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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민 Aug 10. 2023

CRPS 환자가 말하는 희망, 그리고 기적

에필로그

2018년 8월. 살면서 처음으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이라는 질병명을 듣게 되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희귀병은 평범한 청년의 일상을 완전히 멈추어버렸다.


꿈과 열정이 많았지만 질병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아픔 속에서 좌절했다. 투병 중 죽음의 문턱 앞에 놓이기도 하고, 희망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숨을 쉬며 살아있는 이 순간 자체가 기적임을 깨달았다.


지난 몇 년간 침대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검은 먹구름이 가득했지만 먹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며 사라지는 장면을 보고, 나의 아픔도 걷힐 때가 오리라 믿었다.

먹구름 뒤에는 눈부실 만큼 환한 햇빛이 숨어 있었다. 다시는 삶 속에 밝은 빛이 들어오지 않을 것만 같았지만, 이는 나만의 착각이었다.


질병을 통해 욕심을 내려놓고, 주어진 상황에 자족하며 지낼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젊은 날 창창했던 계획들이 무너져 절망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나는 하루하루를 새롭게 개척해 나갈 것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픔을 통해 드넓은 광야에 놓인 나의 삶에는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보물들이 무한하다고 믿는다.


목표를 이루며 큰 꿈을 이루어야지만 행복한 삶인 줄 알았다. 이제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관리하며,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행복을 알게 되었다.

낮은 자리에서 겸손히 지내고, 사람들을 긍휼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질병을 통해 나라는 사람에게 나타난 변화는 기적이었다.


투병기간 동안 만나는 의료진분들을 붙잡고 좋아진 사람이 있는지 애타는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현실은 암담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좋아진 환자가 있다고 대답해주지 못했다.

상태가 조금 호전되자 CRPS 환자가 회복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일지 궁금해했다.


이런 질문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안함을 잠재우기 위해 희망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찾으려 했지만, 모든 해답은 나에게 있었다.


과거의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화된다고 한다. 호전된 지금에서도 CRPS 통증은 절대 미화시킬 수 없다. 사람이 참을 수 없는 통증이고, 죽여달라고 외치고 싶은 통증이었다.

겪어야 했던 아픔과 시간은 고스란히 기억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은 선물임을 고백한다.


글을 쓰기 위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들을 세세하게 떠올리며 반복해서 교정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투병기를 작성한 이유는 CRPS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었다. 더 나아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처한 누군가가 나의 아픔을 통해 힘을 얻길 간절히 바랬다.


그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우리는 그 안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면, 기적은 반드시 우리 곁에 찾아온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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