향했다. 성균이 그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가 더 빨랐다. 순식간에 들어오는 움직임이 성균의 눈에는 슬로 모션의 영상처럼 느껴졌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무언가 자신에게 향하고 있고 그게 목숨을 해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바닥에 뒤집혀 있는 핸드폰과 복부로 향하는 물건 그리고 윤하의 얼굴이 하나가 되어 성균의 머릿속에서 겹쳐졌다. 어쩌면 이게 윤하와의 마지막 연락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순간 성균의 복부에서 '퍽' 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운동으로 단련된 성균이지만 갑작스러운 공격은 피할 수 없었다. 신문지에 돌돌 말린 건 회 칼이었다. 그의 손은 한번 더 앞으로 움직였다. 이번에도 성균의 눈에 모든 게 슬로 모션이 되어 보였다.

성균의 입에선 '으~윽'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성균은 무의식적으로 칼을 쥐고 있는 그의 팔꿈치를 잡았다. 칼이 또 들어온다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성균의 손아귀 악력으로 그의 손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신문지가 말린 칼은 성균의 복부에 고정되었다.

성균이 반대편 손으로 그의 목 부위 경동맥을 힘껏 눌렀다. 고통 때문인지 아니면 힘을 쓰고 있기 때문인지 '뿌드득'이 갈리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들려왔다. 엄지와 나머지 손가락이 그의 목을 짓이겼다.

성균의 손가락이 살 속을 파고들었다. 벗겨진 살갗에서 피가 흘렀다. 그가 성균의 어깨에 올려진 손으로 성균의 눈을 찔렀다.

그는 칼을 한 두 번 써 본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살 속을 파고 들어가는 느낌은 다른 때와 달랐다. 그의 계획 대로라면 흉골 밑 부드러운 살 속을 파고 들어가 심장을 헤집고 다녀야 했다. 그러면 상대방은 짧은 비명과 함께 몸을 그대로 구부렸다. 하지만 성균은 버티고 서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다시 칼을 움직이려 했지만 성균에게 팔꿈치가 잡혀있어 그러지 못했다.

모자를 푹 눌러쓴 그의 입에서 '씨발'이라는 욕이 흘러나왔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의 엄지 손가락이 성균의 오른쪽 눈꺼풀 속으로 들어갔다. 성균은 아무 감각이 없었다. 여기서 그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아아악~~~' 성균의 입에서 거친 괴성이 흘러나왔다.

칼 쥔 손을 꽉 움켜 잡고 오른발로 죽을힘을 다해 그의 다리를 걸었다. 성균이 유도를 하면서 가장 즐겨 쓰는 기술이었다.

'쿵~~~' 소리와 함께 그가 뒤로 넘어졌다. 머리에 충격을 받았는지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성균의 오른손은 여전히 그의 경동맥을 누르고 있었다. 헉헉 거리는 거친 숨이 뱉어 나왔다. 누구에게서 나는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팔이 움직였다. 여전히 손에 쥐고 있는 칼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성균이 무릎으로 그의 손을 짓이겼다. 그가 칼을 놓았다. 성균은 배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다행히 피는 흐르고 있지 않았다. 찢어진 셔츠 사이로 검은색 티셔츠가 비쳤다. 일반적인 옷 하고는 달라 보였다. 방검복이었다. 윤하가 생일 기념으로 사준 선물이었다. 굳이 입을 일이 없어 차에 넣어두고 다녔다. 퇴근할 때 윤하가 떠오르며 트렁크의 방검복이 생각났다. 주형의 말을 듣고 위험하다고 느끼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방검복에 손이 갔다. 목안 사거리파 이대현이 작업하려 한다는 게 사실 일 줄은 전혀 몰랐다.

성균이 바닥에 떨어진 칼을 잡았다. 살기가 느껴졌다. 자신을 죽이려 한 놈을 죽이고 싶었다. 살기 위해서는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칼 쥔 손을 그의 얼굴 위로 올렸다. 바닥에 깔려있는 그가 성균의 팔을 잡았다. 이제는 살려는 자와 죽이려는 자가 뒤바뀌었다. 중력 때문인지 힘 때문인지 칼이 조금씩 밑으로 내려갔다. 넘어졌을 때 충격으로 모자가 벗겨졌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기억하기 위해 자세히 보았다. 이마의 땀이 보였다. 긴장된 눈빛도 보였다.

"이 새끼야~ 누가 보냈어? 이대현이지?"

성균이 살기 가득 찬 눈으로 칼을 누르며 말했다.

"으윽..."

그는 힘겨운 신음 소리만 내뱉었다.

"죽여버리겠어. 너 같은 새끼는 교도소에 갈 필요도 없어. 나를 우습게 본 놈들은 가만 두지 않았다. 너도 마찬가지다."

성균의 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평상시의 그의 눈빛이 아니었다.

"......"

여전히 그는 아무 말 없었다. 성균의 팔만 잡고 버티고 있었다. 칼이 그의 얼굴 가까이 왔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눈을 찌를 수 있었다. 생사를 가르는 싸움을 마무리할 때 성균의 팔에서 힘이 빠져왔다.

영화였다면 죽였거나 체포했거나 둘 중 하나였을 텐데 현실에서는 혼자 제압하기 쉽지 않았다. 힘이 빠지면서 이 자를 죽인 후 뒷감당 할게 떠올랐다.

"말해 누가 시켰어? 안 그럼 죽는다. 이대현 맞지?"

성균이 한 번 더 물었다.

"네..."

그의 입에서 가늘게 흘러나왔다. 술 취한 성균은 더 이상 힘쓰는 게 쉽지 않았다. 다시 칼을 빼앗긴다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대현의 사주라는 걸 알았으니 나중에 경찰을 통해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표식은 남겨야 했다. 그의 얼굴 위에 있는 칼 잡은 손을 더욱 눌렀다. 남자가 고개를 돌리자 칼이 볼을 그으며 옆으로 빗나갔다. 붉은 핏 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씨발 새끼, 보내 줄 테니까 빨리 꺼져. 한 번만 더 내 앞에 나타나면 죽는다."

성균이 몸 위에서 옆으로 굴렀다. 더 이상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도 성균을 죽인 다는 걸 포기한 듯 보였다. 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주은 후 어둠 속으로 곧바로 사라졌다.

몇 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며칠이 지난 느낌이었다. 칼 맞았던 배를 손으로 만져 보았다. 방검복 덕분에 찔리지 않았다. 붉게 긁힌 자국만 보였다. 방검복 안 입은 걸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고 이게 꿈인지 현실 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콘크리트 바닥의 차가움이 서서히 느껴지는 게 꿈은 아니었다. 손에는 칼도 들려있었다. 꿈은 아니었다. 윤하 덕분에 살 수 있었다.

다시금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 깨달았다.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패턴을 해제하니 윤하에게 보내려는 카톡이 남아 있었다. 전송 버튼을 눌렀다. 아까와는 다르게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짧은 시간의 사투에 모든 걸 쏟아부었던지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 간신히 벽에 기대어 앉았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윤하가 퇴근하고 집으로 가려는데 [잘 지내?] 냐는 짧은 카톡이 성균에게서 왔다. 성균이 생사의 기로에 있었다는 걸 윤하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래. 항상 똑같은 일상이야]

카톡을 보내고 차를 몰았다. 몇 분뒤 성균에게서 바로 연락이 왔다.

[우리 다시 시작하지 않을래?]

윤하는 차를 갓길에 세웠다.

그녀는 성균과 헤어지고 아름다웠던 추억을 힘들게 지웠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카톡이 오자 마음이 심란해졌다. 연락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윤하도 성균이 그리웠고 많이 보고 싶었다. 연락을 기다린 것도 사실이지만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은 많지 않았다. '뭐 하고 있냐?'는 카톡을 봤을 때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전과는 달랐다.

성균과 헤어진 후 몇 달은 죽을 만큼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 갔다. 여자의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간절하게 매달렸던 자신을 거절하고 사랑의 문을 닫아버린 성균이 밉기도 했다. 성균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살아지는 걸 보며 그녀의 마음에서 성균은 서서히 지워져 가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애절한 발라드 음악이 흘러나왔다. 자동차 핸들에 머리를 묻었다. 눈물이 흘렀다. 흐느낌이 더욱 커지고 어깨가 들썩 거렸다. 한때는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했고 모든 걸 다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이었다. 사랑했던 기억과 가슴 아팠던 기억이 동시에 떠올랐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보다 그동안의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흐르는 눈물이 방울 되어 계속 떨어졌다.

잊고 잘 살고 있는데 왜 또 힘들게 하는지, 성균을 사랑하는 마음은 정말 컸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유는 윤하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미치도록 성균을 사랑했을 때도 이유가 없었던 것처럼 헤어질 때도 그러나 싶었다. 자신을 힘들게 만드는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윤하는 핸드폰을 들었다.

[오빠 미안해... 우리는 여기까지가 끝인 거 같아. 마음은 항상 오빠가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 미안해.]

떨리는 손으로 힘들게 전송 버튼을 눌렀다. 카톡을 보내고 윤하는 더 서럽게 울었다. 자신의 거절로 힘들어할 성균이 불쌍했다. 둘이 오랜 기간 뜨겁게 사랑한 만큼 윤하는 성균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보기엔 강철 같은 사람이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누구보다 순수했다. 다만 그게 밖으로 보이지 않았고 그도 남에게 보여주기 싫어했었다.

자신의 거절에 성균이 얼마나 힘들어할지 윤하가 잘 알았고, 그게 그녀를 더욱 괴롭게 했다. 하염없이 눈물만 나올 뿐이었다.


멍하니 벽에 기대어 앉아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던 성균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윤하였다. 반가웠다. 바로 패턴을 풀었다.

[오빠 미안해... 우리는 여기까지가 끝인 거 같아. 마음은 항상 오빠가 행복하고 잘 살기를 바래. 미안해.]

성균의 손에서 핸드폰이 힘없이 떨어졌다. 윤하에게서 답장이 오자 나름 기대했었다. 하지만 대답은 정반대였다.

가슴이 쓰라렸다. 날카로운 칼을 맞은 거보다 더 아팠다.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움켜 잡았다. 셔츠 사이로 방검복이 만져졌다. 다시 윤하가 떠올랐다. 윤하 덕분에 목숨은 구했지만 사랑은 떠나갔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도 사라져 버렸다. 심장에 칼을 맞은 듯했다. 몸을 일으켜 세우려 해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음의 상처가 이렇게 힘들다는 걸 새삼 느꼈다. 눈물이 흘렀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전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상황이었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었다.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여 주질 않았다.

핸드폰을 열어 현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아직 안 들어갔어?"

가게를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성균에게서 전화가 오자 현진이 놀랬다.

"집에까지만 데려다줘"

"데려다주라니, 무슨 소리야?"

"걷지 못하겠어. 미안해"

"얘가 미쳤나. 지금 어딘데?"

"형 가게 옆. 골목길..."

"알았어. 지금 퇴근하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사정을 알지 못하는 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전화를 끊었다.

성균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깜깜한 밤하늘에 환하게 빛나던 별들이 수없이 많았던 어렸을 때의 하늘 하고는 많이 달랐다. 저 멀리서 몇 개의 빛만이 성균을 비췄다. 눈꺼풀이 아득하게 내려오는 빛과 함께 서서히 감겨 들었다. 그의 의식도 서서히 내려앉았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매주 화요일 업로드할 계획입니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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