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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ㅅㄱ Apr 04. 2023

탈피1.

따뜻한 살인 22. (효라빠 장편소설)

따스한 햇살이 묵직한 쇠창살을 지나 담당실로 들어와 주형의 다리를 포근하게 감쌌다. 하지만 주형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가슴속에 차가운 얼음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형의 자살을 수습하고 장례를 치르자 일주일이란 시간이 달력에서 사라져 버렸다. 주변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지만 자신의 마음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변해 있었다.

형이 많이 힘들어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 생을 마감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잘 살아가길 바라는 은혜의 마음을 알기에 버텨 낼 줄 믿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옆에서 잘 챙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함이 자신을 더 괴롭혔다.

담당실 의자에 앉아 멍하게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을 찔러 넣은 주머니 속에서 편지 봉투가 느껴졌다. 박호 경장에게 받은 형의 유서였다. 몇 번이나 펼쳐 봐 구깃구깃해진 종이를 다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주형에게]

아마도 네가 이 편지를 보고 있을 때쯤이면 나는 다른 곳에 있겠지. 그곳에 은혜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해서 너에게 너무 미안하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럴 수밖에 없었던 형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너도 알다시피 은혜가 없는 삶은 나에게 아무 가치가 없더라, 그런 현실에서 살아간다는 건 힘만 들었어. 너를 봐서라도 버텨 보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하겠구나.

사람들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 하지만 그때까지의 시간이 나에게는 죽는 거보다 더 괴로운 시간이다. 그래서 이런 선택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져 버렸으니까.

은혜를 죽인 놈이 교소도 가는 것을 본다고 해서 나한테 달라지는 게 무엇이겠니. 나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그놈을 용서하는 건 아니다. 꼭 잡혀서 죗값을 치렀으면 좋겠고, 하나님이 벌을 내려 어디서 비참하게 죽었으면 하는 게 나의 솔직한 마음이다.

모든 걸 내려놓고 편지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 가슴은 무너져 버릴 듯이 힘들고 답답하다.

우리 은혜가 없는 이곳을 떠난다는 게 크게 아쉽진 않지만 은혜를 그렇게 만든 놈이 잡히는 걸 보지 못하고 간다는 건 씁쓸하구나.

이제는 모든 게 운명이라고 받아 드릴런다.

형이 먼저 떠났다고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는 지켜야 할 가족이 있잖아. 너라도 사랑하는 가족들 잘 지키고 행복하길 바란다.

주형아~ 내가 안고 가야 할 짐을 너에게 남겨 준 거 같아서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항상 고마웠다. 사랑해.


유서를 들고 있는 주형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시발새끼. 그 개새끼 때문이야. 은혜를 그렇게 만든 그 새끼... 그놈 때문에 형까지 이렇게 된 거야. 죽여버리겠어. 너는 내가 죽여버리겠어. 제발 잡혀만 다오. 내가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버린다. 아니 죽는 거보다 더 고통스럽게 살도록 만들어 주마. 앞을 보지 못하게 눈알을 파버리고, 걸어 다니지 못하게 다리를 잘라 버리겠다. 제발 죽여 달라고 말하게 만들어 주겠다.

죄를 지은 세상의 모든 놈들을 다 갈아 마셔 버리고 싶지만 일단 너부터 그렇게 만들어 주마. 네가 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꼭 지게 해 주겠다.'

주형이 무표정한 얼굴로 혼잣말을 했다. 입에서는 거친 말이 나오지만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섬뜩하게 보였다.  

화장터에서 유골을 찾으며 형과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두 손으로 받쳐든 순백의 하얀 단지 안에는 형의 마지막 온기가 느껴졌다. 형은 조용히 떠났지만 형과 은혜의 복수를 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을 했다. 눈물이 말라 버렸는지 나오지도 않았다.

주형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들에게 불편을 끼친 적도 없었고 누구를 원망한 적도 없었다. 물 흐르듯이 살아왔다면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거 같았다. 그의 말투는 이전의 주형이 아니었다. 악에 복받쳐 모든 게 바뀌어 버린 사람 같았다.

고개를 들자 감방 안에 갇혀있는 수용자들이 보였다. 주형이 변했듯 그들을 바라보는 주형의 시선도 변해있었다. 그전에는 죄를 짓고 들어왔지만 그들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죗값을 치러야 할 인간으로만 보였다. 모두가 은혜를 죽인 살인자 같았다. 그들도 다른 누군가에게 크든 작든 피해를 입혔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형이 죽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약 범인이 잡히면 너 있는 곳으로 가는 거야? 그럼 죗값을 치르는 거야?'

관할지가 주형이 근무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럴 확률이 높았다. 그 생각을 하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 살인범이 잡혀 자신이 관리하는 사동으로 오길 바랐다.

'너를 꼭 기다리마......'

주형의 입에서 조용하게 흘러나왔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담당실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주형아. 출근했어?"

형의 장례를 치르고 출근한 주형을 위로하기 위해 성균이 들렸다.

"네. 형님"

 주형이 힘없이 의자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앉아, 앉아. 일은 잘 처리했고?"

담당실의 플라스틱 의자를 당겨 앉으며 성균이 물었다.

"어떻게 마무리 하긴 했습니다."

주형이 형식적으로 대답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모른 척하려다 그것도 아닌 거 같아 한번 들렸어. 사람 사는 게 쉽지 않다.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네. 너같이 남에게 피해 한번 안 끼치고 살아온 사람도 없는데. 너만 그러겠냐. 형님과 조카도 그랬겠지. 세상이 참 불공평한 거 같아. 그런 착한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일이 더 생기니까. 봐봐 교도소에 들어와 있는 저 나쁜 놈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잖아. 너는 전부터 나와 입장이 달랐으니 이해 못 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아닌 것 같다."

성균이 범죄자 이야기만 나오면 항상 그렇듯 흥분해서 말했다.

"이제는 저도 이해합니다. 그동안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물건 훔치고 폭행하며 살인을 저질렀더라도 똑같은 사람이고, 죗값을 치르고 반성하면 용서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거 같습니다. 관용보다는 일단 죗값을 달게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주형이 성균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눈빛이 불타오른다는 말은 주형의 눈을 보고 하는 것 같았다. 복수하겠다는 마음에 시뻘건 활화산이 되어 있었다.

"어... 그... 그래... 네가 이제야 내 마음을 아는구나"

너무 갑자기 변해버린 주형의 태도에 성균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내가 봤을 때 인간은 그 자체가 이기적인 거 같아. 다만 학습과 교육을 통해서 변화를 겪고 공동체 생활 속에서 다듬어지는 거지. 만약에 다듬어지지 못했다면 그렇게 만들어야 해. 그걸 이곳 교도소에서 해야 하는데. 현실은 어떠냐? 다른 사람을 죽이고 강간하며, 남의 물건을 훔치고 들어와서 너무 편하게 지내지 않냐? 너도 직접 보니까 알 거 아냐. 요즘 징역이 징역이냐? 생수에서부터 과자, 빵 거기다 귤, 토마토, 사과등 제철 과일까지 구매해서 먹고 티브이로는 밖의 모든 방송이 라이브로 보여주고, 성폭력등 범죄 저지르고 들어온 수용자가 전라의 모델들이 나오는 야한 잡지를 구매해서 보고. 그래 그거야 먹고사는 거니까 그런다고 치자. 범죄를 짓고 들어온 범죄자들이 소란과 난동을 벌여도 보호장비(수갑, 포승 등) 한번 채우려고 하면 복잡한 기록 남기는 등 절차를 지켜야 하고. 몇 시간 사용했다가 식사시간이라고 풀어주고, 취침시간이라고 풀어주고 또 소란 피워 강제력 행사 하다가 수용자가 다치기라도 하면 과잉진압으로 고소당하고. 그래 수용자도 인권이 있으니 마지막까지 그런다고 치자. 그런 악질 수용자들이 직원을 위협하고 폭행했을 때는 어떻게 처리하냐? 수용자가 교도관에게 폭행당했다고 민원이라도 들어오면 위에서는 직원들은 범죄자 다루듯이 관리하면서, 수용자에게 폭행당한 직원은 혼자 병원 가서 알아서 치료하고 뒷감당도 각자 처리하는 식 아니지 않냐? 이게 현재 교도소의 현실이잖아.

나는 밖의 지인들에게 세계에서 우리나라 교도소처럼 편하고 인권 친화적인 교도소는 없다고 말한다. 정말 이건 아니라고 봐.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문제가 너무 많은 거 같아."

성균이 교도소의 현실에 대해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자신이 함으로써 사회정의 실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 그도 교도관의 처우에 대해서 말이 나오면 감정이 격해지고 분함을 느꼈다.

"맞습니다."

그전 같으면 성균의 주장에 반대 의견을 제시했을 주형이 동의했다. 주형은 죄를 짓고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같은 사람이고 그들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많은 수용자들을 교정교화 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바뀌게 만든다는 것에 자긍심도 있었고 그게 자신의 역할이고 사회에 기여한다고 믿었다. 성균과 주형은 생각은 달랐지만 둘 다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혜가 그렇게 되고 형까지 자살로 생을 마감해 버리자 그의 생각은 바뀌었다. 자신이 범죄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자 그전과 같은 믿음을 가질 수 없었다. 마음속에서 불타오르는 원한과 복수심이 모든 걸 덮어 버렸다.  

"저기 감방 안에 들어가 있는 도둑놈 새끼들은 다 똑같은 놈들이야. 비열하고 더럽고 잔인하지. 조그만 빈틈이 보이면 직원들이 이용하려고 하고 지들끼리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주형아 교도소가 왜 돌아가지는지 알아?"

"글쎄요."

"내 말에 힌트가 들어 있었는데. 한번 맞춰봐"

"잘 모르겠는데요"

주형이 여전히 몸에 힘이 빠져 보이지만 눈에는 살기가 가득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이제이라는 말 알지? 오랑캐는 오랑캐로 다스린다. 적을 이용해 다른 적을 제어 한단 뜻이지. 나는 이 표현이 이곳 감방에서 아주 잘 어울린다고 본다. 수용자들이 방 안에서 자기들끼리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 나 투서를 하고, 누가 무슨 범죄 계획을 꾸미고 있다고 제보하는 거 말이야.

우리 교도관들이 24시간 잠 안 자고 수용자 관리 한다고 하지만 그 많은 인원을 전부 어떻게 관리하냐. 교도관의 주된 목적이 교정교화라고 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니? 지금 인원이 부족해 완전한 4부제도 못해 야간 근무를 끝내고 온전히 쉬지도 못하고 근무 불려 나오는 실정인데.

말이 옆으로 샜지만 그만큼 죄를 짓고 들어온 수용자들이 간사하다는 뜻이야. 나는 저들을 절대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만기 출소해서 사회로 나간다면 그냥 일반인으로 생각하겠지만 여기 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믿지 못하고 용서 같은 거 해주고 싶은 마음도 없다."

성균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며 일장 연설을 했다.

"네. 이제는 형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죄짓고 들어 온 놈들이 편하게 지내면 안 되죠. 지금까지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교도소에서 수용자들을 관리하다 보니 피해자들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사기만 쳐도 한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고 모든 가족들이 힘들게 살아가는데, 살인이나 성폭력을 당한 유족이나 당사자 들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평생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겠죠. 가해자들이 반성을 한다면 그나마 덜하겠지만 여기 교도소에 들어와 있는 범죄자들 중 본인들이 직접 반성하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직원들 눈을 피해 편하게 살아 갈려고만 하고 잔머리를 굴려 모사나 꾸미고, 지금까지 근무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게 정말 한심합니다. 제가 피해자가 되어보니 알겠습니다. 나가서 또 범죄 저지를 궁리 하고 있는 저 인간들을 보니 가슴이 터지려 합니다. 불쌍한 우리 형과 그 착하디 착한 은혜가 떠올라 미쳐버릴 거 같아요."

주형이 울분에 찬 소리로 말했다.

"널 위로하려고 왔는데 오히려 더 화나게 한 거 같네."

성균이 흥분한 주형을 보며 놀랜 듯 말했다.

"아닙니다. 이렇게 말이라도 하니 속 시원합니다."

주형이 대답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에서 굵은 눈물이 떨어지려고 하는 걸 억지로 참고 있는 듯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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