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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민 Jun 29. 2023

악순환을 끊어내자

CRPS 환자의 투병 에세이 25

몸이 건강한 사람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양질의 식사를 하고 몸에 좋은 생활습관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반면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아진다. 밥을 먹기도 힘들어 대충 먹거나 먹지 않게 되고, 수면 사이클이 깨지는 등 건강한 생활에서 멀어지게 된다.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건강한 사람들도 건강을 지키려 애쓰는데
환자인 나는 더 애써야 한다.

내가 지니고 있는 투병 모토 중 한 가지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당연함을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통증 호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치료에 집중하다 보면, 그 외의 것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상황이 발생했다.

병원에서 직접적인 치료를 받는다면 간접적인 치료는 스스로 챙겨나가야 했다. 건강을 되찾기 위해 생활 속에서 노력했던 부분을 크게 4가지로 나누어 말해보고자 한다.


1) 식사

아프기 이전부터 나는 식욕이 없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하루 칼로리 권장량을 대체할 수 있는 알약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할 만큼 먹는 것을 귀찮아했다. 건강을 되찾기 위해 이런 모습은 바꾸어야 했다.


몸이 아프면 입맛이 없다. 더욱이 CRPS 환자는 통증이 극심해 몸이 최고조의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음식을 먹어도 몸에서 흡수하지 못한다. 나 또한 식사 후 매번 소화제를 먹거나 바로 화장실에 가야 했다.

약 부작용으로 식욕저하 및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매운 음식을 몇 년간 단 한입도 먹지 못했고, 후각이 예민해져 못 먹는 음식들이 많아졌다. 침의 분비량마저 조절되지 않아 음식을 삼키는 것이 힘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점차 음식 먹는 행위가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이 되어 버렸다. 병원에서 검사 등의 이유로 금식을 안내받으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매일 수십 개의 약은 먹으면서 밥을 먹지 못하자, 식사시간마다 엄마와의 신경전이 오고 갔다. 엄마와 싸우지 않기 위해 내 앞에 놓인 밥을 자극적이지 않은 반찬들과 같이 씹어 삼켰다. 밥알이 모래알처럼 느껴져 밥알을 세어가며 억지로 먹어야만 했다.


건강한 사람들은 물론 암 환우 등 다른 질병을 가진 환우들은 '식사'에 대해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유독 통증환자 중 식사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는 분은 드물었다.

병원에서 CRPS 환우들을 만나 식사하셨는지 물어보면 10명 중 9명은 먹지 못했다고 말씀하신다. 통증을 가라앉히는 것이 우선시되어 식사까지 챙길 여력이 되지 않는 것이다. 환자가 건강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들은 많지만 기본 중의 기본이 ‘식사를 챙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나마 식사는 환자의 노력 여부에 따라 해낼 수 있는 영역이다.


2) 수면

수면 시간 및 수면의 질은 통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문제는 그 어떤 약으로도 CRPS의 통증을 누르지 못해 잠을 못 자는 상황이 벌어진다.

식사는 노력과 의지로 어떻게든 이루어낼 수 있는 반면, 수면의 영역은 노력으로 조절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아프기 이전 나는 침대에 눕기만 하면 바로 잠에 들었다. 한 번 잠이 들면 그다음 날 아침까지 깨어본 적이 없을 만큼 수면에 대해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다.

아프기 시작하자 '잠드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이 되어버렸다. 몇 날 며칠 통증으로 잠을 못 자 아무리 졸려도 약의 도움 없이는 짧은 낮잠마저 잘 수 없었다.


CRPS 환우들끼리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잠은 죽어서나 자는 거야"

아무리 많은 약을 먹어도 통증 탓에 잠을 잘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었다.


감사하게도 통증이 조금씩 호전되자 몇 년 만에 1시간, 2시간씩 통잠이라는 것을 다시 자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도 약을 먹어야지만 잠에 들 수 있고, 매일 수면의 질과 시간은 일정하지 않다.

잠은 의지대로 조절할 수 없지만, 일정한 시각에 누워 몸을 이완시키는 등 양질의 수면을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수면 부족으로 인한 악순환을 끊어내야 통증 호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3) 감정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고 한다. 특히나 CRPS 환자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통증이 즉시 악화된다. 통증이 악화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매일 감정을 관리해야 했다.

나는 태생적으로 긍정적이지만, 동시에 예민한 사람이다. 최대한 모든 상황에 무디게 반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그래. 그럴 수 있어


예상한 상황과 다르게 흘러갈 때마다 이 주문은 나를 진정시켜 주었다. 통증이 악화되어 불안감을 느낄 때마다 이제까지 버텨온 나 자신을 믿고, 충분히 잘 버텨왔다고 스스로 위로해 주었다.

감정이 쉽사리 조절되지 않을 때는 약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최대한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질병에 대한 걱정은 기분을 저조시키고 불안하게 만들며, 부정적인 기분은 또다시 걱정을 일으켰다. 이는 악순환의 굴레였다.

스스로를 하강 나선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 않으려 했다. 대비책이 필요하다면 최대한 빠르게 결정 내린 후, 오늘을 살아가는데 집중했다. 


4. 기타 생활영역

아프다 보니 수많은 분들이 ‘통증’에 관련한 정보를 나누어 주셨다. 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담당 교수님들의 조언만이라도 꾸준히 지키고자 결심했다.

첫째, 카페인을 금하고 있다. 둘째, 통증에 도움 된다고 밝혀진 비타민 C와 마그네슘을 고용량으로 복용하고 있다. 셋째, 병원에서 처방받는 영양제 이외에는 최대한 음식으로 영양분을 섭취하려 한다.


CRPS는 교감 신경계가 비이상적으로 흥분되어 있는 질병이기 때문에 교감 신경을 자극하는 행위는 가급적 피한다. 대표적으로 매운 음식을 먹으면 통증이 악화되어 잘 먹지 않는다.

반대로 부교감 신경을 자극하기 위해 스트레칭 등 몸을 이완시킬 수 있는 행동을 생활 속에서 적용하고 있다.


이 외에도 꼭 지키는 생활 습관은 기상 후 따뜻한 물 2잔을 마시는 것이다. CRPS 통증 부위는 다른 부위에 비해 2~3도 체온이 떨어져 있다. 이 습관이 통증 호전에 영향 끼칠지는 전혀 밝혀진 바 없다.

다만 투병과정 속에서 항상 ‘득과 실’을 따진 후 나의 행동을 결정했다.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물을 마시는 것은 나에게 ‘실’이 되는 부분이 없었다. 통증 호전과 별개로 좋은 습관이기에 '득'으로 판단한 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


투병생활에 있어 중요한 것은 '지속성'이다. 다양한 것들을 시도하며 자신의 몸에 맞는 습관을 찾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거창하지 않아도 환자 본인에게 맞는 득이 되는 생활 습관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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