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온 2월 중순. 녹초가 되어 내 방에 옷을 갈아 있고 가만히 내 방 책상에 앉아 있었다.
“하, 내가 이렇게 체력이 바닥인 줄 몰랐네.”
고교 3년동안 [먹고, 공부하고, 자고]를 무한 반복했더니 보통 체력보다 약한 거 같았다. OT에서 돌아오는 버스타고 오는 것도 힘들어서 거의 반 기절했었다.
OT를 다녀온 건 후회가 되지 않았다. 다양한 지역 출신 학생들이 있음을 알았고 새로운 학교 선배들도 알았지만 아쉬운 건 학사일정 같은 거 알려준 거 같은 데 제대로 숙지를 못했다는 거다.
“이런, 대학생활이 어떤 건 지 잘 알지도 못하고 집에 와 버렸네. 학사 일정이라는 게 뭐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으로 ‘학사’라는 말이 긴가민가했다. 그래도 내가 그렇게 바라지 않던 답답한 고교생활에서 벗어났다는 게 더 좋았다.
‘이제 이 갑갑한 고장에서도 해방이다!!!! 공부하느냐고 잘 돌아다니지 못했지만 그래도 부모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
이 생각에 나는 기분이 한 껏 좋았다. 의자에 앉은 채로 빙그르르 한 바퀴 방을 돌았다.
‘아! 근데 기숙사랑 수강신청 해야 하는 거지? 이거 어떻게 하는 거더라? 깜박할 뻔했다.’
기분이 좋았다. 19년 평생 같이 산 부모님과 떨어져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소위 내 목표를 달성 했다는 거다!!! 고교 3년 만년 꼴찌가 뭐가 그리 대수야~ 대학가서 졸업장 잘 받으면 되지~ 고교 성적이 인생의 전체 성적이 아니예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잘 버텨준 내 자신에게 칭찬을 듬뿍 했다.
그래서 컴퓨터도 배웠겠다~ 대학사이트에 접속해서 하나씩 학사과정에 대해 살펴보며 정보를 알아보고 그 와중에 OT때 알게 된 동기들과도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폰을 바다에 빠진 바람에 바로 연락을 취할 수는 없었다. 휴대폰 대리점에 갔더니 내부가 삭아서 새로 폰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난감했지만 주소록은 옮길 수 있다고 해서 새 폰으로 주소록을 옮겼다. 그 후 알음알음 연락을 하며 정보를 교환하며 보냈다. 폰은 삼성 폴더폰으로 새로 했다. 기존에 했던 것도 막대폰으로 삼성폰이긴 했지만 방금 한 것보다는 저렴했다. 약해서 쉽게 생채기 나고 모서리가 부서지기도 했다.
방금 새로 한 폰의 모양은 하얀 색의 입다문 조개 모양을 연상시키는 앙증맞고 귀여웠다. 이 하얗고 앙증맞은 폴더폰으로 대학 4년을 같이 하니 삼성폰의 튼튼함을 새삼 많이 느꼈다. 오밀조밀하게 폴더 안의 키패드 누르는 느낌도 톡톡했다. 그래서 쉽게 폰을 바꾸지 못한 것도 있다. 내 돈으로 하는 것보다 부모 돈으로 폰을 바꾸는 거라 눈치가 조금은 보였다.
나는 거의 부모님에게 거의 죄여서 살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모든 걸 허락을 받아야 살 수 있었다. 용돈이 따로 없으니 친구들과 떡볶이 사먹는 것도, 문제집 하나 사는 것도 다 그 때, 그 때 돈을 타서 썼어야 했다. 이제….. 대학을 가니, 해방이다!!!
휴대폰을 하고 학교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해서 공지사항을 훑어 보았다.
공지사항에 수강신청 시간과 기간이 나왔다. 공대, 인문대, 사회대의 각각 수강신청 기간이 달랐다.
[2000년 2월 24일, 25일 오전 9시~18시 인문대 수강신청기간.]
이라고 적혀 있었다. 장소도 공대에서 이뤄지는 지 그 쪽으로 오라고 적혀 있다. 그럴려면 시간표를 만들어야했다.
“아! 내가 얼마나 고대했던 순간인가!! 학교에서 짠 시간표가 아니라 내가 짜는 시간표라니!! 너무 좋아~ 꺅!”
방에서 혼자서 좋아라 넌스레를 떨며 학교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수강해야 할 과목을 찾아서 보고 시간을 맞춰 보았다.
따르르르르~
“여보세요? 아, 수정아. 왜?? 응? 그래? 그러면 문자로 하자.”
OT때 새로 알게 된 수정이라는 동기다. 여자고 서울 어딘가에서 산다고 했다. 여드름이 살짝 낀 얼굴에 안경을 썼다. 나도 안경을 썼는데 좀 뚱뚱하지? 이번엔 다이어트 성형도 해 보리라!
전화한 건 여러명이서 같이 수업을 듣자고 연락을 한 거다. 그래서 문자로 연락을 취하며 서로 시간을 맞춰 3과목을 듣기로 했다. 여기에 남자학생도 꼈다.
‘OT가 이럴 때 좋구나. 친구들을 미리 알 수 있어서 말이야.’
신났다. 그래서 시간표를 장장 3시간에 걸쳐서 짰다.
“도대체 뭘 하길래 3시간 동안 휴대폰을 못 놓고 뭘 그리도 끄적여?”
곁에서 지켜 보셨던 엄마의 한 마디.
“어, 시간표 짰어. 같이 수업을 듣자는 친구들도 있어서 시간도 맞춰보고 내가 듣고 싶은 수업도 짜고 시간 맞추느냐고. 히~ 나 이런 거 해 보고 싶었는데 신나.”
나의 신난 표정을 보고 엄마는 씨익 웃으면서
“네가 재미가 있음 된 거지 뭐. 시간표는 다 짰어?”
“응, 이제 수강신청 날에 미리 와서 대기 하는 게 좋다고 해서 전날에 와서 미리 진쳐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있었어.”
“뭘 전날까지 가. 9시 시작이라니까 9시에 도착으로 해서 가도 학생들 없을 거야.”
“아니야, 엄청 수강신청이 치열하대. 신청 인원이 100명이면 그 안에 못 들잖아? 시간표가 엉망이 되는 거야.”
“못 들 이유 없으니까 천천히 가.”
아니라고 미리 가야 한다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엄마는 말을 막으셨다.
만든 강의시간표를 보면서 뿌듯했던 나. 꽉 막힌 고교 생활에서 숨통이 트는 기분을 만끽했다. 그런데 정말 수강신청날 괜찮을까?
당일. 날씨는 2월의 꽃샘추위라고 해야 할까 매우 쌀쌀한 늦겨울 날씨였다. 이제 곧 봄이 오는 데 막바지 추위가 왔다.
“꽁꽁 싸매고 가. 엄마랑 아빠도 같이 가자.”
그렇다. 난 갓 신입생일 때 시외버스를 탈 줄 몰랐다. 그래서 부모차를 타지 않으면 어디에도 못 가는 바보 이기도해서 이날 전날 밤에 못 가고 당일 아침7시에 출발을 했다.
“이도 이른 거야. 봐라? 학생들 없지?”
그러나 그 예상은 과감히 빗나갔다. 입이 턱 벌어지게 2천명이 되는 많은 학생들이 운집해 있는 모습이였다. 정말 놀랐다.
“왜….9시도 되기 1시간 전인데 이렇게 순식간에 많은 학생들이 몰린거야?”
혼잣말을 했다. 같이 온 부모님도 놀란 모습이였다.
“야~ 수현아!! 여기야? 왜 늦게 왔어? 난 어제 와서 자리 잡았는데~”
태석이라느 남학생이 나를 부른다. 나는 다가가 그의 간밤에 지낸 자리를 볼 수 있었다. 많은 재학생과 신입생들이 간 밤에 노숙을 했다고 했다.
“아니, 8시인데 이게 늦은 줄 이야. 제대로 수강신청은 할 수 있으려나.”
“할 수 있어. 서버만 다운 되지 않기만 하면 돼.”
옆에서 듣던 재학생 선배가 넌지시 일러준다. 엄마와 함께 아빠는 외할머니댁에서 기다리겠다며 자리를 떴다.
그후 40분을 더 기다려 드디어 수강신청을 위한 문이 열렸다. 공대 입구서부터 긴 줄을 이뤘던 줄들이 차례대로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거대한 뱀이 몸을 꿈틀대며 움직이는 모습 같았다.
“자 천천히 옆사람 치이거나 넘어지지 말고 질서에 맞게 컴퓨터 실에 입실해요~”
진행요원으로 나선 조교님들의 우렁찬 주의를 들으며 차례를 기다렸다.
내 손에는 며칠에 걸쳐 만든 시간표를 적은 쪽지가 들려 있었다.
‘제발, 내가 만든 시간표대로 되라.’
내가 컴퓨터 실로 가까이 갈수록 컴퓨터실의 탄식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이 수강하려 수업이 20분만에 마감되고 해 버려서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다시 수강시간표를 고치며 머리를 쥐어 뜯는 남학생도 몇 보았다. 여학생도 머리카락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그렇게 30분을 더 기다려 내 차례가 되어 입실해서 컴퓨터에 앉아 접속되어 있는 수강신청사이트에 아이디 입력하고 수강신청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내 수강시간표에서 이미 마감이 되어 수정해야 할 과목은 없었다. 순조롭게 수강신청을 하고 2번 더 확인 후에 수강신청 완료 버튼을 클릭했다.
‘제대로 했겠지? 이거 불안하지만 엎질렀으니 이젠 어쩔 수 없다!’
불안한 마음을 뒤로 하고 입실과 반대쪽의 퇴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 홀가분해. 다들 어두웠던 기색은 없고 가벼워진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문자로 서로 연락해서 친해진 사이가 된 동기들을 만났다. 태석, 동규와 수정, 하얀이였다. 이렇게 5명이서 OT이후에 첫 만남이라 근처 분식집에 모여서 그 간의 어떻게 지냈는지, 대학생활의 기대를 한 껏 고조시켰다.
분식집에 나와서 친구들과 헤어진 후, 나는 외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거기서 잠깐 외할머니를 만나 인사를 나누고 부모님과 함께 다시 집인 원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