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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민 Jul 2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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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PS 환자의 투병 에세이 27

학창 시절부터 친구들을 놀라게 할 수 있는 2가지 말이 있다.

1. 우리 엄마 학교 선생님이야
2. 나 교회 다녀


이 말을 듣는 사람마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꼭 되물었다.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라며 웃었고, 나도 같이 깔깔거렸다.

'교사의 자녀, 교회 다니는 아이'하면 떠오르는 차분하고 얌전한 스타일 대신, 항상 왁자지껄하게 친구들과 뭉쳐 다녔다.


보이는 모습과 달리 나는 모태신앙인이다. 자연스레 대부분의 활동 반경이 교회 중심이었고, 하나님을 믿어 행복했다.

열심히 사는 이유는 하나님의 계획이 나의 게으름 때문에 달성되지 않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였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공부도 더 잘하고, 더 잘 살고, 사회적으로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다 편하게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싶었다.


아프기 전까지 나의 삶은 계획대로 술술 풀려나갔다. 마치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역시 선하시고 사랑의 하나님이 나를 참 예뻐하신다고 느꼈다.  

CRPS 투병 초창기에는 시련을 '허락'하신 것이라 믿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이 다짐은 1년도 채 안 되어 산산조각 났다.


투병기간 동안 매일같이 이 찬양의 가사를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 히즈윌의 '광야를 지나며' 일부 -


수많은 질병 중 왜 하필 '저주받은 질병'이라 불리는 CRPS에 걸린 건지 원망스러웠다. 기독교인에게 저주라니..

사람들은 말했다. 왜 소민이네처럼 착하고 교회 열심히 다니는 집안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냐고.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의 질병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 같아 마음 아팠다. 인과관계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머리로는 알지만, 끊임없이 죄를 되짚어가며 회개할 수밖에 없었다.


CRPS는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통증이 악화된다. 하나님 앞에서 울며불며 기도할 수조차 없었다.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것마저 통증 악화 요인이 되어 버렸다.

아프기 전, 성경 중 제일 읽기 싫었던 부분은 '욥기'였다. 그런데 투병 중 욥기를 읽으며 '내가 글을 잘 썼다면 이렇게 썼을 거야'라고 생각할 만큼 나의 심정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매주 주일예배를 가기 위해 모든 치료 일정 및 컨디션을 조절했다. 그럼에도 예배 도중 찾아오는 돌발통 때문에 몇 번이나 응급실에 실려갔다.

도대체 하나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화가 나기도 했다.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싶다는데 왜 단 1시간마저 허락하시지 않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나를 위해 기도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기도할 정신마저 없을 만큼 통증에 사로잡혀 버렸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대신하여 곁에서 끊임없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을 허락하셨다.

지인들부터, 교회의 교역자분들과 성도분들은 얼굴도 모르는 나를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해 주셨다.


내가 나를 포기했음에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덕분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지 않을 수 있었다. 병원 입원 기간 동안 휠체어를 탈 힘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꼭 기도실에 내려가 기도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당장 체감하지는 못하지만,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나를 위해 일하고 계시리라 믿었다.


하루라는 시간 동안 30분도 앉아 있지 못할 만큼 통증이 심했다. 2020년 연말. 절규에 가까운 기도를 하며 떼를 썼다.

“하나님 저 2021년 1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 통독하게 해 주세요. 질병에서 싸워 이겨내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제게 필요하잖아요. 이제 그만 아프게 해 달라고도 안 할게요. 제가 버틸 수 있도록 매일 하나님 말씀을 읽게 해 주세요!”


이 기도 안에는 '하나님 제발.. 하루에 단 30분이라도 앉아 있을 수 있도록 제 몸을 회복시켜 주세요. 매일 큰 사건사고 없이 하나님 말씀을 꾸준히 읽을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해 주세요. 이제 그만 응급상황이 벌어지게 해 주세요.'라는 간절하고도 처절한 희망 사항을 담은 것이었다.

이 또한 들어주시지 않을 거라는 의심을 가진 나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셨다. 1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 말씀을 읽어, 성경 1독을 하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투병기간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매일같이 거즈를 입에 물고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사람을 좋아했지만 전화 통화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 설교 말씀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잠 못 이루는 밤 동안 계속해서 찬양을 틀어놓았다. 고난을 낭비하지 않고자 했다.


가장 적합한 때에 나를 치유해 주시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때를 위해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치료받으며 재활에 임했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셨다. 나는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기적을 만드시는 분이셨다. 담당 교수님은 나의 회복을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며 놀라셨다.


나는 근거 있는 낙관주의자이다. 나의 아버지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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