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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현 Sep 15. 2023

나를 자랑스러워 하던 사람



엄마는 내게 '절대적 인정'을 준 사람입니다. 잘한 일에 으레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을 넘어, 제 존재만으로도 대견해 했습니다. 엄마의 표현에는 '내가 낳았지만 어쩜 이런 딸이 나왔을까. 신기하고 용하기도 하지'하는 속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엄마가 곁에 있을 때는 그게 얼마나 깊은 것인지 몰랐어요. 엄마니까 하는 말인 줄 알았지요. 엄마가 떠나고서야 내가 엄마로부터 다른 그 어느 누구도 줄 수 없는 인정을 받았단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욱이 제가 아이를 낳고 키워 보니 그 마음의 깊이가 짐작이 가요. 짝짜꿍만 해도 신기하고 응가만 제 때 해도 기뻐서 꼭 끌어안아 주게 되는 것. 그것이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그리고 우리 엄마가 내게 준 인정인 것 같습니다.






엄마가 떠나고 한 동안은 내게 그런 인정을 표현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서운했습니다. 육아휴직 내고서 집에 있을 때는 나름대로 쉬지 않고 논문도 썼는데 마땅히 자랑하고 칭찬받을 데가 없었어요. 엄마가 있었더라면 전화해서 "나 논문 쓴 거 나왔어!" 미주알고주알 얘기했겠지요. 그럼 엄마가 막상 표현은 '어휴, 산후에 잘 쉬지도 못하면 나중에 고생하는데' 했겠지만 이내 그랬을 거예요. "애 보고 그 힘든 와중에도 역시 내 딸이네" 하고. 내가 듣고 싶던 바로 그 표현, 그 말을요.


오죽하면 구몬 선생님 칭찬에도 기분이 구름을 뚫고 나가는 듯했습니다. 육아휴직 하는 동안 중국어와 일본어를 구독했거든요. 어른이 돼가지고는 어린이 교재 미루기 염치가 없으니 꽤나 성실히 공부를 했지요. 구몬 선생님은 이런 학생 처음 본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현 씨는 어떻게 이렇게 공부를 잘해요?" 물었어요. 그게 제가 일주일 중 듣는 유일한 칭찬이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고맙고 신이 났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교재 네 권에 나오는 모든 표현을 달달 외워 놓으며 극성을 부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 외의 일상에선 그다지 좋은 소리 들을 일이 없었습니다. 원체 관심도 없던 살림은 늘 엉망이었어요. 한다고 하는데도 티가 안 나는 게 살림인 줄 그제야 알았습니다. 신생아가 있는 저희 집은 장난감이 온데만데 어질러져 있고 밥 먹고 난 그릇은 싱크대에 수북이 쌓이기 마련이었습니다. 고작 몇 시간 해서는 보람이 없더라고요. 회사 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복직 대신 이직한 새 직장에선 보잘것없는 능력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렸어요. 숨 쉴 틈 없이 올려 보내는 보고서에 삐끗한 오타마저 신경을 날카롭게 긁었지요. 설상가상 이제 막 15개월을 넘긴 아이는 허구한 날 아팠습니다. 기침을 해도 내 탓, 콧물이 나도 내 탓, 피부가 빨개져도 내 탓인 것 같았어요. 일이든, 육아든, 살림이든 뭐 하나 잘하는 게 없이 짜치게 지냈습니다.  



먹이고 치우는 일하는 쳇바퀴 속에서 엄마의 응원 어린 인정 한 마디가 절실했습니다. 엄마가 있었더라면 '우리 딸, 공부만 하고 커서 애 키우고 살림하는 건 젬병일 줄 알았더니 하면 잘하네' 말해 주었을 것 같았어요.



7살 크리스마스에 엄마가 써 준 카드. 남들 다 가는 학교만 가도 대견하다던 엄마



저는 얼마간 남편에게 엄마로부터 받던 칭찬과 인정을 바랐습니다. 원체 남편이 체구도 성품도 듬직하고 어른스러운 데다 내 마음을 깊이 이해해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남편도 저와 같은 초보 부모로서 모든 체력과 정신력을 쏟아 일과 육아를 병행하고 있었기에 그 이상의 여력이 없었습니다. 남편에게 '고맙다고 표현해 달라'라고 채근하고 다투었던 날, 무언가 단단히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왜 남편에게 엄마가 해 주던 인정과 위로를 바라는 얼토당토않는 짓을 하고 있는 걸까.' 남편은 물론, 아빠나 동생도 엄마를 대신할 수 없는 것인데. 그 당연한 이치를 깨닫기까지 어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을까요.



지금은 아무도 엄마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단 걸 잘 압니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이지요. 다행히 엄마가 나를 귀히 여기며 키워 주었던 덕분에, 저 스스로를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이전엔 성취를 이루고서도 아쉬운 점만 곱씹었다면 이젠 엄마가 그랬듯 활짝 웃으며 "잘했네~ 오빠(남편)도 좋아했겠다!" 하는 거죠. 다 못 한건 엄마가 그랬듯 대수롭지 않게 "어쩔 수 없지. 어떻게 다 잘하고 사니" 흘려버리면 되고요. 힘겨울 때면 엄마가 가르쳐 준 대로 "너는 복이 많아. 감사할 일이지" 하다 보면 만사가 잘 풀리겠지요.






엄마가 내게 그랬듯, 내가 나를 아끼고 대견해하렵니다.

그게 엄마 없는 세상을 내가 잘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엄마가 내게 가르쳐 준 자존감의 원천이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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