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살인 18. (효라빠 장편소설)
주형은 형을 혼자 둘 수 없어 일주일 간의 연가를 쓰고 옆을 지켰다. 괴로움으로 일주일을 보내고 왔지만 현실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는 직장 동료들에게는 아이가 아파서 그랬다고 대충 둘러댔다. 인수인계 부에는 인수 사항이 넘쳐났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동안 많은 일이 발생했고 대부분은 그가 마무리해야 할 일이었다. 어떤 것부터 처리해야 할지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 모니터만 바라봤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지금도 은혜가 그렇게 된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꿈인가 싶었고 꿈이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형과 은혜를 생각하면 도저히 제정신으로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반 미친 사람이 되어 버린 형을 자신이 지켜야 하기 때문에 주형은 무너질 수 없고 버텨야만 했다. 형은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았다. 은혜의 사진만 부여잡고 통곡하며 죽고 싶다는 말 뿐이었다. 범인을 잡아 은혜의 원한을 풀어주자고 간신히 설득해 죽이라도 먹일 수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불쌍한 은혜도 수시로 떠올랐다. 그럴 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 작은 아이가 당했을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오고 숨을 쉴 수 없었다. 말로만 듣던 공황장애가 이런 건가 싶었다. 어쩔 땐 온몸이 터져 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딩동~ 딩동~'
사동에서 누르는 인터폰 소리에 주형이 움찔했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일깨워 주는 소리 같았다.
출근해 교도소에 돌아온 이상 일은 해야 했다. 버튼을 눌러 대답했다.
[인터폰 눌렀어요?]
[네, 부장님. 면담 좀 할 수 있을까요?]
[급한 거 아니면 다음에 했으면 좋겠는데요.]
[가족들에게 긴히 전할 말이 있어 그럽니다. 지금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 알았어요. 수번이 몇 번이에요?]
[1458번입니다.]
[방문 열어 줄 테니 나오세요]
면담을 다음으로 미루고 싶었지만 가족일로 급하다는 말에 어쩔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 보라미(교도소 내부 망) 검색 창에 수번을 입력했다. 인적사항이 열리고 사진이 떴다. 들어온 지 얼마 안돼 얼굴이 낯설었다. 습관적으로 죄명에 눈이 돌아갔다. 강간치사였다. 마우스를 쥐고 있는 주형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사건개요를 읽어 보지 않았으나 은혜를 그렇게 만든 놈하고 같은 부류의 죄였다. 지금 방에서 나올 수용자가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지만 순간 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네. 네."
주형이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사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자 순간 놀랬다. 아무 일 없는 척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거기 의자에 앉으세요."
"네."
"가족들에게 전할 말이라니 무슨 일 있어요?"
주형이 앞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를 가리키며 사무적으로 말했다. 평상시라면 좀 더 따뜻하게 대했을 텐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3주 전부터 가족들하고 연락이 안 돼서 그러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가족이라면 누구 말하는 거예요? 부모님?"
"네. 영치금도 넣어주고 하셨는데 편지 보내도 답장이 없고 전화해도 받지 않습니다."
"내가 고충처리반에 문의해서 확인해 달라고 할게요. 그렇게 알고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아~ 네..."
"지금 다른 일 처리해야 하니까 면담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가족 연락처 여기 적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와의 면담은 불과 몇 분 걸리지 않았다. 평상시 같으면 '부모님은 뭐 하시냐? 밖에서 뭐 했냐?'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이번에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피하고 싶었다.
면담을 끝내고 수용자는 방으로 돌아갔다. 모니터를 켰다. 그전에 보고 있던 화면이 그대로 있었다. 면담했던 수용자의 신분카드가 열려있었다. 사건개요를 클릭했다. 강간치사죄로 살고 있는 그의 범죄 내용이 떴다.
[사건개요 : 서울 동대문구 제기 2동 인근 호프집에서 술을 먹던 중, 늦은 시간 손님이 없자 주방에 있던 과도를 들고 여사장을 위협해 주방으로 끌고 가 강제로 웃을 벗기고......]
주형은 위에서부터 읽어 내려가다 읽기를 포기하고 화면 창을 닫았다. 도저히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가슴이 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철창 쳐진 사동 담당실이 자신을 가둬 버리는 것 같았다. 은혜가 떠올랐다. 미치도록 불쌍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 참혹했던 순간이 그러졌다. 주형의 머릿속에 박제되어 있는 듯했다.
'은혜를 죽인 범인이 경찰에 잡혀 만약 내가 있는 교도소에 들어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만약이 아니었다. 주형이 근무하고 있는 교도소 관할에서 범죄가 발생했으므로 그곳으로 들어올 확률이 높았다. 목이 타고 긴장이 됐다. 손은 떨려왔다.
'범인이 내 눈앞에 있다면 어떻게 하지...'
지금까지 근무하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단순한 범죄도 아니고 은혜를 그렇게 만든 사람 같지도 않은 살인자가 눈앞에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혜의 복수를 해야 할지, 아니면 지금까지 관리했던 수용자들과 같이 대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다면 그건 은혜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복수를 해야 할지 결론은 나오지 않고 수많은 질문 만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지금 이 순간 자신과 가족들에게 너무 힘든 시련을 준 하늘이 무심할 뿐이었다. 남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갔는데 왜 이런 고통을 겪게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딩동~ 딩동~'
인터폰 소리가 또 울렸다. 7~80명이 수용되어 있는 주형의 사동은 여전히 현실이었다.
16번 방 계기판에 불이 들어왔다. 최태식의 방이었다. 출근해 팀 사무실에서 아침 조회를 하면서 최태식이 어떤 상태인지 전해 들었다.
[16방 인터폰 눌렀어요?]
[네. 부... 부장님]
[얘기하세요.]
[저... 배... 배가....]
스피커에서 떨리는 최태식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평상시 위압적인 말투와 사뭇 달랐다. 무슨 말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작게 들려왔다.
[뭐라고요? 잘 안 들리니까 크게 말해 보세요.]
[부장님. 배가 아파서 그러는데 의료과 좀 보내주세요.]
[배가 아파요?]
[네...]
최태식이 배가 아프다는 말이었다. 조회 시간에 최태식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하니 주형은 믿지 못했다. 혹시라도 다른 꿍꿍이가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소리는 아픈 사람처럼 들렸지만 직접 확인을 해봐야 했다.
머리는 복잡하지만 사동 근무자로 앉아 있는 이상 일을 안 할 수 없었다. 의자에서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태식 씨!"
주형이 철문에 붙어있는 쇠창살 쳐진 시찰구를 통해 최태식을 불렀다.
"네. 으~~"
최태식은 배를 쥐어 잡고 끙끙거리며 힘겹게 대답했다.
"배가 아파요?"
"너무 아픕니다. 의료과 좀 보내주세요"
말하는 모습이 거짓말 같지 않았다. 주형은 혼자 문을 열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전에도 근무자가 문을 열자 최태식이 직원을 공격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괴로워하는 모습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사동에서 수용자를 관리할 때 인간적으로 대했던 주형이기에 최태식이라 하더라도 아파하는 모습에 문을 열었다. 웅크리고 있는 최태식의 등에 손을 올렸다.
"최태식 씨 배가 어떻게 아파요?"
"바늘로 콕콕 찌르는 거 같습니다."
고통 때문인지 날카로운 인상이 더 차갑게 보였다.
"바르게 누워 보세요"
"네..."
최태식이 힘겹게 몸을 움직였다.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아파 보였다. 주형은 최태식의 이마에 손을 대 봤다. 식은땀은 흐르지만 열이 많이 나지 않았다.
"일단 의료과로 갑시다."
한쪽 다리에 붕대가 감겨있어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주형이 최태식의 팔에 손을 넣어 일으켰다.
"사동 도우미~ 이리 와서 좀 도와줘~ 휠체어 좀 가져와 "
주형이 복도에서 일하고 있는 사동 도우미를 불러 최태식을 휠체어에 태워 의료과로 보냈다.
담당실로 돌아온 주형은 깊은 한 숨을 몰아쉬며 다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모니터 속 인수인계 폴더를 클릭했다.
최태식은 의료과 침대에 누웠다. 일단 진통제와 수액을 맞았다. 통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배가 지금처럼 심하게 아팠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그렇게 걱정해 준 것도 처음이었다. 차디찬 마룻바닥에서 끙끙 앓고 있을 때 등 과 이마를 어루만져 주었던 주형의 따듯한 손길이 떠올랐다. 살면서 처음 겪어봤다.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라 엄마의 정을 못 느껴 봤다. 만약 자신에게 엄마가 있었다면 그런 포근한 손길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40살이 훌쩍 넘어 그런 걸 느껴 본다는 게 서글프기도 했고 주형이 고맙기도 했다. 수액을 다 맞고 다시 사동으로 돌아왔다. 담당실의 주형은 정신없이 일처리를 하고 있었다.
"부장님 의료과 다녀왔습니다."
"지금은 괜찮아요? 아까 많이 아파 보이던데"
주형이 의료과에 다녀온 최태식을 보며 말했다.
"네. 주사 맞고 약 먹으니 좋아졌습니다. 가스가 차서 장이 뒤틀린 거 같다고 하네요"
"다행이네요"
"저..."
최태식이 말을 더듬었다. 표정도 평상시의 표독스러운 모습이 아니었다.
"할 말 있으면 하세요."
"아까는 고마웠습니다."
"뭐가요?"
최태식이 고맙다는 말을 힘겹게 꺼냈고, 주형은 뭐가 고마워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저를 의료과에 보내 준거요."
"그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 그보다 저를 따듯하게 만져준 거요."
"만져 주다니요?"
"아... 아닙니다. 어쨌든 고마웠습니다. 저 들어가겠습니다."
최태식은 짧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본 적이 살면서 몇 번이나 있었나 떠올려 봤다. 방금 이주형 부장에게 한 말이 처음 같았다. 자신의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멍하니 시멘트 벽의 쇠창살 처진 창밖만 쳐다봤다. 하얀 구름이 보였다. 그리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음 주 화요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