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신발 한 켤레......

by 효라빠

신발장을 열어보니 낡은 신발 한 켤레가 우두커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랜 시간 내 발에 맞춰 많은 길을 함께했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바람맞으며

그 길이 평탄한 평지가 아니고 울퉁불퉁한 비탈길 일지라도

내 발을 감싸 안으며 내 길을 안내했던 낡은 신발 한 켤레


새 신발이 들어와 자기 자리를 가져갔을 때도

아무 말 없이 바보처럼 제 자리를 내어주었고

새 신발을 못 신을 때 한 번씩 꺼내 더라도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던 낡은 신발 한 켤레


첫사랑 그녀를 만날 땐 깨끗하고 매끈한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나와 함께 세월의 흐름을 같이 맞이해서

몸 한쪽에 갈라짐이 주인의 주름처럼 한없이 깊고

낡은 신발끈은 주인의 색 바랜 머릿결처럼 초라하게 보이는 낡은 신발 한 켤레


나도 누군가에게 낡은 신발 한 켤레가 되어 주고 싶다

옆에서 향기를 풍기는 새로움은 못주더라도

값비산 명품처럼 있어 보이게는 못해주더라도

한없이 편하게 한없이 안락하게 한없이 따뜻하게 안아 줄 수 있는


낡은 신발 한 켤레 같은 사람이 되어 주고 싶다.



[시 짓는 메모]

우연히 신발장 속에 있는 오래된 신발을 보게 됐습니다.

자주 신지 않는 신발이라 새 신발들 속에서 지저분하게 보여 버릴까 하고 집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이 신발이 오랫동안 나를 정말 편하게 해 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낡은 신발과 함께 했던 추억도 떠올랐습니다.

그때부터 그 신발은 나에게 단순한 신발의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나를 가장 편하게 해 주었던 친구 같았습니다.

나를 위해서 험한 길, 더러운 길 아무 불평 없이 같이 가 주었고

나를 돋보이게 만들어 주기도 했던 신발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누군가에게 이 신발 같은 존재가 되어 준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같이 있을 때 편하게 해주는 사람

같이 있을 때 돋보이게 해주는 사람

같이 있을 때 사랑스럽게 해주는 사람

어쩌면 내가 이 낡은 신발보다 못하는 존재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좀 더 따뜻하고 좀 더 편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요즘 sns에는 명품 신발, 한정판 신발, 값비싼 신발 사진들이 넘쳐 납니다.

그보다도 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해 주었던 낡은 신발 한 켤레가

더 소중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이 시를 지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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