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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성장러 김양 Jun 29. 2024

국내 최초 디벨로퍼 회사 취직

시행사에서는 무슨 일을 하나요?



저의 첫 직장 신영은 뭐든 최초가 많은 회사였어요.

국내 최초 디벨로퍼라는 회사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고, 시행사이면서도 국내 최초로 지웰이라는 아파트 브랜드까지 보유하고 있었죠.

국내 최초 부동산 디벨로퍼 회사라는 명성을 가진 신영은 제가 입사했을 당시 국내외로 사업을 확장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동백지웰이 입주를 하고 있었고, 김포지웰과 인천논현지웰 역시 성공적으로 분양 완판을 달성한 상황이었죠. 청주에서 대규모로 지웰시티 분양까지 준비하고 있었기에 앞으로의 성장이 더욱 기대되는 회사였어요. 미국에서 콘도 사업을 시작했고, 중국으로의 사업 확장을 위해 개발사업본부에서는 중국 사업을 담당하는 전문가도 채용했거든요.


신영은 당시 마케팅사업본부, 개발사업본부, 엔지니어링사업본부의 대표적인 세 개 부서가 주축을 이루고 국내에서 다양한 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부서에 변동이 생겨 개발/마케팅/상품개발 담당자가 한 팀으로 일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저는 마케팅사업본부 내 분양관리팀 사원으로 입사해서 아파트, 주상복합, 오피스텔 분양 현장만 담당했어요. 자연스럽게 신영이 주거용 상품만 개발한다고 생각했는데 개발사업본부 직원과 이야기해 보니 신영은 주거 외에도 상업, 산업단지 등 다양한 상품을 기획했다고 하더군요.


분양관리팀에서 신입사원인 저에게 주어진 주요 업무는 분양 계약 시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 및 중도금, 잔금의 입금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델하우스에서 이루어지는 현장의 계약금은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하고, 잔금은 입주 현장에서 입금 처리를 했기 때문에 계약이나 잔금 현장이 없을 때에는 대부분 본사에서 수분양자를 응대하는 업무를 담당했어요. 분양이 완료된 현장이 많아 건물이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앞으로 소유권을 갖게 될 단지에 궁금증을 가지는 입주예정자 분들이 많았거든요. 본사에는 고객센터가 따로 없었기 때문에 입금 확인이나 공사 관련 문의까지 분양관리팀에서 담당하게 되었지요. 평생 전화 응대 업무를 해 본 적이 없고, 전화 응대 업무가 저의 주 업무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얼떨결에 전화를 받고, 고객을 응대하는 것이 저의 주요 업무가 되었습니다. 공사 관련 민원으로 한바탕 소동을 벌이는 사람들의 전화를 받을 때에는 속상한 마음이 들었던 적도 있었어요.


공정 확인서를 보내 달라

내 집이  제대로 시공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으니 공사장 문을 열어달라 (엥?? 이렇게까지 한다고?)

세탁실에 세탁기가 들어가지 않는다는데 사실이냐?

이거 어떻게 해결할 거야? 대표이사 바꿔!


다짜고짜 소리치는 사람부터 쌍시옷이 들어가는 다양한 욕지거리까지, 정말 엄청난 사람들을 전화로 마주했습니다. 이런 전화를 받고 나면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콜센터 직원이 된 것 같아 한동안 넋을 놓고 앉아있게 되더라고요. 공사 관련 지식이 부족해 엔지니어링사업본부에 문의하면 대부분이 묵묵부답이었어요. 애초에 설계적으로 문제가 있는 현장은 공사팀에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던 거죠.


신입사원의 열정과 패기로 “감사합니다, 신영 분양관리팀의 000입니다”라고 인사 멘트를 날리는 게 삶의 기쁨이자 즐거운 일로 느껴졌는데 민원 전화가 빗발치기라도 하는 날에는 한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제대로 응대할 말이 없으면 하루 종일 비슷한 전화를 받고 혼자 화장실에 앉아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요즘엔 입주자 대표회의 모임 카페가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죠? 분양받은 단지에서 자그마한 이슈라도 발생하면 인터넷 카페에서 단체로 항의 전화를 하자고 논의해서 하루 종일 전화가 끊이질 않았던 적도 있었답니다. 모든 직원이 달려들어 전화 응대를 하고 욕을 먹는데도 조금이라도 전화를 늦게 받거나 놓치면 민원의 강도가 더욱 거세졌어요. 그런 날의 목표는 모든 전화를 무조건 다 받아 응대하는 것이 팀의 주요 과제가 되기도 했어요. 분양관리팀 사원이었던 저의 업무는 이 정도였고요.


제가 소속된 마케팅사업본부에는 마케팅팀도 있었습니다. 공동주택을 분양하면 투자비와 시세를 조사해서 분양가격을 산정하고, 잠재고객을 유치해서 관리하는 일을 담당했지요. 모델하우스가 오픈하기 전 분양대행사를 선정해서 성황리에 청약 및 분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끄는 팀이었지요. 개발부서에서 토지를 매입하려고 할 때 분양성이나 상품성이 있는지 의견을 나누기도 했어요. 해당 팀은 어떤 전공이든 상관없었지만 부동산 관련 전공자가 많았습니다.

마케팅사업본부에는 홍보팀도 있었는데 당시 신영은 미쉘위를 홍보 모델로 계약하고 지웰 브랜드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상황이라 홍보팀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었어요.


신영은 부동산 개발회사였기 때문에 사업성을 분석해서 토지의 매입 여부를 결정하고, 수익이 되는 상품을 기획하고, 인허가 작업과 PF 사업 등의 금융까지 담당하는 개발사업본부가 “꽃”같은 부서라고 여겨지던 곳이었어요.


<아래는 당시 개발사업본부에서 재직했던 직원의 이야기를 참고했습니다>

신영은 토지 매입 시 대규모의 공공택지를 청약해서 국가로부터 토지를 분양받거나, 토지 브로커를 통해 토지를 매입하곤 했는데요. 공공택지를 분양받아 공동주택을 건설하는 사업은 건축 인허가만 받으면 됐기 때문에 개발사업 난이도가 평이한 수준이었다고 해요.    

토지 작업이 일부만 진행되어 있거나 용도 변경 등이 필요한 토지는 완전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지구단위계획을 변경하거나 용도 변경이 필요한 토지는 공무원이 인허가를 내주느냐 아니냐에 따라 사업 진행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지난한 협의 과정이 필요했다고 해요. 공공에서 담당자가 요구하는 것도 많고, 적당한 밀당(?)도 필요한 일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공공기관과 협의가 필요한 토지의 인허가 작업은 소요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리기도 했대요.


이제 엔지니어링본부로 넘어가 볼게요. 엔지니어링본부는 상품개발팀과 공사팀이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상품개발팀에서는 외주업체가 설계해 온 개발사업의 설계 도면을 검토하고, 공동주택과 같이 분양이 필요한 현장의 모델하우스 작업을 담당했어요. 상품개발팀 직원들은 건축설계를 전공했거나, 실내디자인과 같이 인테리어를 전공한 분들로 특화되어 있었지요. 제가 근무할 당시 상품개발팀은 새롭게 분양하는 현장이 많아 대부분의 직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설계 도면을 검토하고 모델하우스 건축 및 내부 인테리어 구성 작업을 하느라 몇 날 며칠 씩 밤을 새우기도 하셨어요.


공사팀 역시 시공을 외주로 계약하기 때문에 시공 단계에서 필요한 각종 공정 관리를 담당했습니다. 공사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공사 과정 중에 체크해야 할 사항은 없는지, 미리 점검하고 관리하셨어요. 실제 시공을 하지는 않지만 공사가 스케줄에 맞게 진행되고 있는지, 현장에서 발생되는 이슈는 없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일이었죠. 그래서 해당 부서 담당자는 모두 건축시공을 전공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시공회사에 있다가 이직한 분들도 있었고요. 저 역시 건축시공을 전공했고 건축기사 자격증도 있었기 때문에 자꾸 이 부서를 기웃거리게 되더라고요. 민원 관련해서 공사팀과 논의할 일도 많았고요. 하지만 공사팀에는 여자 직원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시공회사에서도 ‘시공 현장에는 여자를 투입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존재한다고 들었는데 신영의 시공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즘에는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 같기는 합니다. 제 친구도 여자인데 대형 건설사에 입사해 시공 현장에서 근무한 친구가 있고요. 주변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공회사에서 ‘시공직’으로 여자를 채용한다는 것은 여전히 가뭄에 콩 나듯 일어나는 일인 것 같긴 합니다. 그러니 ‘여자도 00 회사에 시공직으로 입사했대’라는 것이 화제가 되는 것이고요. 여전히 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예전에는 거의 0% 였던 일이 이제 1% 정도는 된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영은 저의 첫 회사였어요. 처음으로 제가 월급을 받으며 재정적으로 독립할 기회를 준 회사였다는 뜻이지요. 단순하게 돈만 벌 수 있었던 곳은 아니었고요. 사회 초짜였던 저에게 개발사업이란 이런 거구나, 가늠하고 짐작할 수 있게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준 고마운 회사였어요. 개발사업을 할 때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지혜롭게 협업해서 진행해야 한다는 것도 배울 수 있었던, 제게는 너무나도 신선한 배움의 장이었던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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