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플리마켓
호스트의 말을 빌리자면, 포르투의 대표적인 플리마켓은 반도마 플리마켓(Vandoma Fleamarket)이다.
토요일 새벽부터 오후 한 시까지 열린다. 이차선 도로에 매대가 늘어서며 입구부터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곳에 도착한 지 오 분만에 두 가지를 알아버렸다. 하나는 관광객 비중이 상당히 적다는 것, 다른 하나는 끝이 안 보일 만큼 규모가 크다는 것. 천 한 장부터 10인용은 돼 보이는 테이블까지 매대 규모도 다양하다. 또 플리마켓이라는 말마따나 중고품이 가득하다. 매대에는 플라스틱 과일 장난감, 스탠드 조명 갓, 톱과 드라이버 등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사소한 나머지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만다. 그런데도 물건 앞에 웅크리고 앉아 하나하나 살펴보는 사람들이 있다. 사소한 게 필요한 사람들이다.
낡은 물건이라는 건 다시 말해 ‘누군가의 필요로 인해 사용되었던 물건’이다.
그래서 물건 자체가 특별하다기보다 특별하게 여겨졌던 것들이다. 의자 다리를 죌 나사와 드라이버가 필요한 것처럼. 매대마다 사람들이 멈춰 선 걸 보면, 낡은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서 특별해질 모양이다. 내게도 특별함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문고리 장식과 촛대, 우편함, 성모 마리아 조각상들을 보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풍경이 상상된다. 시간이 지나며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물건들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여전히 필요로 인해, 또는 굳이 필요한 일을 만들어가며 물건을 담는다. 나는 편지 보내는 데 필요한 50센트 엽서 여섯 장과 내 방의 지저분한 테이블을 덮을 1유로짜리 천, 굳이 필요할 것 같은 7유로짜리 가방을 담았다.
반도마 플리마켓이 대부분 중고품이라면, 시내 플리마켓들은 창작품과 특산품을 판매한다.
카르모 성당 근처에서도 플리마켓이 열린다. 그중 하나는 포르투벨로 마켓(Mercado de Portobelo market). 규모는 훨씬 작지만, 직접 말린 꽃차를 비롯해 액세서리와 포스터 같은 아트웍이 많다. 오전 열 시부터 오후 일곱 시까지 열린다고 한다. 강변에도 주말마다 활기를 띤다. 강변 플리마켓은 코르크와 아줄레주 장식 제품이 많다. 가이아 강변의 경우 평일에도 소규모로 매대가 열린다. 주말에는 케이블카 탑승장까지 매대가 이어져서 볼거리가 더 많다. 이곳에서도 굳이 필요할 것 같은 2.5유로짜리 코르크 마개 두 개를 담았다.
하나씩 물건을 담을 때마다 의외의 모습을 발견한다.
유독 말이 많아진다. 코르크의 방수 효과에 대해 쭉 들어왔는데도 재차 "워터푸르트?" 하고 묻거나 다짜고짜 "위치 이즈 보니따?" 하고 질문한다. 국정 불명의 말인 건 둘째치더라도, 뭐가 예쁘냐는 말에는 사실 "다 예뻐"라고 답할 수밖에. 꼬박꼬박 인사도 한다. 사거나 사지 않든 어디에 쓰는 물건이며 얼마인지를 알아본다. 조금 뻔뻔해진다. 한국에서는 오래 고민하고 내뱉거나 내뱉지 않았던 말들이다. 돌아보면 솔직해진다. 이곳에서 나는 관심 가는 물건 앞에 잘 설 수 있다. 내가 그 물건을 잘 쓸 수 있을지 그 물건들로 내 주변을 채우는 게 어떤 기분일지를 오래 고민한다.
여행자이기 때문에 잘 몰라서 또 원래 그런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이 크기 때문일지 모른다. 여행자의 뻔뻔함이 꽤 마음에 들어서, 원래 이런 사람인 채 살아보는 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