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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라빠 Aug 30. 2023

복수 2.

따뜻한 살인 32. (효라빠 장편 소설)

주형은 꽉 막힌 닭장 같은 담당실에 출근해 앉아있었다. 전날 퇴근 후 성균과 많은 이야기로 가슴속 담겨있던 응어리를 풀었다고 생각했지만 하루가 지나고 제 자리로 돌아오자 다시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발생했던 끔찍했던 일들이 영화 필름 지나가듯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괴로움에 미친 듯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이 악물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깊은 한숨 만이 담당실에 앉아 있는 주형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바탕화면에 깔린 법무샘에 로그인하고 업무 준비를 했다. 답답한 담당실을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했다.  

컴퓨터 옆 나란히 붙어 있는 CCTV 모니터에 영상거실 수용자들의 모습이 비쳤다. [1800번 곽태성]이라고 적힌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

화면 속 곽태성은 아무 일 없다는 듯 TV를 시청하며 영치금으로 구입한 구매물인 빵과 과자를 먹으며 희희낙락 거리고 있었다.

사람을 잔인하게 강간살해한 살인자의 실제 모습이었다. 주형이 교도관이 아닌 일반인이어서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교도소에서 죗값을 치른다고 생각했을 텐데, 편하게 앉아 웃고 있는 것을 보자 그동안 곽태성을 불쌍하게 여겨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었던 자신이 우스웠고 그걸 보고 있어야 하는 현실에 미칠 것 같았다.

'너는 아무리 봐도 그냥 살려 둘 수 없을 것 같다.'

주형이 굳은 다짐이라도 하듯 혼잣말하며 곽태성이 나오는 화면을 부들부들 치를 떨며 쳐다봤다. 부릅뜬 눈은 실핏줄이 터져 흰자위가 붉게 물들어 갔다.

[딩동~ 딩동~]

사동과 연결된 담당실의 인터폰이 울렸다. 최태식의 방이었다.

[인터폰 눌렀어요?]

[부장님! 배가 아파요~ 으~~~ 너무 아파요. 살려주세요]

[최태식 씨! 왜 그래? 또 배 아파요?]

요즘 들어 자주 복통을 호소하는 최태식이었다. 인터폰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까무러칠 정도로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에 가까웠다.

근무 경력이 많지 않은 주형이지만 문제가 생겼다는 걸 감지할 수 있었다. 최태식의 방으로 뛰어갔다. 방문을 열자 최태식이 배를 움켜쥐고 차디찬 마루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의료과가 됐든, 외부 병원이 됐든 당장 진료를 해야 할 상황처럼 보였다. 허리에 차고 있는 TRS를 들어 통제실에 비상호출을 했다.

[통제실 3동 하 18방에서 응급환자 발생했습니다. 직원 출동 바랍니다.]

[확인했습니다. 통제실에서 알려 드립니다. 현재 3 동하 18방 응급환자 발생. 직원들은 출동 바랍니다.]

무전을 날리고 몇 분 지나자 직원들이 스트레쳐카를 밀고 방 입구에 도착했다.

"최태식 씨 정신 차려봐요. 의료과 갑시다."

"아... 아..."

최태식이 배를 움켜잡고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었다. 얼굴에서 흐르는 식은땀이 윗옷을 적셨다. 복통으로 몇 달 동안 고생 해서인지 움푹 파인 볼이 심각한 환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출동한 직원들과 주형은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최태식을 스트레쳐카에 옮겨 실었다. 악독하게 행동하는 그의 존재가 커 보였는데 들었을 때 몸이 생각보다 가벼워 주형은 놀랬다. 

"최태식 씨 의료과 진료해 보고 상태가 좋지 않으면 외부병원으로 나갈 테니 조금만 참아 보세요"

주형이 움직이는 스트레쳐카에 누워있는 최태식의 손을 잡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곽태성을 보며 흥분해 있던 그였지만 고통스러워하는 최태식을 보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 부장님. 고맙습니다."

최태식의 입에서 신음 소리와 함께 고맙다는 짧은 말이 새어 나왔다.

의료과 진료에서 외부병원으로 나가라는 의료과장의 소견이 나왔다. 보안과에서 응급환자이송팀을 꾸려 구급차로 외부병원 응급실로 달렸다.

시간이 흘러 폐방시간이 되었다. 외부병원 진료를 나갔던 최태식이 휠체어를 타고 사동으로 돌아왔다. 고통은 없어 보였지만 얼굴 표정이 어두웠다. 최태식이 힘없는 목소리로 주형에게 인사를 건넸다.

"부장님 진료 다녀왔습니다."

독기가 서려있던 최태식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진료 잘 받고 왔어요?"

"진료는 잘 받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하하"

최태식이 말을 끝내고 허탈한 듯 웃었다.

"결과가 좋지 않다니, 무슨 말이에요?"

"암이랍니다. 위암"

"암이라구요?"

"네. 그것도 말기라고 하네요"

"아..."

예상 밖의 대답에 주형이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벌 받았나 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그... 그래요"

평상시 최태식의 몸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위암 말기라는 말에 주형은 당황스러웠다. 단순히 최태식이 불쌍해서만은 아니었다. 배가 아프다고 고통스러워할 때는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가 저지른 범죄를 생각하면 다행이었다.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죄를 지었고, 교도소 안에서도 자해를 하는 등 인간 이하의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정의가 사라졌고, 신은 죽었다고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그 악인이 위암 판정을 받아 얼마 살지 못할 거라는 결과에 신은 아직 살아 있구나라고 여겼다.

그러면서도 교도관이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잊어버리고 따듯하게 손을 잡아 줄 때 주형도 그 순간은 자신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럴 땐 업무니까 하고 흘려 넘겨 버렸다. 그래야 온전한 정신으로 그들을 대할 수 있었다. 

순간 사동의 곽태성이 떠올랐다. 곽태성도 최태식과 같은 신의 처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었다. 최태식보다 더 

비참하게 죽어가길 바랐다. 하지만 cctv 모니터에 보이는 곽태성은 희희낙락 거리며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꿈과 현실은 너무 달랐다. 사동을 벗어나기 전까지 매 시간 시간이 지옥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어떻게 근무했는지 모르게 퇴근 시간이 되었다. 

주형과 근무 인수인계를 끝낸 야간 근무자가 담당실의 모니터로 수용자의 동태 관찰을 했다. 

13실 곽태성이 좁은 독거실에서 푸셥을 하는 등 운동을 하고 있었다. 교도소 수용자는 매일 1시간 이내의 운동이 보장되지만 그 운동은 직원이 허락하는 시간에 교도소 내 운동장에서 하게 되어있다. 사동 안에서는 개인적인 운동이 금지되어 있다. 곽태성은 규율을 위반한 체 옷을 벗고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근무자는 방 앞으로 갔다.

"1300번 곽태성 씨 방에서 개별 운동 금지 되어 있는 거 몰라요? 운동하지 마세요!"

"쳇, 깐깐하게 구네. 알았습니다."

곽태성은 근무자의 계급장을 쳐다봤다. 어깨에 이파리 두 개가 올려져 있었다. 9급, 교도라는 뜻이었다. 바로 퉁명스럽게 말대꾸를 했다.

"옷도 입으세요. 취침시간 전까지는 복장을 단정히 하고 있어야 합니다. 빨리 입으세요"

야간 담당도 곽태성의 기에 눌리지 않고 바로 지시했다.

"더워서 그러는데 좀 봐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빨리 입으세요"

"수용자는 인권도 없습니까. 더우면 벗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본인이 운동하다 더워서 벗은 걸 가지고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요. 그리고 인권이라고 했어요?"

"네. 인권이요 인권. 죄짓고 교도소 들어오면 사람도 아닙니까?"

"와......"

근무자는 어이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죄 없는 여고생을 강간하고 잔혹하게 살해한 살인범이 교도소에서 인권을 찾고 있었다. 그것도 옷을 입으라는 교도관의 정당한 지시를 거부하면서 말이다. 

사회에서 묻지 마 칼부림 사건이나 잔혹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은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가해자를 잡으려고 노력하고 재발 방지 위해 신경을 쓴다. 언론과 대중은 살인자를 인간이 아닌 괴물로 취급한다. 그리고 검거되어 교도소에 들어가면 고통스럽게 죗값을 치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악독한 범죄를 저지른 잔혹한 살인마에 미치광이 일지라도 교도소에 들어간 순간 인권을 보호해 주어야 할 사회적 약자가 되어 버린다.

한마디로 국가 공권력에 의해 보호되어, 교정교화 한 후 사회에 다시 보내줘야 할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가 어떤 범죄로 들어왔다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의, 식, 주부터 감기가 걸려 먹는 작은 감기약 한 알까지 국가가 챙겨줘야 하는 약자가 된다. 만약 그러지 못해 수용자가 소송이라도 하면 국가는 국가배상을 해줘야 할 확률이 높다.

그뿐만이 아니다. 담당 교도관이 수용자에게 사소하게 반말이라도 해 수용자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낸다면 인권위로부터 권고를 받을 수 있다. 

요즘의 수용자들은 정해진 운동시간에서 1분만 부족하고, 정해진 부식에서 1g만 부족해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거나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한다. 차라리 이 정도면 귀엽다.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무기수나 사형수가 소란을 피워 제압하는 과정에서 강제력을 행사해 팔이 부러졌거나 어디 한 곳이라도 다쳤다면 바로 과도한 강제력 행사로 경찰에 고소를 한다. 차라리 이렇게 다치기라도 했다면 이해라도 된다. 

간사한 수용자들은 수용생활의 편의를 위해 자신들이 원하는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정보공개 청구 해 근무자를 힘들게 한다. 

3년 치 수용자 복지 예산 책정과 집행 내역, 수용자 부식물 사용내역과 폐기내역, 본인의 이송내역과 정보공개 청구 내역 등 을 요구한다. 

건전지나 칫솔을 먹거나 흉기로 배를 그어 자해를 함으로써 교도관들을 괴롭히는 것은 옛날 방식이라고 여겨진다. 그렇다고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수용자들은 교도관을 괴롭히거나 길들여 자신들이 편하게 수용생활하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처럼 잔혹한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들어오기 전 악마처럼 여겨지는 사람이 교도소 안에서 법의 테두리에서 사회적 약자가 되어 살아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시민들은 잘 알지 못한다. 굳이 많은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뉴스에서 교도소에 들어가고 싶어 범죄를 저질렀다는 기사를 종종 접하게 될 때 현재 대한민국의 교도소가 얼마나 편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곽태성도 조금씩 그 발톱을 내보이고 있었다. 


[아직 살아있습니다. 끝까지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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