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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솔 Aug 31. 2022

맥주 맛을 알아버렸는데


여름에 참기 힘든 것은 강렬한 햇빛 아래 살 속이 타들어가는 듯한 찌는 더위도, 착하고 느긋한 사람을 성격파탄자로 만드는 미친 습기도 아닌 바로 맥주다. 특히 한 여름밤에 마시는 맥주가 그렇다. 한 여름밤에 마시는 맥주란 그저 목을 시원하게 해주는 단순한 알코올음료가 아닌 그 이상의 위대한 무언가를 지녔다고 해야 하나. 목구멍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마셨으나 심리적 갈증까지 해소시켜주는.. 그런.. 존엄한 존재.. 가히 영혼의 해소제라고 표현하고 싶다. 물론 술을 싫어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별로 와닿지 않는 말 일 수 있지만, 또 이렇게 말하면 꼭 내가 술 없이는 못 사는 애주가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그 정도로 술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고 (진짜로) 심지어 맥주는 좋아하기보단 싫어하는 쪽에 더 가깝다. (엥? 영혼의 해소제라며.)




일단 맥주는 너무 배부르다. 몇 입만 마셔도 금방 배가 차 버리는, 취하기도 전에 배부터 부르는 술은 뭔가 왠지 모를 괘씸한 구석이 있고, 탄산 때문인지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배가 불러 꽉꽉 터질 것 같은 그 기분 또한 굉장히 싫어한다. 게다가 화장실은 얼마나 자주 들락날락해야 하는지..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방광이 저릿저릿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 그렇다. 이쯤 되면 ‘뭐야 쟤 맥주 좋아한다더니 왜 싫은 이유만 늘어놔?’ 싶겠지만 결국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맥주’가 아니라 ‘한 여름밤의 맥주’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맥주를 싫어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에 맥주를 참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첫 입의 순간에 있다.




하지만 그 첫 입의 순간을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선 어떠한 작은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하루 종일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당장이라도 씻어내고 싶은 욕구를 참고 맥주를 구매하러 가야 한다. 집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맥주가 진열된 냉장고 앞에 서서 예리한 눈빛으로 맥주를 스캔해 그날의 기분에 끌리는 맥주를 골라 구입한다. 집으로 들어가는 여전히 더운 여름밤 길, 갓 냉장고에서 꺼내 차가운 맥주를 목에 대며 ‘으, 차가워’와 ‘으, 시원해’라는 앓는 소리를 번갈아가며 집에 도착한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차가우리라 짐작되는 냉장고 가장 안쪽에 오늘의 맥주를 잠시 보관해둔다. 맥주는 얼음장처럼 차가워야 제맛이니깐. 그리고 당장 화장실로 직행. 시원한 물로 더러운 몸을 구석구석 씻어내고, 물기를 잘 닦아 보송보송 해진 피부와 바디워시 향이 폴폴 풍기는 개운해진 내 얼굴과 몸에 로션을 바르고, 선풍기 앞에 앉아 남은 열기와 하루의 피곤한 기운을 날려 보낸다. 그렇게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을 즘 나는 다시금 마음의 흥분을 침착하게 일으킨다. 바로 내가 참지 못하는 그 첫 입의 순간! 그 순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타이밍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냉장고 가장 안쪽에서 차갑게 냉장된 맥주를 꺼내 다시 선풍기 앞으로 돌아와 앉는다. 세상 가장 차가워진 캔 맥주를 따는 그 순간, ‘탁’ 하고 까지는 탄산의 경쾌한 소리와 함께 맥주가 목구멍으로 벌컥벌컥 넘어가는 그 순간, 맥주들이 자글자글 내 식도를 타고 위장으로 넘어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지는 그 순간! 마치 몸속에 차가운 혈관이 새롭게 뚫리는 것 같은 그 기분. 도대체 이 순간의 기분을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역시, 나는 술 자체를 사랑하기보단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특히 여름밤에만 허용되는 이 첫 입의 청량한 순간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나는 첫 입을 가장 많이 들이키는 편이다. 그렇게 먹으면 청량함이 온몸에 가득 분산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맥주는.. 첫 입을 제외하고 그 뒤로는 별로 맛이 없기도 하고..)




선풍기가 내 앞에서 돌돌돌 돌아가고, 맥주 속 알코올들이 내 몸 안에서 돌돌돌 돌아다녀 취기가 살짝 올라올 즘, 흐흐 거리는 미소와 함께 문득 그런 의문이 스쳤다. 내가 언제부터 맥주를 이렇게 꿀떡꿀떡 잘 삼켰지? 내가 처음부터 이렇게 잘 마신 건 아닌데? 오히려 처음 마실 땐 맛도 뭣도 모르고 들이켰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여름만 되면 맥주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어가며 머릿속에 물음표를 가득 채워갈 즘 나는 내 인생의 첫 맥주, 그것도 최초의 첫 입인 순간을 기억해 냈다.




그건 바로 초등학생 때. 내가 맥주를 처음 마셔본 것은 대략 11살 정도로 추정되는데, 그 나이 때부터 술을 물처럼 마시는 고주망태였던 것은 아니고.. 저녁만 되면 한 캔, 두 캔씩 마시던 엄마의 맥주를 뺏어 찔금 삼킨 게 내 인생의 첫 맥주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뱉은 말은 딱 이랬었다. ‘우웩, 오줌 맛..’ 호기심에 못 이겨 들이킨 내 인생 첫 맥주의 강렬하고도 짧은 한 줄 평. 우웩, 오줌 맛. 어떤 특별한 맛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오물 맛이 날 줄이야 상상이나 했었을까? 물론 오줌을 먹어본 적은 단연코 없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먹기에 오줌은.. 아니 맥주는 그런 맛이었던 것이다.




오물을 삼킨 기분에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엄마는 도대체 이걸 무슨 맛으로 먹어? 하며 맥주잔을 넘겼을 때, 엄마는 애들은 절대 모른다는 어른들만의 그 특유한 (가소로운) 미소를 지으며 ‘어른이 되면 이게 맛있어, 너도 이 맛을 알면 어른이 된 거야’라고 했다. 어른이 되면 맥주가 맛있다고? 오줌 맛 같은 게 맛있다며 밤마다 ‘키야, 좋다.’ ‘키야, 시원하다’ 거릴 날 생각하니 엄마의 즐거워하는 표정은 너무 기이했고, 역시 어른들의 세계는 알 수가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흘러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여름만 되면 맥주를 참지 못해 밤이면 밤마다 선풍기 앞에 앉아 키야는 무슨 ‘아오, 개 맛있네’라며 걸쭉한 대사까지 치는 나를 마주하게 된 지금.. 심지어 즐겁고 흡족한 표정으로... 뭐야? 지금 내 기분 왜 이래? 익숙하다 못해 따로 생각할 필요도 없던 맥주를 마시는 내 표정과 모습에서 생소하다 못해 겸연쩍은 구린 기분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마치 11살의 내가 31살이 된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달까. 지금 내 앞에는 맥주도 있고.. 그 앞에 11살의 나도 있고.. 이 쑥스럽고 어색한 기분은 과연 삼십 대가 된 나의 몫일까? 아니면 내 기억에 소환되어 앉아 있는 11살의 내 몫일까? 기분의 주인을 정하지도 못한 채 31살의 내가 질문을 던진다. 이제 맥주 맛을 알게 됐구나? 응. 너무 맛있잖아. (그래서 문제잖아.) 연이어 11살의 내가 재차 묻는다. 그럼 이제 어른이 된 거겠네?라고. 뭐? 첫 번째 질문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는데, 두 번째 질문엔 대답은커녕 목구멍이 턱턱 막혀서 벙어리가 되는 기분이다. 어른이 됐냐고? 몰라 그게 뭔데.. 1년 아니 10년 안에만 대답할 수 있어도 성공한 삶일 것 같다.




하지만 먼 기억 속의 엄마는 분명히 맥주 맛을 알면 어른이 된 거라고 했는데, 왜 나는 맥주 맛만 알고 어른은 되지 못한 걸까? 그때 그 말은 그저 어른들이 애들한테 하는 얄궂은 거짓말 같은 거였을까? 거짓말이 아니고 진심이었다면? 그럼 그 당시 엄마는 맥주 맛을 알고 있는 진정한 어른이었을까? 그럼 엄마한테 어른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어보면 답을 좀 알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거 물어보면 결혼이나 하라고 할 것 같다. 어른이 되고자 결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니, 근데 어른이 되려고 결혼을 해? (굳이?) 결혼했다가 이혼하면? 그건 뭐지? 어른 됐다가 어른 취소야? 답도 의미도 없는, 세상 부질없는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 쌓여 괜히 맥주까지 역하다 느껴질 즘 ‘그냥 사는 게 오줌 같지’라는 말이 목구멍에 턱 걸린다.




그래, 솔직히 말해서 사는 거 개 같고 더러운 거 투성이잖아. 전부 다 오줌 같고 똥 같지 않아? 전 직장에서 만났던 그 과장 말이야 진짜 일 처리가 똥 같았는데.. 그 옆 직원은 어떻고.. 전에 잠깐 사귀었던 걔도 장난 아니었는데.. 입만 열면 말도 안 되는 개 똥 같은 소리를 줄줄... 아 잠깐, 내 대학 성적도 개똥 같긴 했다. 푸하. 근데 어디 그것뿐일까. 손에 오줌 묻은 것 마냥 찝찝한 관계들이 주를 이루고, 부당하고 억울함을 표하기도 전에 그저 똥 밟은 거라며 꾹 참고 넘겨야만 살 수 있던 초라하기 그지없는 사회생활들이 많다 못해 똥물이 되어 넘쳐흐른다. 손에선 오줌 냄새가 나고, 발에선 똥 냄새를 풍기며 어쩌면 나도 그렇게 오줌처럼 똥처럼 살던 때가 있을지도 모르지.




정말 돌이켜보면 좋기만 했던 시간보단 오줌 같고 똥 같은 사람들이, 오물같이 더럽고 끔찍한 상황들이 그리고 그것보다 인정하기 더 어려운 똥 냄새처럼 구린 스스로가 내 인생에 더 많이, 더 다양하게 골고루 박혀있다. 맥주에서 더 이상 오물 맛이 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진짜 오물 같은 맛이 뭔지 알게 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엄마가 말했던 맥주 맛을 알게 되면 어른이 된다는 말은 결국 이 지점에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뭔지도 모르면서 어른인 채 살아가야 하는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그 고달픈 삶에서 내가 쉽게 삼킬 수 있는 건 그저 맥주라서, 내 힘듦을 삭일 수 있는 것 또한 이 여름밤의 차가운 맥주뿐이라서. 고작 맥주뿐이라서......




맥주라도 있어서 다행인지, 맥주뿐이라서 화가 나는 건지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올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잘 살아보고자 고군분투하며 사는 나도 다시 발견해 본다. 살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을 꾹 참아 견디고, 당장이라도 뱉어내고 싶은 말들 대신 웃어넘길 줄도 아는 나. 오줌똥 보다 못한 인간들이 내 밥줄을 가지고 치사하고 더럽게 굴 때마다, 내가 좋은 사람은 못돼도 저 인간처럼 더럽고 치사하게는 살지 않겠다고 매일 다짐하는 나와 어떻게든 깨끗하고 단정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나. 분노와 우울로 부글거리는 버거운 감정들을 소화시켜내며 살아가는 내가 내 삶에 분명하게 있다. 그것도 아주 뚜렷하게 살아내고 있다.




20년 전 맥주 맛을 알면 어른이 된다는 엄마의 말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맥주가 맛있다는 것 외에 그 어떤 것도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받아들이기 싫은 일도 받아들일 줄 알고, 이해하기 힘든 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질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 속에 있는 것 아닐까? 삶이 꼭 내 마음대로만 되어야 한다는 법 또한 없는 것이니까. 더 나아가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건 똥오줌같이 더러운 세상이, 지저분한 인간들이 나를 아무리 더럽게 한다 해도, 그 더러움에 같이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매일 같이 생각을 씻어내고, 마음을 닦아내는데 힘을 쓰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역시나 그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좋은 어른이 되기엔 한참 먼 사람이겠지만 적어도 어른이 되어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돌돌돌 돌아가는 선풍기 앞에, 여전히 11살의 내가 앉아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 ‘어른은 아닌데 어른이 되려고 노력은 해.’ 그제야 11살의 내가 흐릿하게 사라진다. 겸연쩍은 기분 대신 청량함을 가득 가진 채로.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31살의 나. 나 역시 괜찮아진 기분으로 남은 맥주를 입에 털어 넣는다. 오늘 맥주의 끝 맛은 첫맛만큼이나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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