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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방 Apr 08. 2021

두 번 이상 사 먹는 음식

무난한 음식

적게는 삼일에 한 번, 많게는 하루에 두 번씩 마켓에 갔다. 

하나를 사러 갔다가 여러 개를 담아오고는 했다. 물가가 저렴해 가능한 일이다. 포르투의 마켓 체인으로는 핑구 도스(pingo doce)와 콘티넨테(Continente), 미니 프레코(Minipreço)가 알려져 있다. 그중 제일은 미니 프레코, 이유는 집과 가깝기 때문이다.


볕이 좋은 날에는 피크닉 바구니에서 음식을 꺼내듯 마켓에서 음식을 집어 왔다. 

그리고 모후 정원에서 긴 오후를 보냈다. 비바람이 치는 날에도 마켓으로 향했다. 매일 마실 물이 필요했고, 매끼 사 먹을 수도 없으니 요리를 해야 했다. 그때그때 먹고 싶은 음식보다 필요해서 사는 음식이 더 많아진 것이다. 한국에서 가져간 물건 중 접이식 장바구니를 가장 잘 사용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장바구니를 채우고 비우기를 여러 번. 

한 번 사고 마는 음식이 있는가 하면 두 번 이상 사게 되는 음식도 있다는 걸 알았다. 올리브 오일, 찰기 없는 쌀, 각종 파스타, 어디에든 곁들여 먹기 좋은 토마토, 만능 마늘, 어떻게 먹어도 좋은 달걀, 모양만 보고 고른 치즈 덩어리, 50센트를 웃도는 빵, 버터, 비린내 없애주는 월계수 잎과 레몬, 베이컨, 매운맛 살려주는 피리피리 고추. 술과 감자칩은 기본이다. 한국의 우리 집이라고 해도 좋을 품목들이다. 식재료 하나하나가 다양하게 쓰인다는 사실에 새삼 신기하고, 한결같은 내 입맛에도 놀랍다. 반대로 두 번 이상 사지 않는 음식도 있다. 과일보다 채소에 가까운 딸기, 기름진 살라미, 돼지 피를 굳혀 만든 소시지, 막상 잘 안 먹는 우유와 과일 음료.


냉장고의 음식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포르투에서의 내 모습도 바뀌었다. 

만들어 먹는 일에 익숙해졌다. 사둔 지 오래된 음식들을 가지고 샌드위치나 볶음밥을 만들어보고, 식당에서 먹어본 음식을 흉내 냈다. 한국 집에서는 당연한 물건이 포르투에서도 필요해졌다. 주방 한편엔 행주와 앞치마가 새로 생겼다. 어느샌가 저녁은 집에서 먹는다는 암묵적인 규칙도 생겨버렸다. 저녁 즈음 주방에 들어간다는 건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는 의미다. 특별하지 않은 음식에 특별한 의미가 생겼다.

           

매끼 먹는 무난한 음식은 무난한 나머지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양손 가득 무난한 음식을 사들고 오는 길에는 걸음이 가볍다. 단순히 며칠 머물다 가는 사람이 아닌, 여기 지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집에서 풍겨오는 음식 냄새를 맡다가 어떤 음식인지 맞춰본다. 만들어볼 할 요리가 하나 더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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