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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방 Apr 08. 2021

나를 닮은 집

나를 담은 집

나는 방에서 생활한다.

방 한편에는 파란색 테이블보를 씌운 노트북 책상이 있다. 노트북 하나만 올려도 가득 찬다. 그 옆으로 크기는 더 작지만 스탠드 조명과 책을 둘 수 있는 작은 책상이 하나 더 있다. 책상에서 일어나 침대로 향한다. 침대 오른편에 슬리퍼를 벗어 둔다. 침대에 올라 왼편으로 돌아눕는다. 왼쪽에 놓인 스탠드 조명 빛에 의지해 휴대전화를 하거나 책을 읽는다. 엽서를 산 이후로는 틈틈이 친구와 나에게 보낼 글귀를 적었다. 빨간 수첩에 그날 인상 깊은 발견을 적어두기도 한.       


처음 마주한 방은 꽃이 많았다.

알록달록한 꽃무늬 벽지와 분홍색 커튼이 눈에 띄었다. 꽃이 많아도 향기가 나지 않다. 방을 둘러보다가 막상 쉴 수 있는 공간이 침대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쉴 곳이 필요했다. 이 집의 방과 가구들을 하나하나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좋아하는 구석을 더해나가기 시작했다.


벽 거울을 떼자 직사각형 모양으로 색이 바래 있었다. 벽에 플리마켓에서 산 1유로짜리 천을 매달았다. 이후 조명 불빛을 받을 때마다 벽에는 꽃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아래에는 책상을 두기로 했다. 야외 테라스에 있던 나무 테이블을 들여왔다. 나무 테이블은 결이 거칠고 가로로 홈이 나 있었다. 5유로짜리 테이블보를 덮자 꽤 괜찮은 테이블이 만들어졌다. 특히 테이블보에 아줄레주 문양이 그려진 덕분에, 나는 앉아서도 곧잘 여행하는 기분을 느꼈다.      


가구는 내가 필요한 곳에 놓았다.

며칠간 침대에서 일어나고 자는 생활을 반복하며, 내가 주로 왼쪽으로 돌아눕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왼쪽 협탁에 립밤과 수첩, 엽서, 와인이 하나씩 늘어났다. 잠들기 전 한 번씩 만지고 맛본다. 또 책이며 일기장을 잘 쌓아놨다. 노트북을 하면서도 다른 책을 가져와 보는 일이 많았다. 몇 번은 침대에 책을 올려두다가 조금 더, 편리해지기로 했다. 잘 사용하지 않는 오른쪽 협탁을 노트북 책상 옆으로 옮겼다. 나는 넓은 책상이 필요한 사람이었고, 그걸 좋아했다. 하루, 일주일, 어떤 물건은 4주 차가 되어서야 “나는 이게 더 편해”라며 위치를 바꿨다. 지내는 만큼 편해졌다.     

   

방이 바뀐다는 건 자연스럽게 나를 알아가는 일이다. 적어도 어떤 행동을 많이 하는지는 알 수 있다. 내가 자주 손 뻗는 곳에 놓인 물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내가 편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익숙한 공간을 바라본다.


물건을 선택하고 배치하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인 줄 알았다. 사용하는 동안 나 또한 물건에 길들여진다. 조금이라도 더 쓰거나 쓰지 않게 되는 물건도 늘어난다. 선택하고 배치하며 생활을 만들어나간다. 나는 나의 생활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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