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살인 17. (효라빠 장편소설)
성균은 대직근무자와 말을 끝내고 의자에 앉았다. 최태식은 엄중관리 대상자이고 수용자 사망사고와 관련이 있어 혼자 결정할 사안이 아니었다. 팀장과 보안과장에게 보고를 해야 했다.
팀장님 최태식이 이렇게 나오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대현 사망사고가 마무리된 거 같아도 아직은 아닌 듯합니다. 검찰은 우리 쪽이라 기소하지는 않겠지만, 인권위와 신문사는 최태식의 말을 믿고 김대현의 사망에 대해 의심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증거가 없다고 하지만 최태식의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김대현이 강제력 행사에 의해 제압당하고 그 후 사망한 것은 사실이니까. 가족들도 지금은 조용히 끝낼 것처럼 말하지만 누군가 펌프질을 해 합의금을 받아낼 수 있다고 한다면 행정소송이나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너나 우리 팀은 상당히 피곤해지겠지."
성균의 말을 듣고 팀장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미간의 주름이 더 깊게 파여 보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보안과장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너도 알잖아. 윗사람들은 언론이나 민원에 예민한 거. 조용히 마무리했으며 하지..."
"조용히 라면?"
"최태식을 만나 원하는 걸 알아보고, 들어줄 게 있으며 들어주란 말이지"
"그럼 그 자식이 해 달라는 데로 해주라는 뜻인가요?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자신의 요구사항을 위해 아킬레스건을 자르는 등 자해를 밥먹듯이 하는 놈인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팀장님도 아시잖아요? 하나를 들어주면 나중에는 두 개, 세 개를 요구하는 놈이라는 것을."
성균이 보안과장의 뜻이라는 팀장의 말을 듣고 흥분하며 따졌다.
"야~ 인마. 나는 모르냐. 그런데 어쩌겠냐. 보안과장 입장이 그러는데. 우리 조직 스타일 알잖아. 계급이 깡패라는 거. 나도 지금 속이 속이 아니다. "
"팀장님, 그래도 그놈의 요구사항은 다 들어줄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조사를 해서 징벌을 먹여야 한다고 봅니다. 세게 나가는 게 맞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런데 그놈 하는 방법 알잖아. 자신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의사 표현을 할 거야. 그게 언론사 제보가 될지 또 다른 자해가 될지 모르겠지만"
"하라고 하면 되죠. 우리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또 자해를 한다고 해도 본인이 힘들지 우리가 힘듭니까. 우리 할 일이 많아져 바쁘긴 하겠지만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균이 여전히 흥분한 채로 큰소리로 말했다.
"자네 말이 무슨 뜻인 줄 안다니까 하지만 윗분들은 그런 거 좋아하지 않잖아. 자신들 승진에 피해가 갈 수도 있으니까. 내가 너보다 머리가 더 아프다. 너는 나한테 구시렁 대기라도 하지만 나는 너랑 과장 사이에 끼여서... 아이고 머리야. 일단 최태식을 만나 보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 조만간 그놈이 우릴 찾을 거니까. 시나리오는 뻔하잖아. 검찰에 고발하고, 언론사에 제보할 놈이 편지 봉투 앞면에 다 보라고 그렇게 써 놨겠냐. 일단 지켜보자"
팀장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쓰며 성균의 말을 잘랐다. 성균도 팀장의 입장을 잘 알기에 기다려 보기로 했다.
최태식은 서신과 보고전을 담당에게 제출하고 징벌방에 벽에 기대어 저려오는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징벌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반방에는 티브이가 있어 교도소 안의 무료함을 달랠 수도 있고, 책이라도 볼 수 있었지만 징벌방은 그러지 못했다. 자신도 자해를 해 징벌받는 게 힘들었지만 교도소 안에서 독종으로 보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몇 번 더 자해를 하면 특별관리 대상이 되어 독방을 얻을 수 있고, 직원들이 귀찮아서라도 다른 요구사항을 들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교도관들이 깐깐하다고 해도 그들도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최태식도 어느 정도 자신의 요구사항이 관철된다면 조용히 지낼 마음도 먹고 있었다.
'지금 쯤이면 내 행동에 대해 대충 눈치를 챘을 텐데 슬슬 시작해 볼까...' 혼잣말을 하며 벽에 붙어있는 인터폰을 눌렀다.
[16방 인터폰 눌렀어요?]
[네. 담당님.]
대직 담당은 인터폰에서 최태식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긴장이 됐다. 최태식이 인터폰을 눌러 좋은 말을 할 이유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 때문에 그러는데요?]
[기동순찰팀 팀장님 면담을 원합니다.]
[면담 사유가 뭔가요?]
[휴~ 담당님은 알 필요가 없으니 최태식이가 면담신청 한다고 전해 주세요.]
최태식의 말투는 건방지게 들려왔다. 근무자는 미지정 사동을 대신 근무 하는 것도 짜증이 났는데 최태식이 자신을 허수아비로 취급하는 행태에 화가 났다.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대신근무 들어왔지만 담당근무자입니다. 이유를 알아야 팀장님에게 이런 용건 때문에 면담 신청을 한다고 말 할거 아닙니까?]
[씨발~ 거참 피곤하네 구네... 그렇게 궁금하면 최태식이가 또 자해를 한다고 말하십시오!]
인터폰에서 들려오는 최태식의 목소리가 점점 앙칼져 갔다. 근무자를 완전 무시 하는 발언이었다. 담당근무자는 더 말해봐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팀사무실로 전화를 돌렸다.
[팀장님! 3 동하 근무자입니다.]
[어 그래. 무슨 일이야?]
[1004번 최태식이 팀장님 면담을 하고 싶다는데요?]
[면담?]
[네.]
[뭐 때문에 그러는데?]
[면담 사유를 말하라고 하니까. 신경질을 내면서 안 가르쳐 줍니다. 몇 번 물어보니 자해를 할 거라고 말하던데요]
[알았어. 싸가지 없는 새끼. 동행 근무자 보낼 테니까 상담실로 보내]
[네. 알겠습니다.]
팀장은 최태식이 슬슬 자신의 발톱을 내 비치려고 하는 것을 감지했다.
최태식이 휠체어를 타고 상담실로 들어왔다. 팀장이 의자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 그래 들어와요. 내가 팀장이야. 면담하고 싶다고 했다며?"
"네. 계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발목은 좀 어때? 뭐 하러 힘들게 자꾸 일을 벌여? 그래 봤자 본인 몸만 힘들지. 의사가 한 번만 더 그러면 걷기 힘들다고 했다면서? 이제 조용히 살아. 몸 아프면 징역이든 밖이든 힘드니까"
수용관리의 베테랑답게 팀장이 최태식의 안부부터 물었다.
"네.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러고 싶겠습니까.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그러는 거죠."
팀장의 말에 최태식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팀장이 수용관리의 베테랑이라면 최태식은 수용생활의 베테랑이었다. 팀장의 자신에 대한 걱정은 단순한 립서비스라고 여기고 형식적으로 대답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제 고발장은 읽어 보셨습니까?"
"어~ 엉~ 읽어 봤지. 뭘 엄청 적었던데. 불의가 어쩌고 저쩌고... 하하하"
안 봤다고 하기 그래 사실대로 대답했다. 최태식도 그런 대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지 표정하나 변하지 않았다.
"불의는 불의 니까요..."
"그건 그렇고 우리가 남자니까 남자답게 시원하게 말하지?"
"시원하게요?"
"그래. 그걸 담당에게 제출한 이유가 있잖아. 자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불의 따졌어. 안 그래? 솔직히 말해봐 본인이 원하는 게 뭐야?"
"그... 그게..."
팀장의 거침없는 대답에 최태식이 당황한듯했다. 기동순찰 팀장이 보통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여기서 잘못했다간 요구사항이 아니라 징벌만 더 받을 거 같았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을 다 얻지는 못하더라도 일이 이렇게 된 이상치고 나가야 할 것 같았다.
"말해봐.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고발장을 읽어 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저는 그 사건을 다 알고 있습니다. 제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그러니까 요구사항이 뭐냐고? 뭔지 말을 해야 들어주든가 말든가 할 거 아냐?"
"흠... 일단 영치금 500만 원을 넣어주시고 독방하나 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서화를 하는데 그것과 관련된 용품들을 제 방에서 사용할 수 있게 끔 허락해 주시면 됩니다."
"뭐? 영치금 500만 원? "
팀장이 최태식의 요구사항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다른 부분은 그러려니 하고 허락해 줄 수 있었지만 돈을 요구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정도는 줘야 저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까?"
최태식이 팀장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상담실에 순간 긴장이 돌았다.
"야~ 이거 너무 세게 나오는데. 여기가 어디고 내가 누군지 알지?"
"그걸 어떻게 모르겠습니까?"
"그럼. 자네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알겠네?"
"무슨 말씀인지?"
"지금 협박을 하고 있잖아, 공갈 협박. 있지도 않은 사실로 교도관을 상대로 돈을 뜯어 내려고 하고 있잖아?"
"아~ 그렇습니까?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이 다 거짓이란 말이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언론사나 인권위에 추가 제보를 하겠습니다"
최태식은 팀장이 기선제압하려고 한다고 여겼다. 본인도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사실을 백 프로 알고 있지는 않지만 교도관들 속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여겼다. 언론이나 외부에 노출되면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해봐야 본인만 힘들어질걸.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거 같아? 내용을 읽어 보니 교도관에 의해 폭행당해 사망했다는 둥 허위의 사실이 적혀 있고. 그 걸 꼬투리를 잡아 영치금을 넣어 달라고 말하는 건 협박 같은데? 징역 오래 살았으면서도 추가형을 더 받고 싶은가 보지? 인간적으로 독방을 준다던가 교정교화 차원에서 서화 용품을 사용하라고 해줄 수는 있지만 없는 일을 가지고 영치금을 넣어 달라는 등 돈을 요구하는 건 너무 나가는 거 아냐?"
"흠... 그건 지켜보시면 알겠죠. 팀장님은 팀장님대로 하십시오. 저는 저대로 하겠습니다."
"본인이 그렇다면 알아서 해. 분명히 말해 두지만 허위사실로 그런 행동하는걸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거니까. 아직 시간 많으니까 차분히 생각해 봐"
둘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깨지지 않았다. 각자의 입장만 듣고 마무리되는 듯했다.
'아~~'
갑자기 최태식이 배를 움켜 잡고 얕은 신음을 내뱉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팀장이 물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최태식은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또 무슨 자해를 한 건 아니겠지? 몸으로 때우는 시대는 지났잖아. 앞으로는 그런 행동 자제해. 본인 몸만 힘들지..."
"괜찮습니다."
둘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최태식은 면담을 마치고 징벌방으로 돌아왔다.
'아~ 이거 쉽지 않겠는데. 그렇지만 내가 분명히 말했으니 머리는 아플 거야. 돈은 아니더라도 다른 거라도 얻어 내야지. 나도 언제까지 이렇게 자해하면서 지낼 수는 없으니까' 혼잣말을 하며 벽을 멍하니 쳐다봤다.
좁은 방에서 그것 말고는 달리 할 게 없었다. 움직였더니 자해한 발목이 더 시큰거렸다. 짜증이 올라왔다. 주먹으로 벽을 쳤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건너 방으로 퍼져 나갔다.
'어떤 새끼가 치는 거야~~~'
옆방에서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앉아 있는데 배가 또 찌릿했다. 한동안 배가 더부룩하고 속이 안 좋았는데 그 부위가 따끔거렸다. 처음 겪어 보는 통증이었다. 손으로 배를 주무르자 다행히 고통은 사라졌다.
'발목이 아파 짜증 나는데 왜 배까지 아프고 지랄이야' 혼잣말을 하며 다시 주먹으로 벽을 쳤다. 건넌방에서는 또 소리가 들려왔다.
'벽 치지 말라고 이 새끼야~ 너 죽고 싶어?' 최태식이 키득 거리며 벽을 더 두드렸다.
'야~ 이 개새끼야~~' 고함 소리는 사동 전체에 울려 퍼졌다.
"팀장님 최태식이 만나 보셨습니까?"
"응, 방금 면담하고 왔어"
"뭐라고 합니까?"
"영치금 넣어주고 몇 가지 요구사항도 말하던데"
"영치금이요? 그건 돈 주라는 말이잖아요?"
"그렇지"
"얼마나 넣어 주라는데요?"
"500만 원. 하하"
팀장이 말하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놈 제정신이 아니네요"
"그러게. 내가 봤을 땐 그냥 나불대는 것 같아. 정확히도 모르고 찔러보는 거겠지. 그냥 무시하는 편이 나을 거 같아. 다른 잡다한 거 한 두 개 들어주면 조용히 살겠지"
"팀장님이야 워낙 베테랑이니까. 팀장님만 믿겠습니다. 하늘은 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런 놈을 안 잡아가고"
성균이 어이없다는 듯 대답 했다.
"그러게 말이야.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 면담을 하는데 갑자기 최태식이 인상을 쓰며 배를 움켜 잡더라니까."
"또 뭘 삼킨 거 아닐까요? 그러거도 남을 놈이잖아요."
"그런 거 같지는 않았는데 뭔가 이상했어. 표정이 상당히 고통스러워 보였거든."
"네."
팀장이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둘의 대화는 마무리 됐다. 성균은 최태식이 또 다른 일을 벌이려고 하는지 조금 긴장이 되었다.
[다음 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